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충분히 노력했고, 누구보다 성과를 냈다고 믿는 순간에도 세상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적은 대가가 돌아오기도 하고, 반대로 예상보다 큰 보상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세상이 가진 고유한 기준과 흐름에 따른 결과일 뿐, 나의 기대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하나의 질서입니다. 그렇기에 매번 결과에 흔들리고 후회하고 낙담하는 것은 결국 나의 마음을 불필요하게 소모하는 일입니다.
세상은 세상이 원하는 것을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세상이 바라보는 기대치는 언제나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이 훌륭하다고 생각해도, 그 일이 세상의 필요와 맞닿아 있지 않다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보상을 주지 않습니다. 마치 열심히 물을 준 꽃이라도 햇빛이 들지 않으면 더디게 자라듯,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환경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 삶의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꽃을 미워할 이유도 없고, 햇빛을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자연이 가진 속도와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듯, 세상의 흐름도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중요한 진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성과와 세상이 인정하는 성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실패한 것이 아니고, 세상이 내게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평가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며, 시점에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즉, 남의 평가를 나에 대한 최종 진단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들의 기준이 늘 합리적이지도 않고, 늘 일정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가입니다. 남의 시선은 참고 자료일 뿐, 결코 최종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 부족하다면 더 노력하면 됩니다. 내가 보기에 충분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합니다. 문제는 세상이 나와 동일한 잣대로 판단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내가 충분히 했으니 세상도 충분히 대우해주겠지”라는 기대는 불필요한 실망만을 남길 뿐입니다. 세상은 나의 수고를 기준으로 보지 않습니다. 단지 필요와 조건, 환경에 맞춰 반응할 뿐입니다.
따라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억울함을 키우지 말고, 이미 나온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결과가 기대보다 작았다면, 그것은 세상 전체의 기준이 그 시점에서는 그렇게 흘러갔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나의 노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나의 가치는 결코 깎인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이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내가 원하는 순간과 세상이 준비한 순간이 맞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충분히 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이 진짜 충분함이다. 세상이 주는 보상에 지나치게 흔들릴 필요도, 남의 평가에 내 가치를 맡길 이유도 없습니다. 나는 나의 기준으로 살고, 세상은 세상의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두 기준을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말고,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국 내가 만족한 삶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내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판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