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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씨

다시 일어나다

by 장발그놈

긴 하루였다.

회사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상사와 동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마음은 다 쓴 배터리 마냥 텅 비어버렸다.


퇴근길,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어깨를 짓누르는 공기는 차가웠고, 내일이 오기않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간단히 씻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건 말라붙은 반찬 몇 가지 였다.

식탁에 앉아 밥을 씹었지만, 입 안 가득 퍼지는 건 맛이 아니라 무력감이었다.

모래알 같은 밥이 마치 오늘 하루의 고단함과 같았다.

내일 또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목을 죄어왔다.


결국 밥을 간신히 넘기고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고 해서 잠이 오는 건 아니었다.

머릿속은 이미 수많은 걱정으로로 가득 차 있었다.

상사의 날카로운 말투, 동료들의 무심한 시선, 내 스스로를 향한 자책...

그 모든 게 파도처럼 몰려왔다.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싶었지만, 마음은 내 뜻대로 멈춰주지 않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엄마'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후...”


숨을 깊게 내쉬며, 나는 전화를 받을지 말지 한참을 망설였다.

오늘 하루의 무게와 피로가, 그 짧은 순간마저도 결정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간신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다정하면서도 단호했다.

“너 목소리가 왜 이리 힘이 없어? 회사에서 무슨 일 있는 거니?

그렇게까지 힘들면 그만두고 내려와서 쉬어라.

넌 그래도 된단다. 왜 그렇게까지 참아가며 버티니?”


순간, 애써 붙들고 있던 감정이 그 한마디에 와르르 쏟아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하루 종일 꾹꾹 눌러 담았던 울음이 결국 엄마의 목소리에 터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엄마의 말은 따뜻한 위로였지만,

그 속에서 이상한 불씨가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그만두고 내려오라'는 말이 오히려 나를 자극했다.

‘내려오라고? 그냥 포기하라고?

아니, 난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없어.

난 아직 할 수 있어!.’

울음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 꺼진 방 안,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초라했지만,

아직 난 할 수 있다는 마음은 남아있었다.

부모님이 내게 가르쳐준 건 언제나 하나였다.

실패와 좌절을 만났을 때,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힘.

가시밭 같은 현실에서도 미소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는 힘.

그게 삶의 버팀목이었다.

“엄마, 나 좀 더 해볼게. 아직은 포기하기 싫어.”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내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난 아직 할 수 있다는 다짐이 다시 올라왔다.

어머니와의 통화가 끝난 그날 밤, 잠은 끝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분명히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비록 작은 불씨였지만,

그 불씨가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실패해도 괜찮다.

다시 도전하면 되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켜내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니까.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나는 거울 앞에 섰다.

여전히 피곤했지만, 마음속은 달라져 있었다.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급히 서둘러 출근준비를 하다가 컵을 떨어뜨려 깨뜨렸다.

바닥에 흩어진 조각들을 바라보며 순간 한숨이 나왔지만, 이내 빗자루를 들었다.

어제였다면 좌절감에 더 무너졌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깨진 컵을 치우는 손끝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아질 거야.”


나는 작은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또 하루가 시작됐다.

내 방식대로, 어른다운 나만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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