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오랜 시간 우리 가족 모두가 바랬던 날일 것이다.
아버지가 긴 잠에서 깨어나 퇴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엄마는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를 보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우린 병원장실로 들어갔다.
엄마는 병원장님과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선생님 제가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애들 아빠 병시중 하느라 그 세월을 다 보냈는데, 이 아이들 키우려면 병원비까지 빚을 지고 나갈 수는 없어요, 병원에서도 일부 책임을 지어 주셔야지요. 애들 아빠 일 못하고 누워서 산 세월 보상 해달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없는 사람들 죽으라고 등 떠미시는 거 아니면, 해결을 해주세요"
어마어마한 아빠의 병원비가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병원마다 사회복지관이 있어서 재활을 지원하거나 사회적 안정보충방이 잘 형성되어 있어, 병원비로 파산하는 일은 막아지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제도가 없었다. 우리가 몰랐을 수도 있지만, 엄마는 딱히 해결방법을 찾지 못해 이런 방법을 쓰신 것으로 안다.
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아버지는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주사 부위를 도려내는 등 염증이 잡히지 않고 번지면서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어 오랜 시간을 누워계셔야만 했다.
그 후로 생활의 대부분을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병원을 지켜야만 했던 엄마는 우리에게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없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무너지는 순간은 바다 위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 위험에 빠진 배와 같다.
출렁이는 파도가 때리는 모든 뭇매를 맞아가며 살아남기 위해 몸을 움직이며, 그 풍랑이 멎는 때를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도 하늘이 무심치안아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와 퇴원하는 날이 왔다.
철 모르는 우리들이야 기쁠 뿐이었지만, 엄마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앞으로 살아 나갈 일을 위해 어떻게든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병원장님을 찾아가 단판을 지으셨다.
다행히 엄마의 의견은 충분히 반영되어 병원비를 빚으로 떠안고 나오진 않았다.
엄마는 참으로 강한 존재여야만 한다.
누군가 그랬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삶의 대부분을 풍랑 속에 살았던 엄마를 보면서 난 그 강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정신 바짝 차리라며 나를 엄하게 대하셨다.
자식 넷을 가진 엄마는 남편의 죽음조차도 온전히 슬퍼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 같다.
나의 어머니
한 가정의 소중한 딸이었을 당신
꿈 많은 소녀였을 당신
한 남자의 사스러운 여인이었을 당신
당신이라는 뿌리가 있어 삶의 풍파에 조금은 덜 흔들리며 살아왔습니다.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