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상처로도, 회복의 시작으로도 남을 수 있다.
금주 40일째. 아내가 어지러움을 호소해 침대에 함께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잔잔해지는 법이 없었고, 결국 새벽녘에야 겨우 잠에 들었다. 그 여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눈을 뜬 시각은 6시 30분.
휴대폰 화면 속 시간을 확인한 순간, 온몸에 긴장이 스며들었다. 마치 등에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튕겨 일어나 앉았다. 그 순간, 옆에서 자고 있던 후츄가 놀라서 침대에서 뛰어내리며 요란하게 울어버렸다. 후츄의 울음소리에 아내도 잠에서 깼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시간을 변명하기엔 어정쩡한 시각이었다. 늦잠이라고 하기엔 늦은 것도 아니고, 충분한 수면이라기엔 아쉬운 것도 맞았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깜짝 놀라서 깨 버렸어."라고 얼버무리고는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아내의 잠을 방해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후츄까지 놀라게 했던 그 순간이 머릿속에 잠깐 맴돌았다. 창밖의 밝음과 달리 마음은 조금 무거워졌다.
거실에 멈춰 섰다. 베란다 창 너머로 아파트 사이사이에 퍼진 환한 햇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 빛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에 잠겼다. 특별히 중요한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늦잠을 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놀랐던 걸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니 이유가 어렴풋이 보였다. 다른 누군가와의 약속이 아니라 5시 기상 루틴이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그 사실이 나를 잠에서 깨운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그 약속의 균열이 놀라움으로 치환되었을 뿐.
그 순간, 약속을 어긴 씁쓸함과 미묘한 부끄러움이 스며들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마음 어딘가에서 또 다른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라도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 했구나. 어찌 보면 그 의지 자체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은근히 칭찬하며 베란다에 잠시 기대섰다. 풋, 헛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웃음기를 삼키고 나서 조용히 아내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몸 괜찮아?" 하고 묻자,
아내는 눈을 반쯤 감은 채 힘없는 목소리로
"많이 나아졌어. 조금만 더 잘래."라고 답했다.
다행이었다. 더 자겠다는 아내의 말에 안도하면서도, 마음 한켠에 묘한 여운이 남았다. 내가 이렇게 하루를 대하는 태도는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아마, 오늘도 그런 스스로와 다시 약속해보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명상을 건너뛰었다. 대신 익숙한 루틴을 차분히 정리하고, 어제 읽다 잠시 덮어둔 책을 다시 펼쳤다. 몇 장 남지 않았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묘한 성취감이 스며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속 한쪽에서는 또 다른 생각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블로그에 광고가 붙기 시작했다. 부담감일까, 아니면 의무감일까.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이 묘한 감정이 글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바꾸어 놓았다. 가독성. 이 단어가 오늘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글을 더 쉽게, 더 잘 읽히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읽는 사람들에게 더 편안하고 매끄러운 흐름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그런 마음으로 책방의 레이아웃도 살짝 수정해보았다. 그러나 결과물은 어딘가 2%쯤 아쉬웠다. 완전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조금은 나아졌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발짝 물러났다. 블로그 글쓰기 역시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같은 내용을 일기와 책 후기에 반복적으로 적다 보면 보는 사람들에게 지루함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향을 나누기로 했다.
서평은 책의 내용 중심으로, 일기에는 그 책을 읽고 든 내 생각을 중심으로. 이렇게 정리하면 내 글에 더 깊이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을 택하면 글을 쓰는 시간이 조금 더 유의미해질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글을 정리하며, 블로그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책에 대한 서평은 “마부자의 책방”에서 참고해주세요.)
이 글을 적으며 문득 깨달았다. 글을 쓰는 방식과 기록의 태도마저도 책을 읽는 과정처럼 매번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글이 자라는 과정도 결국 나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기분 좋게 느껴졌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이 이야기가 대부분 미술관과 예술작품에 대한 기록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경험은 미술관에서 시작되었고, 초반부는 그가 다양한 예술품과 함께했던 일상과 미술관 근무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 책의 분위기가 예술 중심으로 흘러가리라는 예측이 들었다.
1장과 2장은 특히 낯설었다.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내게 작품에 대한 설명은 꽤 무거운 벽처럼 느껴졌고, 나와는 조금 동떨어진 세계처럼 다가왔다. 그 거리감 때문에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 낯섦은 어느새 익숙함으로 변했다.
책은 단순한 예술 소개가 아닌, 저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정으로 서서히 변모했다. 예술작품을 통해 저자는 아픔을 치유해나갔다. 이야기의 중반부부터는 예술과 인간의 조화 속에서 주인공의 성장과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특히 형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트라우마와 그 상처를 극복하려는 과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대목에서 책장은 더디게 넘어갔다. 마치 나와 저자의 감정이 맞닿는 순간들이 많아질수록, 내 손끝이 떨리는 듯했다.
저자가 그 아픔을 견디고 다시 자신을 재구성해나가는 과정이 내게 묘한 위로가 되었다. 현재 내가 마주하고 있는 무언의 감정들과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책은 저자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어느덧 내 이야기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픔을 다룬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예술을 매개로 했을 때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이 조용히 알려주는 듯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뉴요커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그가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가 그를 집어삼켰고, 결국 세상과 단절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은 미술관의 경비원이었다.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을 기대하며 숨어든 그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삶의 새로운 의미를 되찾았다. 미술관은 단순한 일터가 아닌 치유의 공간,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을 하나씩 되찾게 해준 결정적인 공간이 되었다.
책장을 덮고 잠시 손을 얹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이야기가 소설이 아닌 에세이라는 점이 내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단지 만들어진 서사가 아니라, 저자의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이 마음을 묵직하게 했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 그건 곧 내 자신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나는 오래전 직접 경험했다.... 28년 전.
지금은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 시간은 아직도 내 안에 봉인된 채 깊숙이 잠들어 있다. 그러나 저자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술관에서 보냈던 나날들 속에서 자신을 회복해가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그 기억의 조각들과 묘하게 공명했다.
미술관의 경비원이라는 자리에 서서 그는 수많은 예술작품들과 마주했고, 그 작품들을 통해 저마다 다른 인간의 고뇌와 생의 흔적을 읽어냈다. 사람들을 관찰하며, 작품을 응시하며, 그의 시선은 점점 깊어졌다. 그리고 예술 작품이 단순히 눈으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대변하는 언어라는 것을 저자의 섬세한 문장들로 하나하나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그의 고요하지만 세심한 배려와 통찰로 가득했다. 저자는 단순히 자신의 아픔을 나열하는 대신, 예술가의 고뇌와 작품의 의미까지 풀어내며 독자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미술관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책 속의 그도, 책을 읽는 나도, 잃어버린 것들 사이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으려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이 나를 끝까지 이 책에 붙잡아 두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뉴욕 미술관의 풍경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듯했다. 예술 작품이 들려주는 역사, 미술관이 자리 잡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맥락,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작품을 바라보면서도 각자 다른 해석을 내놓는 다층적인 시선. 그리고 미술관을 지탱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 마지막으로 작품 속에 담긴 예술가의 고뇌와 내면까지…
이 모든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낸 작가의 용기와 세심함이 책장을 넘길수록 선명해졌다. 그 방대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풀어낸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 아니, 아픔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 아픔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길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삶의 증거로 남길 것인지는 결국 우리가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 이 책은 그 질문을 던지면서도 조용히 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아픔은 상처로도, 회복의 시작으로도 남을 수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책을 덮으며 나도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나의 아픔들은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던가.
이 책은 단순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을 견뎌내는 법을 속삭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이 오늘따라 더 깊이 내 마음에 남았다.
책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했던 순간이 마무리되자, 나는 곧바로 현실의 삶으로 돌아왔다. 머뭇거릴 필요도 없었다. 아내가 있는 방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잠에서 깨어난 아내는 아직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바로 나를 살짝 짜증 나게 하기도 하지만, 오늘따라 더 듣고 싶었던 그 한마디를 내뱉었다. "배 고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순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웃음을 꾹 참고 "좀 어때?" 하고 물으니, 아내는 많이 좋아졌어. 라고 말한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아직 조금 어지럽다고 덧붙이는 그녀의 말에 걱정이 살짝 스며들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곰국을 데워 밥을 말아 아내 앞에 놓아주었다. 아내는 따뜻한 국물을 한입 한입 떠먹으며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기운을 조금씩 되찾는 듯했다. 그녀가 밥을 다 먹고 소파에 기대자, 나도 잠시 옆에 앉았다.
나와 막내도 곧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바쁜 하루의 중간이었지만, 식탁에 둘러앉아 조용히 밥을 먹는 그 시간이 오히려 깊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책에서 찾으려 했던 삶의 의미는 어쩌면 이렇게 작은 일상 속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커피, 그것도 믹스커피를 참 사랑한다.
아프기 전이라면 몇 잔을 마시든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혈당 관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커피 같은 음식은 자제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아내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하루의 작은 행복, 그리고 습관이자 위로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식후에 한 잔 정도 마시는 것은 나도 굳이 말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커피 한 잔이 결국 사소하지만 씁쓸한 다툼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어지럽다고 하던 아내가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찾았다. 나는 천천히, 밥을 먹고 나서 마시자고 말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대답을 믿었다. 그러나 막내와 내가 점심을 먹고 식탁을 정리하는 동안, 아내는 막내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내가 단호히 말했다.
"안 돼. 오늘은 그만 마셔."
그러자 아내가 화를 냈다.
"왜 안 되는데?"
나는 차분히 설명하려 했다.
"좀전에 점심 먹고 한 잔 마셨잖아."
하지만 아내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내 말을 거짓말로 몰았다.
그 순간 나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화를 내버렸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말들이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아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막내의 표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참았어야 했다. 감정을 조절했어야 했다.
내가 후회에 잠겨 고개를 떨구는 사이, 눈치 빠른 막내는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 작은 어깨에 쌓였을 불편한 공기를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내도, 막내도, 그리고 나 자신도 이 사소한 다툼으로 작은 상처 하나씩을 나눠 가진 듯했다.
아내는 더 이상 내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아니, 듣고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 표정 속에는 복잡하고 얽힌 감정들이 겹겹이 숨어 있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자책,
화를 낸 나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
아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미안함.
거실의 공기는 얼어붙었다. 순간적으로 조용해진 집 안은 창밖의 영하의 기온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킬 줄 몰랐다. 그러나 우리 서로 미안하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고,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침실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석증 때문인지, 아니면 여전히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기억의 흐름 때문인지 오늘 그녀의 낯선 모습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저 사소한 일이었다.
커피 한 잔으로 인한 갈등, 그리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몇 마디가 서로의 마음에 얇은 금 하나씩을 남겼다.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릿속이 엉켜버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내의 침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이렇게 서로의 감정이 잠시 조용히 가라앉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내와의 서늘한 기류 속에서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나는 막내에게 마트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역시나 눈치 빠른 녀석답게 "좋아요!" 하고 흔쾌히 따라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마트에 도착해 카트를 밀며 이것저것 장을 보기 시작하자 곧 기분이 풀렸다.
막내가 물었다.
"아빠, 오늘 저녁엔 고등어구이 어때요?"
고등어는 막내보다 아내가 더 좋아하는 음식이다.
자기가 먹고 싶은 걸 고르기보다, 엄마가 좋아할 음식을 먼저 떠올리는 아들의 모습에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느새 생각이 깊어진 막내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마음속이 따뜻해졌다.
집으로 돌아온 뒤, 음식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막내가 부엌에서 호떡을 만들어 먹겠다며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기운이 퍼지던 부엌에 나도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같이 할까?"
결국, 둘이 함께 호떡 반죽을 만들고 기름 두른 팬 위에 노릇노릇 구워냈다. 호떡이 익어가는 달달한 냄새가 부엌에 가득 찼다.
냄새를 맡았는지, 아내의 기척이 들렸다. 막내가 활짝 웃으며 "엄마, 호떡 다 됐어요!" 하고 부르자 아내가 쪼르르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호떡을 한입 베어 물며 맛있다며 웃었다.
나는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쓴웃음. 그게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이겠구나 싶었다.
호떡을 먹으며 작은 화해와 일상의 회복을 느꼈다. 삶은 늘 그런 식이다. 어딘가 어긋나는 순간도 있지만, 작은 행동 하나로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막내의 밝은 표정과 아내의 미소가 다시 집안에 퍼지면서, 오늘 하루가 결국 잘 마무리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감사했다.
오후에 블로그를 확인하던 중, 내가 읽었던 책의 서평이 하나둘 올라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클릭한 글 하나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깜짝 놀라며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어제, 패트릭 브링리가 내한했다는 소식. 비록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묘한 동질감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뉴욕에서 한국을 찾아온 저자. 그리고 마침 그날, 내가 그의 책을 읽고 있던 순간.
그가 나와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신기하고 따뜻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우연이 아닌지도 몰라. 나는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혹시 훗날, 어떤 특별한 인연으로 저자와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 생각에 웃음이 나면서, 나 역시 그 감정을 그대로 담아 블로그에 후기를 포스팅했다. 집안의 분위기도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평소보다는 조금 늦은 저녁 오후에 사온 고등어구이와 간단히 김치찌개를 끓여 저녁을 먹는다. 낮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온기로 우리는 웃으며 저녁을 먹었다. 싸늘했던 한낮의 냉기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따뜻한 공기가 거실을 감쌌다. 나는 아내와 다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 믹스커피 한 잔을 두고 벌어진 작은 다툼도 결국 합의로 잘 마무리되었다. "그럼 하루 식후에 딱 한 잔 씩만!" (매일 하던 약속인데….)
아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잠든 아내를 살피며 조용히 하루를 되짚어봤다.
패트릭 브링리의 책이 내게 전해준 삶의 깊이와 의미 그리고 오늘 하루, 사소한 다툼에서 다시 화해로 이어지는 우리의 작은 일상. 삶이란 결국 이런 순간들의 연속일 것이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시간도 있고, 다시 실을 매듭짓는 시간도 있다.
힘든 하루였지만, 그 끝에서 따뜻한 깨달음을 얻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일은 아마 더 나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