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겠는데요.
다니던 회사가 있던 여의도의 한 유도 도장에서 나이 40이 넘어서 유도를 배운 적이 있다. 도장에 도착 후, 양복을 벗고 하얀 도복을 입는 순간, 마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가슴이 뛰었다. 오래전 중학생 시절 뭔가 강해 보이고 싶어, 유도나 권투를 배워보고 싶었는데, 그놈의 입시 때문에 아버지한테 혼만 나고 결국 못 배웠던 한이 남아있었다.
코치는 격투기로 유명한 대학에서 유도를 전공했다고 했다. 학원을 마치고 온 여드름 뽀송한 10대부터, 스트레스를 온몸에 담고 막 퇴근한 40대 아저씨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같이 운동을 했었는데, 처음 업어치기를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낙법을 익힌 후에는, 보통 수련생들끼리 2인 1조로 팀을 짜서 서로 업어치기 연습을 했었는데, 중년의 아저씨 학생들은 나이 먹은 덕에 "업어치기를 당한 적"은 없고, 별도로 코치대상으로 "업어치는 공격"만 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운동 후 배고프다던 코치에게 저녁 사주면서 나눴던 대화다.
“저는요. 운동은 10시간도 하겠는데, 공부는 15분을 못하겠어요. 책상에 앉아서 10분이 넘어가면 졸리고 답답해요. 전 공부 체질이 아니에요.”
아니... 냉난방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하루종일 뛰는 게 낫다니. 코치에게 운동하느라 힘들었겠다고 했더니, 운동보다 1시간 앉아있어야 하는 학교 수업이 훨씬 더 힘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코치가 15분 공부하느라 힘들었다는 얘기 듣다가 삼겹살 5인분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런 친구들이 공부로 승부 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잘된 일이 아닐까.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가르치며 행복을 찾았으니 말이다. 이제는 자신만의 유도 노하우를 동영상으로 찍고, 개별 디자인한 맞춤형 도복과 연습 용품까지 판매할 계획이라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할 때 반짝이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곤충 전문가인 젊은 유튜버의 방송을 보게 됐다. 구독자수가 약 140만 명이며, 총조회수가 7억 뷰를 넘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대기업 다니는 동년배들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릴 것이다. 게다가, 본인이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도 있고, 인터넷 쇼핑몰도 운영한다.
이 친구는 유튜브에는 무슨 동영상을 올릴까. 그는 자신이 판매하는 곤충, 파충류, 양서류, 어류, 조류등을 키우면서 이들을 관찰하고, 채집하는 영상을 주로 올린다. 이 친구의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봤다. 개구리 한 마리에 10만 원이 넘고, 수십만 원이 넘는 도마뱀들이 컴퓨터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어휴.
2015년에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 유튜브를 보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 희귀 생물 애호가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었다. 그런데, 유튜브가 없었다면, 이 친구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학생 때 공부는 별로 안 하고, 가방 안에 “수학의 정석”대신 커다란 풍뎅이를 넣어갖고 갔다가 선생님들한테 걸려서 혼나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은 블로그로 이름을 날리고, 유튜브와 온라인 쇼핑몰로 24시간 돈도 벌고 있다. 아. 책도 출판했다. 그러고 보면, 이 친구가 변하는 세대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면서, 기술과 플랫폼을 활용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혼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좋아하는 희귀 생물들로 둘러싸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친구들은 또 있다. 빠니보틀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유튜버가 그 주인공이다. 이 친구는 보일러 회사에서 인턴 생활하다 정직원 전환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 뒤, 2019년 전 재산 2000만 원으로 여행 유튜브를 시작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유명 연예인이 된 현재 그의 유튜브 구독자수는 240만 명에 달하며, 그가 광고, 유튜브 동영상, 방송 출연등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10억을 넘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사법 고시 폐지등으로 사라졌다는 계층 사다리가 IT 기술을 활용해서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게임 스트리머란 직업도 있다. 게임 스트리머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게임을 실시간으로 플레이하면서 시청자와 소통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이 직접 게임을 중개하고, 게임 공략방법, 팁등을 알려주는데, Faker라는 친구는 프로 게임 구단 소속으로 연봉, 광고 수익, 대회 상금등으로 연간 최소 수십억 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유도 코치, 곤충 유튜버, 그리고, 게임 스트리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확장시켜 새로운 직업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모두 라떼 세대는 상상조차 못 했던 직업과 수입을 만들어냈다.
아침에 눈을 뜨며, 그날 내 앞에 놓인 일에 가슴 설렌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날이나, 소개팅 전날 상대 여학생이 예쁘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를 제외하면, 난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히, 주말이 끝나가는 일요일 저녁이면 알코올 없이는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실적 보고를 해야 하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 하늘은 왜 그리 어두웠으며, 도로는 왜 그렇게 막혔을까.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난 내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길 바란다. 앞으로는 하기 싫은 공부나 월급쟁이 말고도 우리 아이들은 할 일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도 코치, 곤충 유튜버, 게임 스트리머등은 분명히 우리 세대에게 익숙한 '성공의 정의와 공식 - 명문대, 대기업, 전문직등' 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좋아하는 일을 단순한 취미로 끝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하여 전 세계를 무대로 삼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딸, 넌 가슴 설레는 일을 하렴. 가슴이 뛰는 순간이 진짜 행복이더라.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아빠와 함께 찾아보자. 아빠는 언제까지나 네 곁에서 너의 꿈을 응원할게'
* 울트라 슈퍼 늦둥이 아빠의 육아와 교육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