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내와 아침 운동으로 아파트 단지를 뛰는데 아파트 단지 뒤쪽의 산책로에 커다란 밤나무 하나가 허리가 꺾인 채 나뒹굴고 있더라고요.
산책로 언덕 수풀에는 수백 그루의 밤나무들이 있었지만 유독 그 나무만 부러졌더라고요.
나무를 바라보던 아내가 말했어요.
"여보 어젯밤에 비바람이 많이 불더니 저 나무가 부러졌나 봐, 어쩌면 좋아"
"어 그러네"
다른 나무들은 키가 비슷해서 저들 끼리 서로 의지하고 버틸 수 있었지만 가장 키가 크고 울창했던 밤나무는 바람을 홀로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더라고요.
제 고등학교 동창 중에 고등학교 때 전국 모의고사를 보면 전국 등수가 내 반등수보다 좋았던 친구가 있었어요.
심지어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경우도 많았어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더라고요.
결국 그 친구는 서울대에 차석으로 입학했죠.
내가 그놈 때문에 얼마나 자존감이 무너졌었는지 몰라요.
더구나 공부를 잘하는 놈이 착하기까지 하니까 더 성질나더라고요.
저는 고등학교 때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담배도 폈거든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아래의 글은 몇 해 전 그 친구와 주고받은 카톡이에요.(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실명이 없으니 공개할게요. 친구야 미안~)
새해 복 많이 받아 철아.
난 아직 미국시민권 신청을 안 했어.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나만 한국인이야 ^^
난 아들 둘에 막내가 딸인데 큰애는 직장 다니며 나가 살고 둘째는 시카고에서 대학 다니고 고등학생인 막내는 씽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라 운동 때문에 라스 베가스에서 홈스테이 하며 거기서 학교 다니고 있어.
지금 애엄마는 한국에 있고.
온 식구가 따로 살고 네 가지 시간대에 사는 셈이지.
여기는 한국보다 오미크론이 더 심한데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아.
아무쪼록 건강 잘 챙기고 좋은 세상 올 때까지 잘 버티고 살자.
그 친구는 국제 변호사로 현재 미국에서 로펌 오너가 되었어요.
물론 세상적으로 보면 성공해 보이지만 그 친구와 가끔 통화해 보면 분주한 나머지 밥 세끼를 햄버거로 때울 때도 있고 그마저도 못 챙겨 먹을 때가 있다는 거예요.
작년에는 일 때문에 잠깐 한국에 들어왔는데 같이 커피 한잔도 못 마시고 보냈어요.
미국에서도 바쁜 날은 퇴근도 못하고 사무실에서 잠깐 쪽잠을 자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집에 가도 반겨주는 자식이 있길 하나 여우 같은 마누라가 있길 하나.
저는 그 친구에게 "행복하니"라고 물은 적이 없어요.
근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몰라"
그 친구에게 세상은 그렇게 행복하고 좋은 곳이 아니더라고요.
그 친구가 카톡 인사 말미에
"좋은 세상 올 때까지 잘 버티자"라고 한걸 보면.
그렇게 잘 나가더니
"새끼 꼴좋다" 싶다가도 측은한 마음이 들어요.
저러다 혹시라도 남의 나라에서 죽으면 누가 문상을 가나?
혹시 아프기라도 하면 자식과 아내 누가 돌봐 줄까?
남보다 키가 크고 가지가 울창한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부러지기 쉬워요.
가지를 쳐야죠.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인기든 과하게 독차지하려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에요.
나눠야죠.
가족에게 이웃에게 더러는 전혀 관계없는 남에게도.
혹시 로또에 당첨되는 꿈을 꿔본 적 있어요?
로또에 당첨돼서 부자 되는 꿈.
그런데 통계에 따르면 로또 당첨자의 대부분이 수년 내에 당첨 전보다 더 가난해지고 심지어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다고 해요.
가난은 돈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자식이 공부를 잘 못해서 걱정이죠?
다행인 줄 아세요.
성공해서 미국 가면 어버이날 갈비도 못 얻어먹어요.
내 돈 주고 사 먹어야 돼요. 슬프죠.
오늘 집에 가서 아들에게 얘기하세요, 아들아 공부 못해줘서 고마워.
남편이 속 섞여서 신경질 나죠?
다행인 줄 아세요.
너무 멋있고 젠틀하면 바람 펴요.
딴년들이 그냥 않놔둬요.
마트 가서 딴 놈들이 시비 걸면 제일 먼저 멱살 잡아줄 사람이 남편뿐이라고요.
오늘 집에 가서 남편한테 얘기하세요.
답답하고 속 터지지만 늘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차가 오래된 똥차예요?
다행인 줄 아세요.
차 문 열어두고 다녀도 아무도 손 안 대요.
여기저기 박아도 티도 안 나고 스트레스도 안 받아요.
그러다 진짜 고장 나서 서버리면 그냥 길에다 보리고 오세요.
사업이 잘 안돼요?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내 맛있는 것 좀 사주세요.
사업이 잘 될 때는 바빠서 못했잖아요.
집 밖이 지옥이라면 누가 뭐래도 내 집이 내 나와바리니까요.
똥개도 지 구역에서는 50% 먹고 들어간다 잖아요.
제 주위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돈이 수백억씩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그중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 별로 없어요.
수억 원짜리 자동차를 타고, 수천만 원짜리 시계를 차고 명품을 입고 신어도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골치 아프고 괴로운 일들로 얼굴이 늘 화나있더라고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행복하지 않은 놈이 어떻게 남과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요.
인상 박박쓰는 놈이 어떻게 천국에 가요.
그 사람 때문에 천국도 지옥 돼요.
그래서 못 가요.
결핍이야말로 행복의 조건이에요.
조금 부족한 게 좋아요.
성공하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건 좋지만 결과에 집착하거나 남과 비교하지 말아요.
어떤 분이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맞아요.
살다 보면 누구나 진짜 힘들 때가 있죠.
근데 죽을 것 같은 거지 진짜 죽지 않아요.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걸어가다가 갑자기 땅에 쓰러져 죽는 사람 못 봤어요.
없어요.
안 죽어요.
오늘도 성공에 대한 집착보다는 늘 조금 부족해도 행복한 하루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