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이 짓누르는 스산한 새벽
무리를 벗어난 한 마리 늑대가 달린다.
은빛 껍데기로 무장한 뻣뻣한 자작나무 사이를
거침없이 빠르게 치고 간다.
가슴 속 깊이 억누른 서러움마저
거친 입김에 딸려 나와 새하얗게 흩어진다.
좀 더 높은 곳으로, 좀 더 넓은 곳으로.
폐 없는 곤충마저 숨죽이는 창백한 새벽
허기져 여윈 한 마리 늑대가 달린다.
울퉁불퉁한 둔덕과 쓰러져 죽은 나무와 억센 수풀 위를
처절하고 어지럽게 훑고 간다.
해진 발톱과 굽은 등과 차가운 털끝이
죽을 거냐고, 죽일 거냐고 비명을 지르는 듯.
좀 더 빨리, 좀 더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마침내 다다른 아슬아슬한 절벽 끝
지치고 탈진한 한 마리 늑대가 짖는다.
절벽을 거슬러 올라 드디어 만난 바람과
너울너울 반짝이는 비단 물결과
따스한 달빛 속을 누비는 유유한 새들에게.
온 공기와 온 빛과 온몸을 끌어모아
처량하고 구슬프게 울어댄다.
좀 더 멀리, 좀 더 들을 수 있는 데까지.
알파도 아니고 무리도 없는 회색 늑대 한 마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