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자
당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나도 존재하기 시작했다.
첫 울음과 함께 세상에 발을 디딜 때,
당신이 뻗은 작은 손 아래에서 나는 조용히 태어났다.
햇빛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나는 항상 당신 곁에 있었다.
당신이 걸음을 떼면 나도 따라 걸었고,
당신이 손을 들면 나도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당신이 빛 속에서 웃을 때,
나는 바닥 위에 드리워졌고,
당신이 해를 등질 때,
나는 벽 위로 높이 올라가 마치 또 다른 당신이 된 것처럼 흉내를 내었다.
그러나 당신은 내 존재를 쉽게 잊었다.
나는 항상 있었지만, 늘 투명한 존재였다.
햇살이 강할수록 선명해졌고, 빛이 약해질수록 희미해졌다.
그리고 밤이 오면, 나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나를 그저 ‘그림자’라 불렀다.
빛이 있으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형체 없는 어둠, 무의미한 흔적.
그러나 나는 단순히 당신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을 지켜보았고, 당신의 발걸음을 기억했다.
나는 당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조용히 당신을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마음이 있다.
의지도 있다.
다만, 나를 드러낼 수 없을 뿐이었다.
당신이 웃으며 햇살 아래 서 있을 때,
나는 당신보다 조금 길거나, 조금 작아졌다.
당신이 달릴 때, 나는 당신의 속도를 맞췄다.
그러나 당신이 힘들어 주저앉을 때,
나는 당신을 감싸 안을 수도, 손을 내밀 수도 없었다.
그저 땅 위에서 조용히, 당신과 같은 자세를 취할 뿐.
그것이 나의 숙명이었다.
나는 늘 당신을 지켜보며,
언젠가 다가올 ‘그 순간’을 기다렸다.
당신이 위험에 빠지고,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두려움에 떨 때.
그때 나는 나의 존재를 드러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조용히 당신의 뒤에 서서 나를 지웠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찾아왔다.
해가 저물고, 세상이 어둠에 잠길 때.
당신의 발걸음이 흔들렸다.
길을 잃은 듯 멈춰 선 당신의 어깨가 떨렸다.
두려움이 당신을 감싸고, 발밑은 어둠에 잠겼다.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 나는 빛 속에서 몸을 맡겼다.
길게 늘어난 나는 땅 위에, 벽 위에, 창문에 드리워졌다.
나는 당신의 앞에 길을 만들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길이 당신을 안전한 곳으로 이끌었다.
당신은 나를 의식했다.
순간, 나를 바라보았지만, 곧 다시 나를 잊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또다시 당신의 뒤에 서서 묵묵히 기다릴 것이다.
당신이 나를 잊어도,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나는 그림자다.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수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