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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이 왜 이러실까

미워할 수 없는 그 어딘가

by 준비 Mar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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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스카우트 한 고마운 팀장님은 팀 내에서 묘한 갈등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 팀에는 팀장님을 비롯 총 5명의 직원이 있었다. 그중 한 분은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고 다른 부서로 가셨고, 결국 총 4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광주 사무실에 파견 나가있는 다른 한 분도 계셨지만 회의 때 외에는 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인원은 5명이고 대전 사무실에 상주하는 직원은 4명이었다. 팀장님은 매일 아침 가장 일찍 출근하셔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절실한 크리스천이었고, 나머지 두 대리님은 자유로운 영혼 느낌의 삼촌 같은 분들이었다. 이 두 분과 팀장님 사이가 애매하게 좋지 않았는데, 대놓고 안 좋다기보다 뒤에서 서로 험담을 하는 사이랄까? 근데 그 험담이 내장 속에서 끓어오르는 정말 싫어하는 사람을 욕하는 느낌보다는 애증의 느낌에 가까웠다.


내가 이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계기가 있는데, 어느 날 팀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러서 한 가지 미션을 주셨다.


"나 휴가 간 사이에 저 두 대리들 몇 시에 출근하는지 보고해"


팀 막내가 선임들 출근 시간을 팀장님께 보고하는 그림이 썩 예뻐 보이진 않으니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이대리님이 나를 불러서 팀장님이 무슨 말씀 안 하셨냐고 물었다. 이때다 싶어서 이런 미션을 주고 가셨다 하니까 코웃음을 치면서 "어휴, 진짜 왜 저러나 몰라"라고 하시며 정대리님에게 가서 그 내용을 다시 전하셨다. 정대리님은 갈색 뿔테를 쓱 올리며 "역시!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하하" 웃으며 나한테 출근 시간 체크해서 팀장님께 보고 하라고 하셨다.


사실 내가 이 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팀장님 입지가 살짝 흔들리고 있고, 팀장님 편이 없다 보니 팀장님은 아예 신입을 받아서 자기편으로 확실히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팀장님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커서, 얼른 내가 팀의 에이스로 급부상하길 바라셨고, 그 마음이 마음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나에게 새로운 숙제를 내주셨다.


매일 5개씩 나의 부족한 점을 적고 그 부족한 점을 어떻게 보완할지 작성하는 것이었는데, 뭔가 초등학생 과제 같은 느낌이랄까? 일단 시키시니 열심히 내 부족한 점을 찾아서 리스트를 만들고 보완점을 작성하고 있는데, 실상 내가 할 일도 없는 상황에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이대리님이 웃으며 뭐가 그리 바쁘냐가 물으셨다. 팀장님이 내 준 과제를 하고 있다 하니 작은 한숨을 내쉬며, 열심히 해보라고 어깨를 툭툭 치셨다. 그렇게 한 일주일쯤 되었을 때, 더 이상 내 단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거의 스무 개가 넘는 단점을 찾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그 이상 찾으려니 내가 뭐가 부족한지를 모르겠어서 팀장님께 찾아가 더 이상 뭐가 부족한지 떠오르지 않으니 팀장님이 지적해 주시면 그걸 제가 어떻게 보완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근데 그건 또 귀찮으셨는지 그 과제는 그만해도 좋다고 하셨다. 다행히 일주일 만에 과제 지옥에서 벗어났다.


팀장님은 살짝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권위의식이 공존하는 그런 분이셨는데, 팀장으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갖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두 대리님이 너무 자유로운 영혼이고, 팀장님과 의견이 충돌되면 또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들을 펼치다 보니 가끔씩 팀 분위기가 살얼음판인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 지나면 또 커피 한잔 하면서 분위기가 풀리는 걸 보고 이런 게 회사 생활인가 싶기도 했다. 약간 20년 차 된 부부 같기도 했다.


내가 팀장님께 정말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한 게 있었는데, 전국의 팀장님들 워크숍이 있었는데 사전에 팀원들이 익명의 설문조사를 통해서 팀장님 평가를 하는 게 있었다. 그런 건 그냥 다 5점 만점에 5점을 주고 칭찬 멘트를 쓰는 게 일반적인데, 내가 설문조사를 하려고 하는 순간 두 대리님이 쓱 다가오더니 "네가 총대 한 번 메고 시원하게 써봐"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느낀 그대로 작성해서 제출 버튼을 눌렀다


"팀원들의 의견보다 팀장님 개인의 권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나중에 이 멘트를 작성했다는 걸 전해 들은 두 대리님은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크게 웃으면서 "대박"이라는 단어를 외치셨다.


"너 진짜 그렇게 썼어? 와~너도 진짜 보통이 아니네. 야! 잘했어 잘했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우리가 작성한 그 코멘트는 전국의 팀장님이 모인 자리에서 PPT로 공개된다는 것을 밥을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팀장님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팀장님들 사이에서 얼마나 체면이 구겨졌을지 백 번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행동이다. 나를 괴롭히던 그 선배 같은 사람이었으면 정말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우리 팀장님은 가끔 미운 행동을 하긴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선함을 갖고 계신 분이다 보니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팀장님을 떠올리면 그 일이 마음 한편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그날의 일에 대해서 팀장님은 따로 나를 불러서 얘기를 하진 않았다. 그래도 나를 지옥에서 구해준 은인인데 내가 죽일 놈이다. 


정대리님과 팀장님은 과거에 같은 팀에 일원으로 형제처럼 친했다고 한다. 그런데 팀장님이 팀장 직급을 달고 사람이 변하기 시작해서 사이가 이전과 같지 않아 졌다고 했다. 아무래도 조직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자리가 되다 보니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아닌 조직 중심의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정대리님은 그게 못마땅했던 것 같다. 그래서 둘 사이가 친한 듯하면서 원수처럼 싸우는 부부 같았다. 


우리 팀장님은 상무님이 내려왔다고 하면 정말 임금님이 행차하신 것처럼 버선발로 마중 나가셨는데 정말 충신이 따로 없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뒤에서 윗사람 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상무님을 존경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우리 팀과 개발팀 직원들이 대규모로 모여 회식을 하는데, 자꾸 나보고 춤 한 번 추면서 분위기를 띄우라고 하셨다. 극 I인 나에게 그런 건 정말 치가 떨리게 싫은 거라 절대 싫다고 했는데도, 갑자기 상무님이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번쩍 손을 들더니 "상무님~준비가 따로 준비한 게 있다고 합니다"라고 말하셨다. 모두의 시선이 갑자기 나한테 쏠렸고, 살짝 얼굴이 빨개졌지만 나는 죽어도 춤을 추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어? 없는데요?"라고 툭 내뱉었다. 순간의 정적이 흘렀지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갔고, 팀장님 얼굴은 급속도로 빨개지면서 연거푸 술을 들이켜셨다. 나중에 팀장님이 그때 일을 언급하면서 "상무님이 왔을 때 그렇게 너 각인시키면 얼마나 좋냐"라고 하면서 혀를 차셨지만 나는 "제가 호빠선수도 아니고 갑자기 술자리에서 왜 일어나서 춤을 춥니까. 전 사실 상무님이 저 몰라도 상관없어서 괜찮습니다"라고 했다. 팀장님이 생각했던 그런 신입이 아니란 것을 점점 알아가고 계신 듯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내가 광주사무실에서 근무를 할 때 팀장님의 권고사직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꽤나 분개했던 이유는, 원래 권고사직 대상자여 던 다른 팀장님이 예상외로 강경한 태도로 상무님을 들이받아서 상무님이 당황하셨고, 그 일로 혹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우리 팀장님으로 타깃을 바꿨다는 소문이었다. 너무도 충신이었던 팀장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셨다고 하니 이 얼마나 답답하면서도 착한 사람인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결국 회사라는 게 아무리 가족 같은 관계라고 주장해도 절대 가족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충신이 될 필요도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회사는 정글이고 그 정글은 잠잠하다가도 피비린내가 나면 모두가 자기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곳이기도 하다.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계시길, 아니 계실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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