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이석증, 그 날 이후 아내를 괴롭히는 불청객
금주 39일째. 어제 잠들기 전 들려온 작은 성공의 소식은 내게 고요한 기쁨을 선물했다. 그 소식이 주는 안정감 때문이었을까. 평소보다 더 깊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일은 언제나 나를 조금 더 부드럽고 온순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마치 잘 여문 열매처럼.
창밖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동장군은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차가운 공기가 봄의 발걸음을 시샘하며 철저히 막고 있었다. 이런 날씨는 종종 나를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게 만든다. 따뜻한 공간 속에 머물고 싶은 욕망과, 이 차가운 공기를 단호히 뚫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은 모험심 사이에서 말이다. 오늘은 어느 쪽이 나를 이끌게 될까?
책상에 앉아 커피를 한 잔. 따뜻한 향이 코끝에 머물렀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일기를 포스팅했다. 한동안 타이핑하던 손끝의 긴장이 풀리고, 커피 잔을 손에 감싸쥔 채 잠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내가 쓴 글이 세상 어딘가로 흘러가 누군가에게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여전히 설레면서도 어딘가 묘한 기분을 남겼다.
하지만 다시 올려둔 일기를 열어보는 순간, 그 작은 설렘은 조금 흔들렸다. 화면 속 글 사이사이 배치된 광고들 때문이었다. 광고가 무심히 자리 잡은 글의 틈새들은 마치 자연스러운 흐름을 억지로 끊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 불편함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겠지. 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이 작은 방해로 인해 글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글이 더 가볍게, 더 순수하게 다가가길 바랐는데. 문장에 스며든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다면 조금 아쉬울 것도 같다.
당장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었다면, 가독성을 위해 조금 더 고민한 뒤 신청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글을 쓰는 과정과 그것을 공유하는 행위는 나에게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인데, 그 진심이 작은 광고들로 인해 흐려지는 것 같아 잠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러나 이내 현실을 떠올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요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축이니까. 순수한 마음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내가 광고를 바라보며 느낀 이 부정적 감정도, 나의 좁은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복합적이고, 사람들의 선택도 각자의 필요와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니 말이다.
결국 이런 작은 고민도 내가 세상 속에서 길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내 글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 위해 선택한 이 현실적인 타협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 흑백으로만 바라봤던 것들 사이에 무수히 많은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때로는 이런 타협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새로운 책을 펼쳤다. 머릿속에 남아 있던 자기계발서의 문장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두 권을 연달아 읽다 보니, 어느새 생각이 과열된 느낌이었다. 무언가 차가운 물로 식히듯 내 감정을 부드럽게 감싸줄 다른 종류의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늘은 외국 에세이를 고르기로 했다.
페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 책은 이미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외국 에세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많은 이들이 진심 어린 후기를 남겼다. 나도 그때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오늘이 그 타이밍일까?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책이 자연스럽게 손에 들어왔다.
이 책은 몇 일전 읽었던 <빛이 이끄는 곳으로>와 같은 맥락에서 선택한 책이다. 두 책 모두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공간 속에서 발견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순간들, 그것들이 인간의 감각을 얼마나 풍부하게 만들어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인간이 시선으로 느낄 수 있는 ‘미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공간의 힘이고, 또 하나는 예술작품의 존재다. 공간이 주는 고유의 분위기와 예술이 전하는 깊은 감각은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우리는 공간 속에서 숨 쉬고, 그 안에서 예술을 통해 시선을 확장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단순히 한 경비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시선으로 공간과 예술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기대감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예술품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없지 않은가?’ 국립중앙박물관조차도 가본 적 없는 내가, 저 먼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다룬 책을 읽고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나 있을까?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들었지만, 요즘의 나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늘 같은 말을 건넨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냥 해보자."
그 한마디가 나를 종종 낯선 세계로 이끌어준다. 머뭇거림을 멈추게 하고,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을 향해 가볍게 발을 내딛게 한다. 예술과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하고,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 어쩌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백희성 작가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를 읽은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건축과 공간, 그리고 빛의 아름다움을 다룬 그 책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공간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감싸고, 빛이라는 요소 하나로 그 공간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오늘, 함께 선택한 이 책도 내 감각이 분명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비록 예술의 문외한이라 해도, 나에게는 ‘그냥 해보자’는 용기가 있으니까. 책의 첫 장을 넘기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책 속에서 펼쳐질 낯선 세계가 어떤 이야기를 건넬지 기대가 되었다.
역시 눈이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잔잔하게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이 가진 색다른 매력은 부록으로 첨부된 작품 사진집에 있었다. 책 속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었다.
부록집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해당 작품을 컬러로 감상할 수 있었다. 활자 속 이야기들이 실제 작품과 연결되면서 생동감을 더해줬다.
읽다 보니 왜 이 부록집이 필요했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책 속 설명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작품의 디테일이 눈앞에 펼쳐졌고, 저자가 전하려던 감각을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약간의 단점도 있었다. 작품을 확인하느라 집중력이 살짝 분산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읽는 흐름이 끊기기도 했고,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도 느려졌다.
그렇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책과 작품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의미 있는 경험처럼 느껴졌다. 단숨에 읽어내려가기보다는 머물며 곱씹는 여유를 배운 셈이었다.
그래서 오전에는 잠시 책을 덮기로 했다. 마음이 꽉 차오르는 순간에는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지금의 감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눈을 감고, 책 속에서 만났던 공간과 작품들을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오늘은 토요일, 아내와 볼링장에 가는 날이었다. 주말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 소소한 루틴은 우리 둘에게 작은 활력 같은 것이었다. 평소라면 아내는 10시쯤 잠에서 깨어나 “배고파~” 하며 문을 열고 나를 빼꼼히 쳐다봤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시간이 11시를 훌쩍 넘겼는데도 기척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안방 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 아내는 이미 눈을 뜬 채 누워 있었다. 어딘가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침대 곁으로 다가가 장난스러운 어투로 말을 걸었다.
“일어났는데 왜 아직 누워있어? 배 안 고파?”
아내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머리가 좀 어지러워서……”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말은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퇴원 이후, 아내의 입에서 ‘머리가 어지럽다’는 말만큼 나를 긴장시키는 말은 없었다. 그건 단순한 피로의 신호가 아니었다. 뇌수술 병력을 가진 아내에게는 반드시 주의해야 할 증상이었다.
나는 서둘러 물었다.
“상태가 어떤데? 어느 정도 어지러워?”
아내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냥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아. 이석증이 다시 온 것 같아.”
이석증. 뇌출혈 이후 가끔씩 아내를 괴롭히는 불청객이다. 평소 건강할 때는 전혀 없던 증상이었지만, 수술 이후 가끔 나타나곤 했다.
내 귓가에 이석증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귓속에 있는 작은 수평 고리에서 이석이 빠져나와 발생하는 이 질환은 흔히 이비인후과에서 진단받고 며칠간 약을 먹으면 호전되지만, 아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뇌수술 병력이 있는 아내에게 어지럼증은 늘 최대한 조심해야 할 신호였다.
내 안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아무리 이석증이 흔하고 일시적인 증상이라 해도, 아내의 몸에서는 그 흔함마저도 위태로움이 될 수 있었다. 아내의 미세한 표정 하나, 말의 톤 하나까지도 예민하게 살폈다.
평소라면 덤덤히 넘길 일이지만, 오늘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괜찮을 거야. 이비인후과 가서 확인하자.”
아내에게 준비를 하라고 하고, 나는 먼저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평소 이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치료를 받던 익숙한 병원이었다. 이번에도 별일 없이 금방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말의 병원은 예상보다 혼잡했다. 대기실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간호사는 진료예약이 이미 마감되었다고 말했다.
그제야 시계를 보니 11시 30분.
"진료 마감은 12시였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사정을 설명했다.
아내가 뇌출혈 이후 이석증 증상을 겪는 상황이니 예외를 적용해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진료가 어렵습니다.”
병원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더 일찍 서둘렀더라면… 혹은 다른 방법을 미리 생각해 두었더라면… 아내의 상태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집에 도착해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아내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이비인후과는 가기 싫어, 거기 선생님만 믿을 수 있어!
그리고 어차피 지금 시간도 12시가 다 돼서 어디 가도 상황은 같을 거야.
그냥 일단 누워서 좀 쉬어 볼께.”
그 말을 남기고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없이 방문이 닫히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아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자책감.
그 자책감은 어느새 화로 변했다. 누구를 향한 화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 자신일까, 아니면 병원의 시스템일까. 아니면 이 모든 상황 자체에 대한 분노일까. 무엇 하나 해결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서 있는 내 자신이 미웠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이 기분이 제일 싫다.’
잠시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침착하자. 이 상황도 결국 지나갈 테니까.’
마음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소용돌이쳤지만, 그 안에서 묘하게 차오르는 책임감도 느껴졌다. 아내에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작은 안정감이라도 주는 것.
조금이라도 그녀가 편히 쉴 수 있도록 곁에서 조용히 지켜봐주는 일이었다.
다행이었다. 문득 생각난 비상약. 일전에 받아둔 약이 떠올라 서둘러 약장을 확인했다. 그때 조제해온 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작은 약봉지가 얼마나 큰 안도감을 주는지, 그 순간 절실히 느꼈다. 아내는 약을 먹고 조용히 잠에 들었다. 안정된 호흡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확인하며, 나도 그제야 긴장을 조금 내려놓았다.
하지만 불안함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운동을 쉬는 날이었지만, 독서마저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고, 그 무거운 감정을 가만히 앉아서 견디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하지 않아도 되는 집안일을 찾아 나섰다.
냉장고를 열어 오래된 음식들을 정리하고, 싱크대를 닦고, 책상 위에 쌓인 책들과 서류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한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이었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닦아내고, 다듬는 일들이 내 마음속 어지러움까지 천천히 덜어내는 듯했다.
이런 날은 억지로 감정을 정리하려 애쓰지 않는 것이 답인 듯했다. 대신 몸을 움직이며 그 순간순간을 지나가게 두는 것. 잠들어 있는 아내의 시간이 회복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며, 나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모든 일을 마치고 시간을 보니 오후 5시인데 아직 잠을 잔다. 저녁을 준비해서 학원에 다녀온 막내와 자는 아내를 깨워 식사를 하고 저녁 약을 먹고 잠시 소파에 앉는 아내에게 증상을 물어보니 이석증이 맞는 것 같다고 오늘 일찍 자면 좋아질 것 같다고 한다.
잠시후 아내는 일찍 잔다고 들어가고 난 책상에 와 하루를 정리한다.
한동안 별다른 증상이 없어서 나는 어느새 마음을 느슨하게 놓고 있었던 걸까. ‘이제 괜찮겠지.’라는 낙관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증상이 보이지 않았을 뿐, 아내는 여전히 회복 중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아침에 “머리가 어지러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던 내 자신이 떠올랐다. 그 감정이 새삼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했다. 짜증이라니, 그건 정말 내가 바랐던 반응이 아니었는데.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여전히 예민하게 반응할 만큼 아직 이 시간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의연해졌다고 믿었는데, 그건 어쩌면 ‘익숙해진 척’ 했던 것에 가까웠다. 내게도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아내의 회복만큼이나 나의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질 시간이.
어쩌면 완벽하게 익숙해지는 순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안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워가야 할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