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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다지만, 좁기도 하다.

여행 열 번째 날의 기록(2025.1.22. 수.)

by 방구석도인 Feb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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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고, 그만큼 아쉬움도 커져간다.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아쉬워진다. 아쉬운 만큼 씨엠립의 파란 하늘과 울창한 나무들과 뜨거운 태양을 눈과 마음으로 꾹꾹 눌러 담는다. 오늘은 기대하던 집라인이 있는 날이다. 툭툭이를 타고 미팅 장소로 향했다.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니 바람이 제법 찼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한 30분쯤? 며칠 뒤면 못 볼 풍경들을 한없이 바라보며 서늘한 바람을 맞았다.


도착하니 한국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아마 나와 함께 진행할 팀이 한국인인 것 같다. 씨엠립에 한국인 비율이 많지도 않거니와 집라인을 타는 사람도 많지 않을 텐데 나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여기서 만나다니 신기했다. 혼자 온 여행인 만큼 마음껏 자유롭고 싶어서 사실 썩 달갑지는 않았다. 처음엔 그냥 모른 척 있으니 그쪽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생각 안 했는지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 한국인이에요.'라고 커밍아웃을 했다.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아저씨들 무리와 그들 중 누군가의 딸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아저씨 한 명이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충남 아산에서 왔다고 하자, 깜짝 놀라며 자기들은 당진에서 왔다고 했다. 내 직장이 당진이라고 하자 아저씨들은 한 번 더 놀랐다. 나도 깜짝 놀랐다. 캄보디아의 씨엠립 그것도 집라인 타는 곳에서 나와 같은 지역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참 재미있는 우연이다.


나는 긴 코스를 선택했고 그들은 짧은 코스를 선택해서 그들은 중간에 먼저 떠나고 나만 홀로 남았다. 내가 그들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캄보디아 가이드가 웃으며 한국말로 따라 했다. 나 홀로 젊은 캄보디아 청년 두 명의 서포트와 관심을 독차지하며 즐거운 시간을 이어갔다. 아저씨 무리들이 떠나고 난 후 가이드가 잠시 쉬자며 물을 한 컵 따라 주었다. 그러면서 왜 혼자 여행 왔는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뭔지 묻기도 하고, 몇몇 단어가 한국어로 뭔지 묻기도 했다.


집라인은 재밌으면서도 무서웠다. 집라인을 타고 착지할 때 기둥이나 나무에 부딪힐 까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고 비명을 지르게 된다. 가이드가 알아서 나를 잘 잡아 주는데 믿고 맡긴다는 게 맘처럼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키 큰 나무들로 가득 찬 밀림 속에서 집라인을 탄다는 경험 자체가 매우 특별했기에 하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라인을 마치고 오니 바나나와 물을 주었다. 가이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높은 나무 위에 원숭이가 뛰어놀고 있었다. 나무 틈으로 원숭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저녁에는 ATV로 일몰을 보는 일정이 있었다. 나와 함께 탄 서양 여자는 석양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도 오래오래 석양을 바라보았다. 벼가 자라고 있는 논과 큰 나무가 서 있는 들판, 까만 피부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이 있는 아름다운 캄보디아 씨엠립.


마음속에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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