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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사무치는 상실감

by 아피

노르웨이의 숲보다는 상실의 시대로 더 먼저 알아서 그런지 처음에는 도저히 입에 붙는 제목이 아니었는데 오랫동안 두고 읽다 보니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이 좀 익숙해진 것도 같다. 사실 노르웨이의 숲보다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좀 더 직관적이고 책을 관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노르웨이의 숲은 상실의 시대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이다. 몇 권 없는 책 사이에서 하루키 소설이 꽂혀 있길래 '그럼 상실의 시대도 있나?'하고 생각하다가 꺼내 읽었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두껍웠고 최근에는 보통 단편만 읽었지 장편은 안 읽어서 되게 오랜만에 읽는 장편 소설이었다. 틈틈이 읽느라 평소보다 읽는데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책이니 최애 책이니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책을 완독 하게 된 결정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기즈키의 죽음으로 인해서 와타나베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장면이었다. 죽음은 삶의 대극점이 아니라 삶 속에 존재한다는 와타나베의 인식이 정말 인상 깊었다. 죽음을 대하는 10대의 태도라기엔 너무 성숙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동시에 굉장히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죽음을 작은 먼지 입자처럼 폐 속으로 빨아들인다는 표현도 참 좋았다. 나도 가끔씩 숨을 쉬면 공기 중의 입자가 우리 몸에 다 들어와 내 몸속을 휘젓고 다닐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와타나베의 경우에는 그것이 죽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후반부에 다시 반복되는데 나는 거기서 정말 심장이 힘들었다. 감정적으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상황이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좀 심장이 힘들었다. 아마 책을 읽느라 그런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레이코 씨인데 처음에는 좀 미친 여자인가 나쁜 사람은 아닌가 싶었는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레이코 씨가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사이에 머물면서 두 사람을 더 편안하게 해 주고 좋은 어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레이코의 과거 이야기도 좋았는데 한 개인에게 닥친 비극이지만 나는 왜인지 레이코의 과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주 책을 읽었는데 다른 음악보다도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이 책과 가장 잘 어울렸다. 일본 음악가와 일본 작가의 케미가 서정성을 더 끌어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는 정말 머리가 찡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는 원래 책을 읽으면서 잘 울지는 않는데 이 책은 눈물이 났다. 미도리와 전화하는 장면까지 다 읽었는데 다 읽고 번역가의 말을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느낌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 표현이 잘 들어맞는 것 같았다. 룸메이트와 같이 있어서 엉엉 울지는 못했는데 만약에 혼자 있었으면 많이 울었을 것 같다. 와타나베의 상실감이 나한테도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더 좋아한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계속 성적인 묘사가 나오고 성행위 묘사가 나와서 좀 당황스럽기는 했는데 읽다 보니 그냥 점점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어서 밑줄을 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웠고 나중에 한번 더 읽어야지 라는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호평받는 책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달까...? 나는 이 책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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