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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없어질 것들에 대하여

by 아피

귀신들의 땅을 다 읽지 못하고 내가 선택한 책은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었다. 이전에 읽었던 하루키 소설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노르웨이의 숲도 누군가 좋다고 해서 읽어본 것이었는데 그 사람과 책을 읽는 결이 비슷한 것 같아 여자 없는 남자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길래 읽어봐야지 싶어서 읽어보았다. 딱 봐도 도서관에서 많이 건드림 받지 못해 보였지만 세월감은 다소 있어 보였고 뭔가 죽어가는 책을 꺼내올리는 느낌으로 읽었다. 일본소설 칸에 가면 거의 하루키 소설밖에 없고 나는 거의 하루키 전당이라고 부르는데 하루키의 전당에 이 책도 있었다. 얼마나 인기를 끌었던 책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찾던 게 있어서 기뻤다. 이 학교 도서관에는 내가 찾는 책이 많이 없어서...


뭔가 되게 하루키 작품 같았다. 하루키 책을 많이 읽어본 것도 아닌데 문체, 전개, 급작스러운 성적 묘사가 이전에 읽었던 노르웨이의 숲과 지나칠 정도로 비슷했다. 예스터데이라는 이야기에는 주인공과 기타루, 기타루의 여자친구가 나오는데 그 관계성이 같지는 않지만 매우 나가사와와 그의 여자친구였던 하쓰미와의 관계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런 서술이나 유사성이 하루키의 소설 전체에서 나오는 그의 서술적 특징인 건가 싶기도 했다. 다른 작품들도 그런 비슷한 면이 있었다.


소설 속에서 서술자들은 모두 남자고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이 성애가 아니더라도 여자와 남자의 관계 맺음 사이에서 일어나고 그 이후에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은 남자들의 감상이 궁금했다. 여자가 여자한테 주는 감각과 여자가 남자한테 주는 감각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타인에게 주는 특유의 느낌이 있는데 내가 여자다 보니 남자들이 느끼는 건 어떨지 궁금했다. 단편을 엮어 놓은 책 이어서 모두 7개의 단편이 있었는데 나는 예스터데이, 셰에라자드, 기노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예스터데이는 비틀스의 노래 예스터데이를 일본어 간사이 사투리로 바꾸어 부르는 기타루에 관한 이야기인데 다니무라의 이전 여자친구에 대한 언급과 그것에 대한 감정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나는 기타루와 다니무라, 에리카의 관계성이 노르웨이의 숲에 나왔던 나가사와, 와타나베, 하쓰미의 관계와 닮았다고 생각해서 기억에 남았다. 물론 여기는 좀 더 무겁지 않은 느낌이기는 하지만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셰에라자드는 하바라의 집에 와서 그를 돌봐주면서 같이 잠도 자는 어떤 여성의 이야기인데 나는 그녀의 빈집털이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좋아하는 남학생 집을 빈집털이 하면서 두근거림을 느꼈던 어쩌면 변태 같은 여학생의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으로 들렸다. 나도 그 뒷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듣고 싶을 정도로 그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물론 그런 짓은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집에 숨어 들어가 훔쳐온 것이 연필, 배지, 티셔츠 이런 것인데 뭔가 순수하면서도 때 묻은 길티 플레져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의 마음도 결국 금방 식어버리고 흥미가 없어졌다는 점도 뭔가 그럼직했다. 정확히 어떻게 매력적이었다는 느낌보다는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기노 이야기는 뭔가 뒷부분이 혼란해서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삶과 관계,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최근에 영화와 평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으면 내가 좋은 평을 하고 싶은 영화는 대체로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영화들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이런 부분에 자연스럽게 초점이 갔던 것 같다. 가미타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기노의 쫓기는듯한 여정에서 기노가 깨닫는 점이 있는데 그게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다른 작품들도 이야기해 보자면 사랑하는 잠자라는 작품이 있는데 카프카의 변신과 비슷한 것 같아 찾아보니 카프카의 변신을 모티프로 쓴 글이 맞다고 한다. 뭐 특별한 감동은 없었고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다. 독립기관이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이 고인이 된 사람에게 받은 물건을 쓰지 않는다는 서술이 나오는데 나는 그 감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주변에는 고인이 된 사람은 없지만 그 사람을 연상시키는 것을 보거나 떠올리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서술도 좋았다. 남겨지는 것, 잊히는 것 이런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사라져도 잊히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게 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이야기인 드라이브 마이카는 그냥 무난히 읽혔던 것 같다.


책을 엮은 제목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지만 나에게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마지막 작품은 무언가 복잡하고 난해하게 느껴졌다. 한밤중에 헤어진 여자친구의 남편에게 그녀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은 주인공의 혼란한 마음이 드러나는 작품이었는데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 하나로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고 세상에서 두 번째로 고독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을 자세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혼란스러움을 이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전반적으로 나의 감상 보다도 타인의 감상이 궁금한 책이었는데 아마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의 것들이 많아서 일 것 같다. 내가 누군가를 잃거나 무언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조금은 다르게 기억될까? 이 책을 추천해 준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고 간접적으로 추천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이야기를 좀 더 찾아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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