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복해서 딸까지
나는 단 한번 엄마의 통곡을 보았다.
마음의 소리가 울음으로 터져 나오는 대성통곡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날도 아니고,
외조부모가 돌아가신 날도 아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정신없이 얼마가 흘렀을까?
마음속 텅 빈 감정을 추스를 틈도 없이 나는 엄마의 짐이 되고 말았다.
며칠 전부터 신음신음 앓더니 갑자기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의식이 사라질 지경까지 고열이 지속됐다
보다 못한 고모부가 나를 업고 응급실로 갔다.
밤새 떨어지지 않는 열을 잡기 위해 해열제도 처방해 보았지만 열이 내려가지 않자
온몸에 얼음을 부어가며 고막이 터지는 것을 겨우 막아냈다.
위급한 상황은 겨우 이겨내고 열은 떨어졌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온몸이 종잇장처럼 힘없이 흐느적거리면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지만 나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학교를 가지 못하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유급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갈 무렵
엄마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누워있는 나에게 한 번 일어나 걸어보자며 나를 부축하셨다.
온 힘을 다해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난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엄마는 통곡을 하셨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엄마가 갑자기 목놓아 우시며
"내가 지지리 복도 없는 년이어서,
어릴 때는 부모복 없어서 동생들 키우느라 학교도 못 다니더니
시집와서는 남편복도 없어서 살만하니까 저세상 가버리고
이제 자식까지 반신불수가 될라나 보다"
라며 대성통곡을 하셨다.
나는 그날 엄마의 통곡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든 일어나야만 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거의 삶을 포기한 상태였다.
온몸은 부어올라 어디에서도 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고, 누워서 얼굴에 기대어 몸을 돌리다 보니 한쪽이 붉게 짓무르면서 염증을 일으켜 검은 흉터가 넓어져 가고 있었다.
그런 내가 엄마의 통곡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픈 건 엄마 때문이 아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일어나야만 한다!"
인간의 생각과 마음은 참으로 신기할 만큼 많은 힘을 가졌다.
난 기필코 일어나 다시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고, 그때 생긴 얼굴 한쪽의 검은 흉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추운 날씨를 빼고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릿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