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거 나 줘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 얼마동안 바쁘게 움직이셨다.
평소 다니지 않던 가족여행을 가거나 가가운 곳에 놀러 가는 일이 많았다.
그 일정 중에 시골 친가 할머니 댁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그렇듯 나를 보시면 반가움에 눈시울을 적시며 와락 끌어안으셨다.
쑥 커버린 나를 보시며,
"워째 이리 말랐노, 밥은 먹고 다니는겨?"
그리고는 갖은 반찬을 다 내놓으시며 많이 먹으라는 말을 반복 하셨다.
할머니 방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았다.
구석에서 어린 날 할머니 댁에서 머무를 때 가지고 놀던 소꿉놀이 장난감이 담긴 바구니를 발견했다.
먼지 하나 없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내가 없는 그 시간에도 나를 많이 그리셨나 보다.
아들 보다 나를 더 반기시는 것을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 소꿉놀이 장난감 안에는 아주 작은 숟가락과 은색 작은 통이 있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이었다.
그 작은 숟가락과 통을 할머니한테서 받아 낸 날의 추억이 있었다.
할머니는 기관지가 좋이 못하셨는지 그 당시 유명한 가루약 용*산을 복용하고 계셨다.
장난감이 흔하지 않을 때여서, 그 통을 보자마자 탐이 났다.
정말 깜찍하게 작은 숟가락이 들어 있어서 매일 그 통 안에 든 약이 다 사라지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몇 날 며칠 기다리다 지친 나는
"할머니, 그거 언제 다 먹어?"
"이거 한참 더 먹어야 헌디"
"그거 다른 데다 딸아 놓고 나주면 안돼?"
"약인디 그럼 안 되제"
속상한 마음에 생떼를 부려 보지만 할머니께서 쉽게 양보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며칠 후
"할머니 아직 다 못 먹었어?"
쓰윽 웃음을 지으며 통을 꺼내 보여 주셨다.
"이게 뭐야!, 아직도 많이 남았잖아"
"할머니 미워! 빨리 먹으라고!"
울먹이는 나를 보며 반대쪽 손을 쓰윽 내미셨다.
빈통이었다.
나는 그 통을 받아 들고 날아갈 듯 마당을 뛰어다녔다.
물건에 애착이 많던 나는 한 번 갖게 된 물건은 잘 버리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성격 탓에 할머니 댁에서 지내는 동안 바구니 하나를 다 채울 정도로 각양각색의 물건들을 모았다.
그렇게 채워진 나의 바구니를 할머니께서는 수년이 지나서 손녀딸이 성장해 가지고 놀지 않는 나이가 될 때까지도 보관하고 계셨던 것이다.
손녀가 떠난 자리의 허전함을 얼마나 오랫동안 가지고 계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