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닌텐도 게임기를 간절히 원했다. 친구집에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움에 가득 찼고, 나도 언젠가 저것을 손에 넣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느 크리스마스 아침, 마침내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머리맡에 놓인 게임기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마 부모님께서도 그 순간 내 얼굴에 번질 환한 미소를 보고 싶어 선물해 주셨을 것이다. 나는 신이 나서 하루 종일 게임기를 붙잡고 놀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게임을 하려면 팩이 필요했다. 이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어떻게 하면 게임팩을 살 수 있을까’였다. 세뱃돈과 용돈을 꼬박꼬박 모으며 하나의 팩을 손에 넣기 위해 애썼다. 팩을 구입한 날의 기쁨은 다시 한번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더 새로운 팩이 갖고 싶어졌다. 그리고 곧 더 좋은 컴퓨터, 최신 게임기를 갖고 싶다는 열망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었다. 닌텐도 게임기를 손에 넣으면 만족할 것 같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더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원하게 되었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순간 행복하다는 느낌은 점점 짧아졌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는 이미 어릴 적부터 ‘행복의 착각’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비단 필자만 겪은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것을 얻어야만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학생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만족하고, 어른이 되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 직장인은 승진을 하면 삶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고, 부자가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막상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우리는 그 상태에 익숙해지고 만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또다시 갈망하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인간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긍정적인 사건이든 부정적인 사건이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적응하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부른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 속에서 끊임없이 달리지만 제자리인 것처럼, 우리는 더 큰 행복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비슷한 상태로 돌아오고 만다.
우리는 행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와인 감식가가 값비싼 와인을 마시며 느끼는 만족감과, 일반 사람이 마트에서 1만 원짜리 와인을 마실 때의 만족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가격이나 브랜드가 아니라, 그것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이다. 결국,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끝없는 갈망 속에 사는 사람이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 재산을 늘릴 것이 아니라 욕망을 줄이라"라고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물질적인 욕망을 채우는 것만으로는 결코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가졌음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는다 해도, 그 끝에는 또 다른 갈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행복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의 가치를 깨닫고 만족하는 태도에서 온다. 우리가 진정으로 부유해지는 순간은, 더 이상 무언가를 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느낄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