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큽니다, 큽니다, 넘어갔어요!
야구에서는 클린업 트리오(Clean-up Trio)라고 불리는 타순이 있다. 바로 상위타순 중에서도 3번, 4번, 5번 타자를 의미하는데, 강력한 타격력으로 수비를 무너뜨림으로써 타점과 득점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뜻에서, 베이스에 있는 주자들을 청소(Clean-up)해서 홈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이 그 이름의 유래라고 한다.
14화, "왜 4번타자를 강타자라 부를까?" 에서도 설명했듯, 3번, 4번, 5번 타자의 역할이 공격에 있어 매우 중요하기에, 강타자들로 구성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 번 더 설명하지만, 3번, 4번, 5번 타자는 공격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타자들이며, 각각 출루, 장타, 그리고 추가 득점을 위해 설계된 타순이기에 팀의 득점력있어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다.
아직도, 구글에 클린업 트리오를 검색하면, 22년도 더 지난 삼성라이온즈의 이-마-양 트리오를 제일 처음 보게된다.
이-마-양 트리오는 3번 타자 이승엽 - 4번 타자 마해영 - 5번 타자 양준혁 으로 구성된 KBO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의 클린업 트리오이다. 그들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KBO를 지배했던 가장 강력한 타자들이었으며, 이-마-양 트리오를 중심으로 한 삼성라이온즈의 타자들은 "거를 타선이 없네" 라는 밈을 탄생시킨 타자들이다.
그들을 가장 강력한 클린업 트리오라고 부르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바로 홈런 합산기록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2003년에 이-마-양 트리오는 KBO 한 시즌 역대 최다 홈런인 112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또한, 그 해는 이승엽은 56개의 홈런을 치며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을 갈아치운 한 해이기도 하다.
이처럼, 홈런은 가장 강력한 공격도구이자, 팬들이 절실하고 극적인 순간에 가장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염원에 보답하듯 드라마 같은 홈런을 쳐서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슈퍼스타들이 있다. 홈런을 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매우 낮은 확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타율이 3할(0.300) 이상이 되면 강타자라고 부른다고 설명했었다. 그런데, 이는 홈런과 안타 모두를 합쳐 계산한 수치이다. 홈런만을 놓고 가상타율을 따로 계산해 보았는데, 1시즌이 144경기이고, 1경기에 4타석을 나간다고 가정 했을 때, 어느 타자가 홈런타율이 1할도 채 되지 않는 5푼 2리라면(0.052), 3할과 비교했을 때 수치상으로는 작아보일지 몰라도, 그 타자는 1년에 홈런을 30개를 치는, 4번 타자의 자격이 있는 훌륭한 파워히터이다. 그만큼 홈런을 쳐 내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홈런을 야구의 꽃이라 부르는데, 역사적인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을 예시로 들며, 홈런과 치기 어려운 그 홈런을 치는 위대한 타자들의 집중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토막설명1 - 홈런이란?>
타자가 투수의 공을 쳤는데, 아주 강하게 잘 맞아서 타자가 친 공이 그라운드 담장 넘어가는 경우, 타자는 1루, 2루, 3루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밟음으로써 스스로 득점할 수 있는데, 이를 홈런이라고 한다.(큽니다! 큽니다! 넘어갔어요! 하면 홈런임)
안타깝게도,
주자가 1명도 없는 경우에 홈런을 치면 1점 밖에 점수가 나지 않아 솔로홈런이라고 부르고,
주자가 아래의 그림처럼 1명 있는 경우에 홈런을 치면 2점의 점수가 나서 투런홈런이라 부른다.
주자가 2명 있는 경우에 홈런을 치면 3점의 점수가 나서 쓰리런홈런이라 부르고,
주자가 3명 있는 경우에 홈런을 치면 4점의 점수가 나는데, 주자가 루(베이스)상에 꽉 찼을 때 친 홈런이라고 해서 포런홈런이라 부르지 않고, 만루홈런이라 부른다.
야구에서 한 번의 공격으로 낼 수 있는 가장 큰 점수가 바로 만루홈런으로 얻게 되는 4점이다. 또한, 타자 입장에서 팀이 지고 있거나 동점인 상황에서 주자가 많이 쌓인 경우가 주자가 없는 상황보다 홈런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훨씬 심한데, 이러한 부담감을 이겨내고 홈런이나 득점으로 연결되는 적시타를 치는 타자가 국민들의 칭송을 받는 슈퍼스타이자 위대한 타자가 된다. "국민타자 이승엽",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 "바람의 아들 이종범" 처럼 말이다.
나와 동년배인 삼성라이온즈 팬이라면 절대 잊지 못할 해 중 하나가 2002년일 것이다. 그 해의 한국시리즈는 프로야구의 역사상 가장 인상깊고 드라마틱 했었던 한국시리즈였다고 개인적으로 평을 한다.
정규리그 1위 였던 삼성라이온즈와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고 올라온 LG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삼성은 전통도 깊고, 타선도 강력했던 강팀이었지만, 2002년 이전까지 우승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팀이었다.
한국시리즈는 7전 4선승제로 7번의 경기 중, 4승을 먼저 거두는 팀이 그 해의 우승팀이 된다. 그간 강력한 타선에도 우승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삼성팬들은 우승에 대한 한(恨)이 깊게 맺혀있었었다.
<2002년 한국시리즈 기록>
1차전 : 삼성라이온즈 승
2차전 : 삼성라이온즈 패
3차전 : 삼성라이온즈 승
4차전 : 삼성라이온즈 승
5차전 : 삼성라이온즈 패
5차전 까지 삼성은 3승 2패를 기록하며 우승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나, 6차전에서 LG가 경기력에서 우세를 보였고, 삼성은 패색이 짙었다. 9회말 삼성의 마지막 공격이 되었을 때, 점수는 9 : 6으로 LG가 앞선 상황이었다. 이번 경기를 이기지 못하면, 7차전을 치루어야 하고,
경기의 분위기를 뺏겨서 LG가 우승했을 확률이 높았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던, 사실상 기세를 뺐기고 패배를 목전에 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늘 뒷심이 약했던 삼성이었고, 우승과 거리가 멀었던 삼성이었기에, 팬들은 이번에도 우승을 못하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9회말까지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삼성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9회말에 볼넷으로 주자가 2명이 쌓인 상황에서, 3번 타자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비록, 한국시리즈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던 이승엽이었지만, 그 해 홈런왕을 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모두가 이승엽의 홈런 한방이면 동점이 된다는 작은 희망을 품어봤다.
훗날의 이승엽도 늘 그랬듯이, 어렸던 이승엽도 꼭 필요하고 극적인 그 순간에 3점짜리 동점홈런을 쳤다.
온 동네가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고, "이제 연장전 간다", "경기는 원점이다" 라고 생각하며 삼성팬들은 도파민이 흘러넘쳤다. 동점이 되면 연장전에 들어가게 되니, 다시 원점에서 승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가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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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4번 타자 마해영이 또 홈런을 칠 줄은 모르고 말이다. 한국시리즈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홈런 2방이 백투백(연속 홈런)으로 터지며, 삼성이 6차전에서 9회말 10:9 역전승을 거두어 한국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던 가슴 웅장해지는 이야기를 누가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홈런은 바로 그런 것이다. 경기를 한 번에 끝내버릴 수도 있는 강력한 공격도구인 것이다.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란 말은, 바로 2002년의 삼성라이온즈의 우승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던가.
이 날의 역전승과 같은 만화같은 경기력과 집중력을 우리나라 선수들은 가지고 있기에, 한국은 국제경기에서, 모두가 기대하는 "약속의 8회"라는 드라마를 매 번 써 내려왔다, 그 드라마는 절망속에서 희망을 그리고, 배우들은 극적인 순간에 그 희망을 실현시켜 주기에, 그 것이 우리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다.
사실 희박한 가능성이긴 한데 말이다.
9회말은 경기의 가장 마지막 턴이다. 굳이 축구나 농구로 따지면, 경기종료 5분전 정도와 비슷한 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야구는 정해진 시간으로 경기의 종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웃카운트의 숫자로 경기의 종료를 결정하는 스포츠이므로, 마지막 공격 턴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3개의 아웃카운트라는 기회의 제약만 있을 뿐, 시간적 제약은 없다는 소리다.
야구는 그래서, 9회말이라는 기회의 제약속에서도 큰 점수차를 이겨내고 역전승을 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홈런이 있기에, 경기가 끝날 때 까지 관중들은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선수들의 초인적인 집중력과 팬들의 염원이 홈런으로 승화되어, 단번에 역전승이 가능하기에,
홈런을 야구의 꽃이라 부르는가 보다.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야구관람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