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미 즐기고 있던 폴리네시안,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이야기
여행을 준비하지 않아도, 하와이에 가본 적이 없어도, 우리는 이미 폴리네시안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 뿌리를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서핑, 타투, 훌라—이 세 가지는 전 세계인이 즐기거나 알고 있는 문화지만, 그 기원은 태평양 한가운데 펼쳐진 폴리네시아 제도다.
폴리네시아는 태평양의 뉴질랜드, 하와이, 이스터섬을 삼각형 꼭짓점으로 하는 영역에 흩어진 1,000여 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약 3,000년~1,000년 전, 동남아시아의 오스트로네시아계 인류가 무동력 카누를 타고 별과 바람, 해류를 읽으며 이주했고, 그렇게 바다 위 거대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언어와 신화, 춤, 그리고 몸에 새긴 문양까지—이 문화권은 바다로 연결되어 있었다.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하와이에선 ‘헤에날루(Heʻe nalu)’라 불리며, 바다와 하나 되는 신성한 의식이자 공동체의 축제였다. 파도에 오르는 건 기술뿐 아니라 용기와 영성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타투 역시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문양에는 가문, 계급, 업적, 영적 세계와의 관계가 담겼다. 폴리네시안에게 타투는 ‘살아있는 역사서’였고, 몸은 그 역사를 새기는 캔버스였다.
훌라는 노래와 이야기, 몸짓이 결합한 종합예술이었다. 사랑의 노래이자 전쟁 기록이었고, 신화와 역사를 대대로 전하는 방법이었다.
전통 항해술(Wayfinding)
별자리, 해류, 파도의 패턴, 새의 비행을 읽으며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무동력 항해술.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대양을 읽는 지혜이자 정체성 그 자체였다.
루아우(Luau) 연회 문화
타로 잎 위에 음식을 올리고, 훌라와 노래, 설화를 곁들이는 하와이식 잔치. 먹는 것 이상의 공동체 의식이 담겨 있었다.
레이(Lei) 꽃목걸이
환영, 축복, 작별의 의미를 담은 목걸이. 하와이에선 단순 장식이 아니라 ‘마나(영적 힘)’를 담아 주고받는 행위였다.
우쿨렐레(Ukulele)
포르투갈 이민자들의 작은 기타에서 시작해 하와이에서 독자적으로 발전, 오늘날 세계인이 사랑하는 악기가 됐다.
타로와 포이(Poi)
타로 뿌리를 찌고 빻아 만든 전통 음식. 의례와 축제, 가족 식탁의 중심에 있었다.
폴리네시아의 섬들은 오랫동안 바다를 통해 문화를 나눴지만, 18세기 이후 유럽 열강이 도착하면서 그 세계는 급격히 바뀌었다.
하와이는 1893년 미국 상인과 해병대에 의해 왕국이 무너졌고, 여왕 릴리우오칼라니는 피를 막기 위해 무저항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하와이는 미국에 합병되었고, 토지와 자원은 외부 자본에 넘어갔다. 문화 역시 금지됐다.
하와이어는 학교에서 사라졌고, 훌라는 ‘야만적’이라며 금지됐다. 타투는 ‘우상숭배’로 낙인찍혔고, 서핑조차 금기시됐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훌라 쇼, 상업 서핑, 패션 타투는, 이런 억압 속에서 살아남은 변형된 잔향이다.
하와이는 세계 최고의 휴양지이지만, 그 해변 뒤에는 높은 물가, 토지 문제, 원주민 공동체의 해체라는 현실이 있다. 관광 산업은 경제를 살리지만, 동시에 원주민이 고향에서 밀려나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했다.
서핑을 하며, 타투를 새기며, 훌라를 볼 때—그것이 단순한 ‘이국적인 볼거리’가 아니라, 한때 빼앗기고 금지당했던 정체성의 한 조각임을 안다면, 그 경험은 훨씬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