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도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서
나는 장강명 작가님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딱히 이렇다 저렇다 하는 큰 기호나 호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작가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어!' 하는 생각을 줬던 작가는 장강명 작가님이 거의 유일했던 것 같다. 최근에 하루키 소설을 읽어서 하루키 책을 더 읽어보고 싶긴 한데 그걸 제외하면 장강명 작가님밖에 없다. 처음 읽은 작품은 산자들이라는 작품이었고 그 후에 표백이라는 작품을 읽었다. 책은 아니지만 장강명 작가님의 책이 원작인 댓글부대라는 영화도 본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한 건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훌륭하다는 점이었다. 기자 출신이셔서 그런 건지 타고난 감각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감각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장강명 작가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주로 사회적 정신아픔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재인적인 거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된다.
한국이 싫어서는 장강명 작가님 책이어서도 있지만 제목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한국이 싫다고 저렇게 대놓고 얘기하고 있는데 눈길이 안 갈 수가 있나... 나는 딱히 애국하는 편도 아니고 사대주의를 주장하는 편도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한국에서 살고 싶진 않은 사람이다. 한국에서 사는 건 너무 많은 경쟁과 피로를 유발하고 조금이라도 도태되면 사람도 아닌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이 싫어서를 읽게 된 것 같다. 한국이 싫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어서...
주인공 계라도 한국에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으로 호주에 가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딸 생각으로 한국에 있는 걸 다 버리고 호주로 떠나버린다. 그러고 호주에서 완전히 정착하기까지 6-7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자면 무엇하나 쉬운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싸는 게 그렇게 숨 막혀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느낀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한국에서 보다 숨통이 트인 건지는 몰라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책에도 '그래도 여기는 사람 취급은 해준다'라는 말이 나온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게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용을 쓰고 한 가지 직업만을 원하는 현상이 이해가 안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식당에서 그릇을 닦아도, 버스 운전을 해도 회사를 다녀도 사람취급은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취급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는 걸 느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건 한국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하지 국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사람들만을 치켜세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나라망신이라는 칭호를 내리지만 호주에서는 국가에도 국민과 사람을 강조한다는 이야기를 읽고서는 굉장히 멍해졌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부르던 애국가 가사를 곱씹게 만들었다.
책에서 계나에게 너무 다이내믹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내가 외국살이 경험이 없다 보니 이게 실제로 자주 있는 일인지 아니면 좀 과장되게 넣은 거 인지는 좀 헷갈린다. 아파트에서 액티비티 하다가 추락하거나 위조수표를 받는 일이 흔하지는 않으니까... 가장 현실감 있었던 것은 계나가 사귀던 백인 남자였다. 동양인을 골라 사귀는 백인 남자는 꽤 많으니까...
책의 정확한 시점을 알지 못하고 봤는데 배달어플을 신기해하는 거로 봐서는 꽤 옛날인 것 같았는데 출간 연도가 15년도였으니까 그 보다 몇 년 전이라고 생각해 봤다. 그러고서는 느낀 게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살기 힘들구나 그리고 어쩌면 지금이 더 힘들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었다. 계나의 1인칭 화법도 조금 낯설었는데 1인칭 화법 중에서도 너무 친근한 정도로 ~했어, ~그랬어 이런 말투로 서술을 해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는데 읽다 보니 그냥 읽었다. 이 책은 읽는데 정말 며칠 안 걸렸다. 3일 걸렸다. 이 책은 아까 말한 사회적 정신아픔이 엄청나게 세게 때리면서 들어오지는 않지만 얕은 농도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다. 다음에 장강명 작가님 책을 읽으면 다른 걸 읽을지 아니면 표백을 한번 더 읽어볼지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