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들의 작품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형을 다시 잡아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아널드는 이런 태도의 핵심을 이루는 선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한다. - 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예술 작품은 세상을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더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예술의 역사는 지위의 체계에 대한 도전, 풍자나 분노가 서려있기도 하고, 서정적이거나 슬프거나 재미있기도 한 도전으로 가득하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중에서
요즘은 이런저런 핑계들로 부지런히 냉장고 속을 관리하고, 식재료를 다듬으며 장을 보지 못하며 산다. 사실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내 몸에 넣어주는 건강하고 스스로 만든 음식이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요즘 들어 실천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장 행복하게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 중 하나는 건강식으로 바꿔보겠다며 한 접시에 냉장고 속 이런저런 야채와 딸기 스크램블에그 검은콩밥 조금의 훈제닭고기살을 옮겨 담은 것이었다. 간단하게 썰고 덜고, 담아내는 일이 그 과정이 나를 아껴주는 일 같아서 먹는 순간만큼이나 기뻤던 시간이었다. 다시 그런 생활로 돌아간다면 나를 아껴주기로 마음먹고 했던 도전을 쉼 없이 이어갈 수 있을까? 글을 쓴다는 게 위의 관용구처럼 소탈하게 이것 먹을까 저것을 먹어볼까 하다가 도전하여 고른 메뉴를 스스로 맛보는 행위 같다. 거기서 탈이 나더라도, 거기서 내 취향에 맞지 않음을 느끼더라도 일단 골라서 먹어보듯 끄적인다. 그때의 식단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핑계들을 찾듯 그렇게 쓰다가 다시 다 글을 지우고, 그 행위들을 멈추게 되더라도 일단 나는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