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워커홀릭의 부작용

그래도 나름 절실했기에,

by 다정한 지혜씨


온라인 쇼핑몰 5개와 오프라인 매장을 같이 운영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었다. 너무 바쁜 나머지 내가 나를 잘 돌보지 못했던 탓이 컸다. 24시간 cs업무에 시달리고 평일, 주말의 개념 없이 365일을 일에 매달렸으니 결국 터질 일이었다. 남편은 직원을 구하라고 했지만 나에겐 사람을 부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원공고를 내 볼까 잠깐 생각도 했었지만, 직원을 쓰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그 어떤 미묘한 스트레스까지 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남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으로 가 전날 주문받은 물건들과 신상 상품들을 내 키만 한 봉투 두 개에 가득가득 담아서 가게로 돌아왔다. 가게로 돌아오면 밀린 업무에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몇 시간씩을 서서 택배를 싸고 포장을 했다. 포장 후에는 신상 상품을 올려야 했었기에 또 몇 시간을 망부석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모든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도 난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cs업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을 자면서도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일중독으로 버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점점 쉬지 못하는 강박이 심해졌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더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 가려고 옷장에서 매일 입던 바지를 꺼내 입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바지가 안 맞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이바지가 내 바지가 맞나 생각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서있었다. 툭 붉어진 어깨와 쇄골이 움푹 파인 허리가 마른 여자가 서있는 것이었다. 물론, 예전에도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뺀 적은 있었지만 내 평생 이렇게 마른 나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165cm인 키에 항상 60킬로 초반 때를 유지했던 나인데 몸무게를 재어보니 10킬로 가까이가 빠져있었다. 생애 최저 몸무게였다.


살이 너무 빠져서 그런지 몰라도 정수리까지 훤해 보였고, 난 그날 결국, 남대문으로 가려던 모든 일정을 미루고 하루만 쉬기로 결정했다. 몸이 아우성치는 소리를 한 번쯤은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난 한약방과 탈모센터로 방향을 틀었다. 한약방에서는 영양실조란 병명을 들었고, 탈모센터에서는 탈모가 진행 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을 나오면서 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다 부질없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껏 남편과 나의 첫 보금자리였던 가게를 지키고 싶어서 유지하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고, 밤낮없이 일한 결과가 이거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엔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지닌 채 난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난 침대에 누워 내 몸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너도 살려고, 살려고 그랬겠지, 그래서 모든 에너지를 몸에서 뽑아서 썼겠지, 그동안 몰라줘서 미안하다. 근데 나도 너무 바빴어, 내가 가진 것을 지키려고 그랬어,라고.


난, 그래도 나름 절실했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었다. 어쩌면 깜냥이 안 되는 일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그만뒀어야 하는 일을 붙잡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일을 혼자서 했고, 배웠고, 그래서 행복했다. 행복의 대가가 돈과 건강이기에 좀 세긴 했지만 그 경험으로 이렇게 글도 쓰고 있으니 그걸로 된 듯싶었다.



*워커홀릭

워커홀릭(Workaholic)은 '일(Work)'과 '알코올 중독자(Alcoholic)'의 합성어이다. 말 그대로 일에 중독된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일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일 외의 다른 활동에서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며, 심지어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워커홀릭이 위험한 이유

워커홀릭은 개인의 건강은 물론, 가족 관계, 사회생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체적 건강 문제

만성 피로, 수면 장애, 소화 불량, 두통, 고혈압, 심혈관 질환 등의 위험이 높아진다.

정신 건강 문제 ; 불안, 우울, 강박 증세, 번아웃(Burnout) 증후군, 심하면 자살 충동까지 겪을 수 있다.

관계 문제 :가족, 친구와의 관계가 소홀해지고, 사회적 고립을 초래하며, 심한 경우 이혼이나 가정 파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워커홀릭일까? 셀프 테스트

다음은 워커홀릭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자가 진단 항목이다.

퇴근 후, 주말, 휴가 중에도 계속 일 생각을 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일 때문에 가족, 친구와의 약속을 어기거나 소홀히 한 적이 많다.

일 외에는 다른 취미나 활동에 흥미가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변에서 "일 좀 그만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심하게 좌절하거나 분노하고,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낸다.

건강이 나빠져도 일을 쉴 수 없다고 생각하고, 병원 가는 것을 미룬다.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고, 완벽주의자다.

타인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고, 혼자 다 하려고 한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쫓기는 기분이다.


위 항목 중 5개 이상 해당된다면 워커홀릭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물론, 정확한 진단은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참고로 그 당시 난 위에 모든 상황에 해당했다.)


워커홀릭 극복방법

1) 업무 시간제한

퇴근 후에는 가급적 업무 관련 알림을 끄고, 주말에는 메일·메신저 확인을 최소화한다.

2) 취미·여가 활동 확대

운동, 독서, 여행 등 다양한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다.

3) 휴식에 대한 긍정적 인식

쉬는 시간은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창의력을 높이는 필수 요소임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4) 가족 및 친구와의 시간 확보

정기적인 모임이나 대화를 통해 친밀감을 유지하고, 심리적 지지를 받을 수 다.

5) 전문가 상담

심리 상담이나 코칭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더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모색한다.




keyword
이전 18화cs업무의 비애 (온라인쇼핑몰의 두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