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도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내 나이 55살, 내 아이는 7살

by 사랑 머금은 햇살

나이 50이 다되서 아빠가 됐습니다. IT 기술로 세상은 급격히 변하는데 교육은 라떼 그대로,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라서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외국계 IT 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느낀 점을 육아에 적용하며 글을 씁니다.


나이 50이 다 돼서 아빠가 됐다. 그런데,

아이는 혼자 오지 않았다. 기쁨과 걱정을 주렁주렁 달고 왔다. 마치 입사 첫날, 아무도 아는 체해주지 않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을 때처럼, 설레기도 하지만, 막막한 그 기분. 뭘 해야 하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그저 웃는다. 애 키운 지 너무 오래돼서 생각도 안 난다고 했다. 자기는 일하느라 애들 얼굴도 잘 못 봤고, 아내가 다 키웠다는 뻔한 얘기들만 했다. 그들의 입술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어휴. 너 애 언제 키우니?’라는 호기심과 우려가 함께 스쳐가고 있었다. 훌쩍 커버린 자식들의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는 그들에게 내 고민은 그저 수험생 귀에 들리는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이었다. 그래, 1년 전 일도 잘 생각 안나는 나이긴 하지.


나이 먹고 깨달은 것들

난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쳤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글로벌 IT 회사에 오래 다녔다. 임원이 된 후에는 매주 월요일 오전 8시, 싱가포르와 미국에 근무하는 외국인 상사들에게 컨퍼런스콜로 부서의 실적 보고를 하는 것으로 한주를 시작했다.


IT 분야에서 한해 한해 나이를 먹으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었다. 첫째, IT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세상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시대를 열고 있었다. 둘째,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출생지나 거주지가 더 이상 개인의 꿈이나 기회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게 되었다. 셋째, 과거에는 여러 사람이 협력해야만 가능했던 일들을 이제는 인공지능과 함께 한 사람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일하고, 배우며, 성장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었다. 과연 이 변화는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런데 나이를 먹으며 배운 이런 것들과는 별개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문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그건 단순히 경험이나 깨달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새롭고 복잡한 도전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주말 저녁 광화문의 대형 서점으로 향했다. 전문가들의 책이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책은 많았다. 하지만,

서가에는 아이의 정서 발달을 위한 책, 아이의 언어 감각을 길러준다는 책, 유아식 만드는 법, 제대로 훈육하는 법, 국가별 육아 방법, 아이랑 놀아주는 법등 등의 책이 등산길에 만나는 개미들만큼이나 끝없이 내 앞에 펼쳐졌다. 아이를 믿어라, 칭찬해 줘라, 비교하지 마라, 시간을 같이 보내라, 창의력을 키워줘라, 리더로 키워라… 이 책들 중 몇 권을 첫 장을 펼쳐보았다. 모두 주옥같은 말들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내가 찾는 책은 없었다. "기술 혁신으로 일하고 사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미래에 살아갈 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해주는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민이 시작되고.

사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든 말든, 기술이 모든 것을 바꾸던 못 바꾸던, 백화점이 온라인 쇼핑으로 적자를 보던 말던, 그런 이야기들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고, 사실 남의 일이었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하지만 내 품에 아이가 찾아온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노령 인구는 늘어나며, 기업의 성장률은 둔화되고, 따라서, 취직은 점점 어려워지고, 어렵게 취직해도 40대에 회사를 떠나는 일이 보편화되고 있으며, 심지어 인공지능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의 모습까지 변화시킬 기세인 것이 가슴에 와닿기 시작했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 변화속에 불안한 부모들은 자녀의 안정된 삶을 위해, 스카이 대학에 보내려고 했고, 대학 입시를 위해 초등학생때 부터 유명 학원을 찾고 있었으며, 그 유명 학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또 다른 학원에 보내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생기면서 나도 그런 세상 속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 시대의 “정답”이 우리 아이의 미래에는 더 이상 정답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너무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다르냐고? 누구나 각자의 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명문 대학 입학이 아이의 행복을 보장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 행복은 압구정동의 대형 아파트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난 나라라는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민이 시작됐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우연히 초등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의사 준비반이 생기고 있다는 뉴스를 보게 됐다. 초등학생들이 미적분을 풀고, 밤 11시가 돼서야 학원에서 귀가한다고 했다. “학원 몇 개 다니니?”가 아니라 “수학 학원 몇 개 다니니?”가 요즘 아이들 질문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 하루 17시간을 공부하고 자정쯤 잔다고 했다. 어휴. 어제저녁에 먹은 순두부찌개가 식도에서 거꾸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경제가 불안할 때 안전자산인 금, 달러를 선호하는 것처럼, 부모들은 의사를 금이나 달러로 생각하는 듯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의사가 설마 굶겠어? 하는 생각 아닐까.


아이가 의사가 된다면 싫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전국 의대 정원이 3,000여 명이란다. (2023년도 기준). 2024년에 수능 응시한 학생이 50만 명인 것을 (이중 재수생이 15만 명) 고려 시 0.6%에 불과한 학생만이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변화로 혼란스러웠던 2025 입시는 말을 말자.) 한국의 고등학교가 대략 2,400여 개인 것을 감안 시, 거의 각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는 학생들만이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모두가 선망하는 "S대 의대”에 가려면 어휴. 말을 말자. 나도 못한 전교 1등을 내 아이에게 시키겠다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이외수 작가의 한 줄짜리 시이다. 작가는 지렁이가 단순히 징그러워 보인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단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바람에 고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지렁이”라는 시를 곱씹을수록 시의 제목은 “지렁이”보다 “내 새끼”가 더 어울릴 듯했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살아보니 나도 살기 힘든데, 내 새끼는 더 힘들겠다고 판단되면, 누가 아이를 낳겠는가.




담쟁이도 벽을 넘는데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알려줘.”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따라 다르지.” “어딜 가든 상관없어.” “그럼 어느 길을 가도 상관없겠지.” “하지만 어딘가에 도착하고 싶어.” “그래? 오래 걷다 보면 분명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 거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와 체셔 고양이가 나눈 대화다.


앨리스가 체셔 고양이와 함께 길을 걸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의 미래에 대해 막막함을 느꼈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준비물을 채워주는 일은 아빠인 내 몫이었다. 눈 덮인 높은 산을 오를 때 아이젠과 식량, 그리고, 물이 필수적이듯, 나는 내 아이의 배낭에 필요할 준비물을 채워주기로 결심했다. 우리 아이들이 오를 산은 지금까지 내가 올랐던 산과는 완전히 다를 테니까.

저것은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중략)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하나는
(중략)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역시, 시인의 눈은 다르다. 무심코 스쳐 지나던 담쟁이에서 끈질긴 도전을 읽어내다니. 담쟁이는 거대한 벽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벽을 타고 오르며 끝내 스스로 길을 만들어간다.


처음부터 용기 있는 아빠가 어디 있겠는가. 용기를 낸 아빠가 있을 뿐이지. 담쟁이 잎 하나가 벽을 넘듯, 나도 내 아이를 둘러싼 벽을 넘어 보기로 했다. 무엇부터 준비해 줘야 할까.




나이많은 아빠의 육아와 교육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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