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영화_시나리오
용어 설명
V.O.(보이스 오버) : 연기자나 해설자 등이 화면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대사나 해설 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디졸브 : 앞 장면이 서서히 사라지고 다른 장면이 서서히 나타나는것.
CUT TO(컷 투) : 시간경과
“본 이야기는 역사 속의 사건과 인물들을 극적으로 각색한 것으로서 몇몇 장면들은 지극히 허구적인 추측과 요약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91. 실내/비행기 안/낮
좁은 좌석. 진영이 노트북을 키고 헤드셋을 낀 채 작업중이다. 헤드셋 소리가 꽤 커서 밖으로 튀어나오자, 옆에 있던 백인 승객은 얼굴을 찌푸린다.
92. 실외/동국대 근처/낮
진영이 차에 기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선미
PD님!
어느새 선미가 와서 그를 부른다. 그녀는 주변 지나가는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진영
어, 왔어?
CUT TO:
진영과 선미는 산책로를 걷는다.
진영
어때. 학교는 다닐 만하고?
선미
네. 진짜 대학생 된 것 같아요.
진영
진짜 대학생 맞잖아.
둘은 소리내어 웃는다.
93. 실내/병원/낮
의사가 선미의 발을 진찰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진영.
의사
많이 나아졌네요. 그래도 하이힐은 신지 마시고……
94. 실내/차 안/낮
차 안으로 햇빛이 번지고, 선미와 진영이 앉아있다.
진영
선미야.
선미
네?
진영
많이 나아서 다행이다.
선미
네……
진영
언제든지 돌아와. 돌아오고 싶으면……
선미는 진영을 지그시 바라본다.
선미
……PD님?
진영
응?
선미
전 지금이 딱 좋아요. 아직까진……
진영
……그러니?
진영은 씁쓸한 얼굴로 운전한다.
95. 실내/비행기 안/밤
불 꺼진 비행기 안. 진영이 보고 있는 노트북 화면만 홀로 빛난다. 옆 승객들이 불편한 듯 눈치를 주지만 진영은 아랑곳 않고 작업을 이어간다. 그리고 진영의 헤드셋에서 ‘Be My Baby’의 전주가 미세하게 들린다.
96. 실내/회의실/저녁
진영이 안무가 존테, 스타일리스트 조니와 무언가를 상의중이다. 조니는 의상 시안을 보여주고 존테 역시 의견을 말하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보니 예은이다. 이에 진영은 들어오라고 손짓하는데……
예은
(살갑게 웃으며) Hi. (안녕하세요.)
예은은 웃으며 조니와 존테에게 인사한다. 그들 역시 반갑게 받아주는데.
예은
PD님……바쁘세요? (진영, 존테, 조니를 한번 쓰윽 보고) 바쁘신 것 같긴한데……PD님 의견이 필요해서요.
진영은 시계를 한번 본다.
진영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한번 더 시계를 보고) 근데 지금은 바쁜데……조금 있다 안되겠니?
그리고 진영은 다시 회의에 열중한다. 예은은 애써 표정관리하며 밖으로 나가고, 문을 닫고 나와 벽에 기대 슬픈 표정을 드러낸다.
97. 실내/녹음실/저녁
원더걸스 멤버들 그리고 엔지니어 한 명이 음악 작업 중이다.
유빈
(들어오는 예은을 보고) 안 오신대?
예은은 고개를 끄덕인다.
예은
그냥 우리끼리 하지 뭐.
혜림
(해맑게) 어차피 언니가 프로듀싱 한거잖아?
예은은 혜림의 순수한 언행에 웃음이 터진다.
예은
(손뼉을 짝 치고) 그럼 다시 해보자!
엔지니어가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을 샘플링한 곡이 흘러나온다. 강렬한 사운드다.
유빈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감탄한 뒤) 와. 신중현 선생님. 감사합니다.
98. 실내/앨범아트 촬영장/낮
멤버들이 검은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다. 찰칵거리는 셔터음이 연이어 들린다.
그동안 앞장면의 음악이 계속해서 흐른다.
그러다 음악이 불길하게 툭 끊기고, 마침 촬영도 끝이 난다. 멤버들은 조금 차가워 보이는 얼굴로 박수를 치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한다. 게다가 그들은 지쳐보인다.
CUT TO:
진영은 카메라에 찍힌 멤버들 사진을 본다. 선예, 예은, 소희, 유빈, 혜림이 일렬로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들의 강렬한 눈빛이 카메라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다.
99. 실내/회의실/낮
방금 전 사진은 그대로 앨범 아트의 형태가 되어 빔프로젝터 스크린에 띄워진다. 앨범 아트에는 Wonder World가 큰 글씨, Wonder Girls 2nd Album이 작은 글씨의 형태로 적혀있다.
스크린 옆에 서있는 진영이 버튼을 누르자, 재생 아이콘이 띄워진 화면이 등장한다. 이후 진영이 다시 한번 버튼을 누르고, 영상이 재생된다. 영상은 ‘Be My Baby’ 뮤직비디오로, 진영이 장면 95에서 작곡했던 바로 그 음악이다. 게다가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은 방금 전 앨범아트와 의상이 같다. 이는 마치 앨범아트에서 뮤직비디오로 바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JYP 직원들은 뮤직비디오를 보며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계속 끄적인다. 진영은 긴장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본다.
100. 실내/회의실/낮
진영은 회의실에 홀로 남아 직원들의 의견이 적힌 종이를 본다. “타이틀곡으로는 아쉽습니다.”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2AM이 부르면 잘 될 것 같습니다.” 등 부정적인 의견이 꽤 자주 보이고, 진영의 표정이 좋지 않다.
101. 실내/부엌/저녁
예은과 진영이 마주앉아 밥을 먹는다. 다른 멤버들은 보이지 않고,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진영은 한숨을 푹 쉰다.
예은
……수록곡들도 반응이 안 좋았어요?
진영
……응.
예은
(조금 울컥해서) ……말도 안돼요.
예은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진다. 그녀는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진영은 그녀를 걱정스레 쳐다본다.
예은
(진영의 시선을 느끼고, 음식을 다 삼킨 뒤) ……PD님!
진영
응?
예은
……저희 한국 언제 가요?
진영
(입을 벌린 채) ……
이번에는 그녀의 눈물이 제대로 터진다. 그녀는 울면서 얘기한다.
예은
미국 애들은 저희가 노래 몇십곡을 내도 몰라요! 빌보드 들어가면 뭐해요! 계약도 안해주잖아요! 맨날 공연하고 방송만 나가고, 맨날 보는 사람만 보고!
그동안 씩씩하고 강해 보였던 예은의 눈물은 보기에 더욱 서럽다. 진영은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한다.
예은
(조금 안정된 뒤 눈물을 닦으며) 이제는……저희 음악이 인정받는 곳으로 갈래요.
진영
……너희 모두의 생각이니?
예은
……
예은은 다시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는다.
진영
일단 나중에 더 얘기해보자.
진영 역시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식사를 재개한다.
102. 실외/거리/낮
진영이 한창 공사중인 식당 앞 거리에 서있다. 남자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공사 현장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진영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간판이 설치되는데, 간판에는 ‘KRISTALBELLI(크리스털벨리)’라고 적혀있다. 진영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는데……
선예와 어느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온다.
선예
(해맑게 웃으며) PD님!
선예 역시 간판을 올려다본다.
선예
맨해튼 한복판에 한식당 지으신다더니……꿈 이루셨네요!
진영
(역시 웃으며) 응……
진영은 소개를 바라는 눈치로 선예와 선예 옆 남자를 쳐다본다.
선예
아, PD님. 남자친구예요. 저번에 말씀드렸던……
제임스(남/28세)
(진영과 악수하며) 안녕하세요. 제임스입니다.
진영
(조금 당황하여) 안녕하세요……
진영의 얼굴에 수많은 감정들이 지나간다.
제임스
(교포발음으로 최대한 정확하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사장님. 오늘은 저희가 모실게요.
진영
아, 네. 감사합니다.
제임스/선예
(웃으며) 사장님, 편하게 하세요./PD님 왜 그러세요!
그러자 진영은 어색하게 웃는다.
선예
(제임스의 손을 잡고 뒤돌며) 그럼 저희 먼저 가볼게요.
진영
어어……좀 있다 보자!
진영은 멀어져가는 커플에게 손을 흔든다. 잠시 그들을 멍하니 보던 진영의 얼굴에는 점차 미소가 번진다.
103. 실내/JYP USA 2층/밤
원더걸스 멤버들과 진영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사진 속 진영은 해맑게 웃고 있다.
사진 아래에는 소파가 있는데, 소희가 거기 앉아 영화를 보고 있다. 불은 꺼져있고 강한 불빛이 소희의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소희는 인기척이 들려 문쪽을 본다. 바로 진영이다.
진영
영화 봐?
소희
네.
진영은 소희 옆에 앉는다.
진영
같이 볼까?
소희
(시선이 TV에 꽂힌 채) 네.
진영
무슨 영화 봐?
소희
<라비앙 로즈>요.
진영
에디트 피아프……위대한 가수지.
소희
네……이 영화 보고 처음 알았어요.
진영
(매우 놀라서) 뭐? 원래 몰랐어?
소희
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소희
……진짜 연기 잘하지 않아요?
진영
누구?
소희
마리옹 꼬띠아르요. (장난스럽게) 마리옹 꼬띠아르 몰라요?
진영
(역시 웃으며) 모르겠는데.
둘은 함께 웃고 다시 영화에 집중한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진영은 고개를 돌려 소희를 본다. 진지한 얼굴로 영화에 열중하는 소희의 모습이 진영에게는 새롭다.
104. 실내/JYP USA 2층/아침
날이 밝았다. 이전 장면에 소희와 함께 앉아있던 그 소파에 진영이 혼자 누워 자고 있다. 진영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깬다. 그는 소리가 들리는 녹음실 쪽으로 비몽사몽하여 휘적휘적 걸어간다.
녹음실 안에는 혜림과 엔지니어가 있다. 스피커로는 힙합 비트가 강렬하게 흐른다.
혜림
어 PD님! 일어나셨어요?
진영
어, 그래……뭐하는 중이야?
혜림
랩이요! 제가 가사 쓴 거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진영
(웃으며 자리에 앉더니) 한번 들어보자.
혜림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침을 한번 삼킨다.
혜림
왓츠마넴?
엔지니어
엘아이엠(L.I.M.)!
엔지니어의 갑작스러운 추임새에 진영은 웃음이 터진다.
혜림
원더걸스 막내!
엔지니어
히얼 아이엠(Here I am)!
혜림
내가 혜림이다. 혹시 모르면 테레비 봐. 그래도 모르면 이거나 적어라 조심히 받아라 옛다 내 랩이다! 텔미 누가 나처럼 쏘핫? 노바디, 왜 불만있어? 뭘 봐 모두 잘 알 듯 나 뒤늦게 합류 그래서 어쩌라고 솔직히 말해봐 혜림이 멋져라고!
랩을 끝낸 혜림은 뿌듯한 얼굴로 진영을 쳐다본다. 진영은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터지고, 웃느라 감상평을 얘기 못하자 혜림이 재촉하듯이 쳐다본다.
진영
좋네, 좋아.
혜림
정말요? 와. 성공했어요!
헤림은 엔지니어와 하이파이브를 치고 진영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본다.
105. 실내/회의실/낮
장면 94의 회의실. 이번에는 원더걸스 멤버들이 자리에 앉아있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 자신의 손톱을 보거나 그저 멍을 때리고 있다. 중앙의 한자리는 비어있다.
그리고 진영이 들어온다.
진영
좀 늦었지?
원더걸스 멤버들은 익숙하다는 듯 웃는다.
진영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
유빈
(심드렁하게) 뭔데요?
진영은 바로 말하지 않고 뜸을 들인다. 그러자 별생각 없어보였던 멤버들도 점차 초조해하게 된다.
소희
(답답해서) 아 뭐예요?
진영
……우리 앨범 작업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아. 영어버전은 폐기하기로 했어.
꽤 충격받은 것처럼 보이는 혜림을 제외하고, 나머지 원더걸스 멤버들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진영
이유는 너희들도 예상하다시피……유통 관련해서 미국 쪽 애들하고 말이 좀 안 맞았어. 계약이 잘 안됐지.
원더걸스
……
진영
우리한테서 새로운 성과를 원하는 것 같아. 그러려면 새로운 곡을 내서 알려야 되잖아? 근데 그건 또 안 도와주려 그러고……
선예
……그럼 이제……어떻게 되는거죠?
진영
(잠시 뜸을 들이고) 예전처럼 한국시장을 노리기로 했어.
진영의 말이 이해안된다는 듯 눈알을 굴리며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던 멤버들, 갑자기 무엇을 깨달은 듯 놀란다.
진영
이제 한국가자.
멤버들은 벙쪄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선예
이제 그럼……한국에서 활동하는 거예요?
진영
응.
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쪽에서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난다. 유빈이다. 그녀는 애써 안 우는 척 눈물을 닦는다.
소희
(조심스럽게) 이제 미국은……포기하는 건가요?
진영
(살짝 웃으며) 포기라곤 하지 말자, 응.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미국에 갈 건데…… (조금 장난스럽게) 고향에서 너무 떨어져 있었지? 기 충전하러 가야지.
멤버들은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진영
그동안 정말 고생많았어.
선예
네 PD님두요……
이번에는 예은이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터진다. 선예가 그녀를 위로한다.
선예
(예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왜 울어……
선예와 예은은 서로를 끌어안고, 유빈은 조용히 눈물을 닦으며 감정을 다스린다. 그리고 소희는 여전히 울지 않고 그저 멍을 때린다.
그런데 진영은 혼자 가만히 책상을 보던 어두운 얼굴의 혜림이 눈에 밟힌다.
진영
림아, 괜찮아?
혜림
(고개를 들고) 네…… (활짝 웃으며) 저는 다같이 하는 거라면 다 좋아요!
그러자 다같이 웃음이 터진다. 눈물이 고여있지만 행복한 웃음이다.
이후 페이드 아웃하며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