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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웠네

by 김민

꽃을 피웠네.

억지로 다른 꽃을 피우라 해도

더러운 수꽃술로 치욕을 당해도

이름과 사는 곳을 빼앗기더라도

뿌리만은 상하지 않기를 소원하고 소원했네.

그래도 나는 꽃으로 반짝였네.


상한 몸으로 돌아온 내 자리에서

기도가 이루어져 감사하고 감사했네.

사시사철 모진 바람에 흔들려도

호기심과 혐오를 담은 막대기가 후려쳐도

뜯어진 잎사귀를 붙잡고 함께 울며

꽃을 피웠네.


하지만, 딱 한 번 꽃 피우길 망설였네.

나의 억울한 목소리가 시끄럽다고 나무랄 때는

더러운 수꽃술을 그만 용서하라 할 때는

대신 갚아주마고 동무가 무릎 꿇은 그때에는

꽃망울에 피지 말라 피지 말라 울부짖었네.

그래도 나는 꽃으로 반짝였네.


꽃잎이 지네.

나의 뿌리는 상하지 않았으리.

더럽혀진 이름도 말끔해졌으리.

같이 울어주던 상냥한 아이들아!

부디 나를 위해 꽃 한 송이만 피워주시게.

부디 서로를 위해서는 온천지를 환히 물들여 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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