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왼손잡이는 나중에 출세를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왼손잡이로 초등학교를 들어가면 큰일이 날 것 만 같았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거실에 밥상을 펴고 앉아 공책과 연필을 가지고
혼자서 왼손잡이 교정 훈련을 시작하였다.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밥을 먹는 것이 도통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오른손을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잘못을 한 아이를 때리듯(이때는 맞으면서 컸기에...)
글씨가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내 왼손이 오른손을 때리고,
손톱으로 꼬집고, 또 이빨로 깨물었다.
강박 같이 나의 오른손을 학대하며 고치기를 반복했다.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고 자꾸만 삐뚤빼뚤한 글자를 쓰는
내 오른손이 나는 미웠다. 그런 내 오른손이 나는 싫었다.
그렇게 아무 죄도 없는 내 오른손은 상처가 여기저기 생겨났다.
태어난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임을 배우기도 전에
나는 나의 있는 모습 중 한 부분을 부정하는 것부터 배웠다.
이렇게 태어난 내가 잘못된 거구나.
나는 왜 왼손잡이로 태어났을까.
오른손이 밉다. 오른손이 아프다.
어느 여름날 처음으로 할머니께서 봉선화꽃으로 나의 손끝을 물들여주셨다.
그런데 봉선화꽃의 고운 빛깔은 어느 한쪽도 미워함 없이
왼손과 오른손 양손 모두에 똑같이 물들여 저 있었다.
봉선화꽃의 고운 빛깔은 왼손, 오른손을 구분하지 않았다.
왼손이 무엇을 잘하든, 오른손이 무엇을 못하든 다름이 없는 듯 양손 모두에 고운 빛깔을 물들여 주었다.
똑같이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예쁘게 물든 나의 양손이었다.
봉선화꽃의 고운 빛깔은 알고 있었나 보다.
나의 양손은 있는 모습 그대로 모두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결국 할머니와 내가 바라고 계획했던 오른손잡이는 되지 못했다. 나는 그냥 양손잡이가 되고 말았다. 왼손은 그림 그리기, 가위질, 공 던지기 등 각종 힘쓰는 것을 잘한다. 오른손은 글씨 쓰기와 주인한테 밥 먹여주기를 잘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부쩍 왼손으로 숟가락질하는 횟수가 많이 늘었다. 점점 왼손으로 숟가락질하는 것이 편해지고 있다. 태어난 본성은 어쩔 수 없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