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영화_시나리오
용어 설명
V.O.(보이스 오버) : 연기자나 해설자 등이 화면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대사나 해설 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디졸브 : 앞 장면이 서서히 사라지고 다른 장면이 서서히 나타나는것.
CUT TO(컷 투) : 시간경과
“본 이야기는 역사 속의 사건과 인물들을 극적으로 각색한 것으로서 몇몇 장면들은 지극히 허구적인 추측과 요약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74. 실내/연습실, 사무실 교차/밤, 낮
평소 원더걸스 멤버들이 쓰던 JYP 미국지사의 연습실. 불이 꺼져 있어 어둡다. 허나 곧 문이 열리더니 빛이 한 줄기 들어오고, 그 위로 진영이 저벅저벅 걸어온다.
그는 연습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진 피아노를 개방한다.
CUT TO:
햇빛이 들어오는 화창한 날의 사무실. 진영은 소파에 앉는다. 처음 원더걸스 멤버들과 일대일로 미국 진출을 논의했던 바로 그 자리다. 진영은 심각한 얼굴로 골똘히 생각중이다.
기자 2 (V.O.)
……그래서, 사실인가요?
진영은 번쩍 고개를 든다.
진영
네?
기자 2
원더걸스 부당대우 논란말이죠. 멤버들 중엔 미성년자도 있어 미국진출이 학대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진영
……
CUT TO:
다시 연습실. 진영은 건반을 두들기기 시작하고,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된 ‘Again & Again’을 연주한다. 그리고 반주 위에 노래를 덧씌운다. 그의 목소리는 감미롭고 한편으로는 쓸쓸하다.
CUT TO:
진영은 생각에 잠겨있다.
기자 2 (V.O.)
저기……
진영
(정확한 발음으로, 조금은 차가운 태도로) 원더걸스가 신인 그룹도 아니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그냥 있었겠어요? 모든 일은 멤버들의 동의하에 이뤄진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기자 2
아……
기자 2는 진영의 말을 지금까지 담고 있던 녹음기를 쳐다본다. 진영 역시 녹음기를 바라본다. 녹음기에는 빨간 불이 들어와 있다.
CUT TO:
그리고 다시 연습실. 진영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있다. 격정적인 보컬과 함께 음악은 절정을 이루고, 점점 잔잔한 반주로 변화하며 노래는 끝이 난다. 진영은 피아노 건반 위로 힘이 빠진 듯 몸을 숙인다.
그리고 환호성이 점점 들려오기 시작한다.
관중들 (V.O.)
앵콜! 앵콜!
75. 실내/공연장/저녁
환호성과 함께 원더걸스 멤버들이 무대로 오른다. 조나스 브라더스 오프닝 공연을 서던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그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아래에 나타나는 자막, “2010년 6월 4일 워싱턴 D.C.”, “원더걸스 월드 투어”
원더걸스의 인기곡, “Tell Me”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하면 관중의 함성은 더욱 커진다. 멤버들은 숙련된 모습으로 무대를 이어간다. 그들의 안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맞는다.
이후 무대는 계속해서 바뀌고, 그때마다 자막이 순차적으로 나타난다. ‘6월 5일 애틀랜타’ ‘6월 6일 뉴욕’, ‘6월 8일 시카고’ ‘6월 9일 휴스턴’. 그동안 ‘Tell Me’는 계속해서 흐른다.
76. 실내/무대 뒤편/저녁
공연을 마치고 원더걸스 멤버들이 무대 뒤편의 계단을 통해 내려온다.
진영
(박수를 치며) 얘들아 잘했어!
멤버들 역시 환호한다. 그런데 유독 선예의 표정이 안좋다. 진영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데……
77. 실내/JYP USA 내 계단/새벽
진영이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몸을 긁적이며 계단을 내려간다. 그런데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진영의 얼굴에서 잠이 점차 달아난다.
선예 (V.O.)
저는 그렇게 막……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요. 아버지가 아프신데 제가 왜 가기 싫겠어요. (잠시 상대방의 말을 듣다가) 아니……그렇게 얘기하시면……
진영은 인기척을 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선예의 말을 듣는다.
선예
저도 아버지 보고 싶어요……
선예는 눈물을 흘리고, 몰래 듣고 있던 진영 역시 슬픈 얼굴이 된다.
78. 실내/공연장/저녁
화려한 조명 아래 선예. 그녀는 레이디 가가의 ‘Paparazzi’ 커버 무대를 펼친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얼굴이 빛나고, 눈빛에는 독기가 가득하다.
79. 실내/무대 뒤/저녁
한편 무대 뒤에서 진영과 예은이 선예의 공연을 보고 있다.
예은
(음악 소리에 안 묻히려 큰 목소리로) ……쟤 괜찮은 거 맞죠?
진영
……
둘은 계속 걱정스러운 얼굴로 선예를 본다. 선예는 광적으로 무대를 이어나간다.
80. 실내/무대 뒤 계단/밤
공연을 끝낸 멤버들이 무대 밖으로 이동해 계단으로 내려온다. 진영이 그들을 무거운 표정으로 보던 와중에, 선예가 갑자기 쓰러지는데, 진영은 빠르게 달려가 그녀를 부축한다.
선예
(울먹이며) 아버, 아버지가……
81. 실내/장례식장/저녁
우울한 얼굴의 선예가 상복을 입고 손님들을 맞는다. 수많은 조문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화려한 얼굴의 연예인 지인들은 선예에게 다가가 조의를 표한다.
진영은 안타까운 얼굴로 선예를 쳐다본다.
CUT TO:
선미는 선예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는 애써 눈물을 참고 절차대로 절을 하고, 모든 과정이 끝나자 선예를 부둥켜 안는다. 둘은 함께 눈물을 흘린다.
82. 실내/장례식장 복도/저녁
선예는 장례식장 내 복도를 걷는다. 어디서 튀어나온 취재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맨을 대동해 그녀를 찍는다. 이에 선예는 핼쑥해진 얼굴로 힘없이 말한다.
선예
(애써 웃으며) 찾아와주신 건 감사한데……사진은 찍지 말아주세요.
83. 실내/장례식장/저녁
선미를 포함한 원더걸스 멤버들, 진영이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잠시 후 그들 곁으로 선예가 힘없이 다가와 앉는다.
소희
(위로하려는 듯 선예의 등에 손을 올리며) 언니……
선예
고마워 다들……
다들 할말을 찾지 못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선예가 말을 꺼낸다.
선예
PD님?
진영
응?
선예
투어는 언제 다시하죠?
진영
5일 뒤야. 근데 일단……
선예
저도 갈게요.
진영
응?
선예를 제외하고 모두들 당황한 얼굴이 된다. 선예는 괜찮다는 듯 웃어보인다.
84. 실내/주차장/밤
여전히 상복을 입은 멤버들과 진영이 주차장에 서있다.
예은
PD님? 선예 진짜 무대에 세우실 거 아니죠?
진영은 팔짱을 끼고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예은
걔 성격 아시잖아요. 폐 끼치는 거 싫어하는 거……보나마나 힘들어 할 텐데……
멤버들을 태울 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진영
……일단 지켜보자.
예은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차에 오른다.
85. 실외/공연장, 캐나다 거리/저녁
무대 조명 아래 빛나는 선예의 얼굴. 그녀의 얼굴은 감정이 없는 듯 차갑다. 그리고 뜨는 자막, ‘2010년 6월 29일 캐나다, 월드투어 재개’
멤버들은 기계음이 잔뜩 섞인 ‘2 Different Tears’를 화려한 퍼포먼스로 선보인다.
CUT TO:
음악은 계속해서 흐르고, 공연장 바깥 거리에는 캐나다 사람들이 일상적인 모습으로 거리를 걸어다닌다.
음악 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86. 실내/비행기/오전
멤버들과 진영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진영과 선예를 제외한 멤버들은 모두 자고 있다. 진영은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선예를 발견한다. 이윽고 선예가 뒤돌자 둘은 눈이 마주치고, 선예는 진영을 향해 싱긋 웃는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보는 창밖으로 맑은 하늘이 끝없이 이어진다.
87. 실내/자동차 안/오후
여러 개의 야자수들이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다. 자동차 차창을 통해 본 풍경이다. 꽤 오랜 시간 이동하는데, 야자수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선예는 창문에 얼굴을 기대고 야자수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88. 실외/하와이 도로/오후
야자수가 줄지어 있는 한적한 도로를 자동차가 가로지른다.
89. 실외/인도/낮
JYP 미국지사 앞 인도. 선예가 캐리어를 들고 떠날 채비를 하고, 진영은 그녀를 마중나와있다.
진영
(횡설수설한다.) 거기 안전한 거 맞지? 아니 안전할 리가 없나? 그래도 지진은 끝났으니까……거기 사람들은 괜찮어? 보장된 사람들이야? 아니 그래도 꼭 아이티에서 봉사를 해야겠어?
선예는 대답 않고 그저 웃어보인다. 진영도 답을 기대한 건 아니라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진영
꼭 지금 가야겠어? 지금이라도 취소 못하나? 간만에 휴간데……
선예
(살갑게 웃으며) 지금 아니면 언제 가요.
진영은 조금 슬퍼보이지만 그래도 못 말린다는 듯 웃는다.
진영
……그래, 잘 갔다 와. 조심하고.
진영은 선예를 떠나보내고, 그녀의 뒷모습을 애틋한 눈길로 쳐다본다. 그때, 예은이 재빠르게 옆으로 지나가는데,
진영
너 어디가냐?
후줄근한 차림의 예은은 깜짝 놀란다.
예은
먹을 거 사려구요.
진영
너는 어디 안 가?
예은
먹을 거 사러가는데요?
진영
아니……
예은
(장난스럽게 웃고) 어디 안 가요. 저는 선예처럼 못해요. 일단 저부터 챙기고!
진영
알아.
예은
(입을 삐죽거리며) 아, 예.
진영은 예은을 보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90. 실내/부엌/점심
진영은 식탁에 앉아 자신 앞에 놓인 괴상한 모양의 쿠키들을 쳐다본다. 예은과 혜림은 기대하는 얼굴로 그를 쳐다본다.
혜림
얼른 드셔보세요!
진영은 쿠키 하나를 집고 입에 넣는다. 그는 쿠키를 질겅질겅 씹으며 점점 표정이 안 좋아지는데……예은과 혜림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이만 웃음이 터져버린다.
유빈
진짜 맛없죠?
모두들 웃음이 터진다. 허나 웃음소리는 점점 잦아들고……진영의 시선이 비어있는 의자에 꽂힌다.
진영
(쿠키 하나를 더 먹으며) 그래도 먹을 만한데?
어디선가 힘없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찾아오는 정적.
소희
……이제 저희 뭐하죠?
쿠키가 담긴 접시만 덩그러니 놓인 식탁. 그 주위의 의자 중 하나는 비어있고, 모두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침묵.
이후 천천히 페이드 아웃 후 디졸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