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더 깊이 만나는 일이라는 것
금주 71일째, 추위 속에서 망설이던 태양이 드디어 온기를 찾은 걸까. 오늘따라 그 속도가 남달랐다. 마치 서둘러 어디론가 달려가는 듯했다. 붉어진 얼굴로 거리를 비추는 모습이 꼭 부끄러운 듯도, 설레는 듯도 보였다.
(흉내 내 본 건데, 좀 그럴듯한가? ㅎㅎ) 확연히 달라진 아침 공기를 느끼며, 나는 잠시 명상에 잠겼다.
두 사람이 함께 준비하는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한 명이라도 조금 일찍 일어나면 된다. 하지만 모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5분만 더," "1분만 더"를 외치다 결국 동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시작된 정신없는 아침. 서로 좁은 공간을 오가며 바삐 움직이는 모습, 문득 그들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오늘 책은 랄프 왈도 에머슨의 <성공의 법칙>.
다양한 장르의 책, 특히 자기계발서를 꾸준히 접하다 보면, 저마다의 개성과 필체가 확연히 다름을 느낀다. 그러나 그 차이 속에서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점이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오래전부터 깊이 있는 사유를 해온 몇몇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오늘, 나는 그런 인물 중 한 명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하 에머슨)을 선택했다.
사실 에머슨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던 곳이 어딘지 생각해보면, 다소 엉뚱하게도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떠오른다. 작은 용무를 해결하면서, 문득 눈앞에 적힌 명언을 바라보던 기억. 그리고 그 아래 적혀 있던 여러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이름들 속에서 유독 에머슨이라는 이름을 자주 마주쳤던 기억.
아마도 그때는 그가 누구인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짧은 문장 하나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
이 정도면 명언 제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에머슨의 책을 직접 읽고,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단순히 책 한 권을 갖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을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형태로 내 곁에 두고 싶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러던 중, 필사와 자기계발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책을 찾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이름이 바로 에머슨이었다. 그의 문장을 손으로 따라 쓰다 보면, 단순한 글씨 연습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자세한 책 소개는 "마부자의 책방"에서 확인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saranabel)
먼저 랄프 왈도 에머슨이라는 사람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다. 1803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1882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한 철학자이면서 문필가이다. 그는 미국 철학사상의 대표 인물로 초월주의를 주장한 사람이다.
초월주의란 인간은 이성과 감각이 아닌 직관을 통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곧 인간 정신의 완성이다. 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에머슨의 <성공의 법칙>은 마치 그의 일기처럼, 일상을 기록하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에세이 형식의 책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문장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가 깊은 철학적 사유를 품고 있었고, 때로는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사랑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그의 표현이 너무 난해해서 한 문장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문장은 마치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 기분이었다. 의미를 완전히 붙잡지 못한 채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유가 가진 묘한 매력은 끝까지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다.
책의 모든 내용을 다 꺼내 말할 수는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을 남겨두고 싶다.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는, 오늘도 신기한 끌어당김의 법칙이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기에 이 내용을 적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문장은 단순히 읽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삶의 한 장면처럼 내게 찾아와 머무르곤 한다. 그리고 오늘, 그 문장이 나를 다시 한 번 흔들어 놓았다.
오늘 읽은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셰익스피어를 만난다고 해도 깊은 패배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는 수 많은 생각들을 분류하여 활용하는, 우리에게는 없는 남다른 기술을 가졌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우리는 <햄릿>이나 <오셀로>같은 작품을 집필할 능력은 없지만, 인생의 위트나 삶에 대한 지혜가 묘사된 그의 작품을 읽고 편견 없이 받아들일 능력은 있지 않은가. – 181page”
혹시 그제 내 일기를 본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으며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실망했던 나. 문장의 무게에 짓눌려 한참을 주저앉았던 내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에머슨이 다가와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당신이 셰익스피어처럼 글을 쓰지 못한다고 해서 패배감에 빠지지 마라! 대신 당신은 셰익스피어의 의도를 편견 없이 읽고, 당신만의 감정을 표현할 능력이 있지 않느냐!"
그 말이 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마치 그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내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셰익스피어처럼 완벽한 문장을 쓰는 능력이 아니라, 내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낼 용기라는 것을. 그리고 그 용기가 바로, 내가 나만의 언어로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을.
마치 220년 전 에머슨이 살아 돌아와 내 앞에 서서 위로의 말을 전하는 듯한 순간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온몸에 전율이 퍼져나갔다. 그 어떤 의도도 없이 선택한 책들이었는데, 이토록 기묘한 연결이 생겨날 줄이야.
수많은 고전 문학 중에서 하필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택한 것. (사실 함께 주문한 또 다른 책은 싯다르타였다.) 그 선택조차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온 수많은 자기계발서나 철학 도서 중에서 셰익스피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책이 거의 없었는데, 성공의 법칙이 유일하게 그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모든 우연이 겹쳐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흐름이 나를 이끌고 있는 듯한 느낌. 책과 책이 서로 연결되며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경험. 지금 이 순간도 그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이 얼마나 신기한 인연인가!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절묘한 흐름이었다. 책을 읽는 묘미, 맛, 재미. 그 어떤 단어로도 오늘 그 문장을 읽었을 때의 전율을 온전히 표현할 수가 없다. 마치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지는 순간처럼, 그동안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에머슨의 문장을 통해 단숨에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감정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책에 중독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뇌 속 도파민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책 속의 글이 나에게 메시지처럼 다가올 때, 그 감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하다.
책 속에는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모든 문장을 여기서 풀어놓기보다는, 직접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어떤 글은 서평으로 접하는 것보다, 직접 책을 펼쳐 읽을 때 비로소 진정한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220년 전의 스승(?)이 내게, 아니 책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남긴 위로의 말을 하나 더 공유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철학의 어려움 앞에서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에머슨이 건넨 따뜻한 격려였다.
어렵고 난해한 철학적 사유 속에서 길을 잃을 때,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말 한마디가 마치 어두운 길을 밝히는 등불처럼 다가왔다. 그 문장은 마치 오랜 시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베이컨과 스피노자, 흄, 셸링, 칸트, 혹은 누구든지 마음의 철학을 제안하는 사람은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것들을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번역한 것일 뿐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보는 방식이고, 그가 명명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호한 의미를 너무 고지식하게 파고들지 말고, 대신 그가 당신의 의식을 당신에게 되돌려보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하면 된다. 그는 실패한 것이다.!”
이 또한 얼마나 제자들을 향한 에머슨의 배려 깊은 조언인가.
나는 그가 남긴 문장을 이렇게 해석했다.
"철학자들이 어렵게 말하는 것은 결국 그들만의 번역 방식일 뿐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억지로 해석하려 애쓰지 마라. 철학자들이 당신을 이해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 말이 내게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다. 철학이라는 것이 본디 어렵고 난해한 것이라 생각해왔지만, 어쩌면 그것은 단지 표현의 방식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난해함 앞에서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고, 에머슨이 내게 직접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
3월 10일, 내 일기의 제목은 "책은 때때로 사람보다 더 깊은 스승이 된다."였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스승이 내 앞에 나타났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성공의 법칙은 단순히 삶의 원칙을 설파하는 책이 아니었다. 그 책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성공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었다. 깊이 있는 사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법, 글을 통해 삶의 방향을 찾는 법, 그리고 책이 때때로 스승보다 더 깊은 가르침을 줄 수 있음을 깨닫는 법까지.
오늘, 다시금 확신한다. 좋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더 깊이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강한 전율과 깊은 감동을 뒤로한 채, 운동을 시작했다. 오늘은 밥 프록터의 부의 원칙에 관한 내용이었다. 패러다임에 대한 영상, 한 번쯤 시청했던 익숙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상하게도 영상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몸은 페달을 밟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성공의 법칙의 신기한 연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책이 만들어낸 우연들, 설명할 수 없는 인연들.
마치 에머슨과 셰익스피어가 내 머릿속에서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운동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우연과 인연들을 무심히 지나쳐 왔을까. 오늘처럼 강한 전율을 느끼며 삶을 바라보지 못한 것이 문득 후회되었다.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인연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꼈던 좌절과 실망, 때로는 절망이 앞섰던 순간들. 하지만 만약 그때, 작은 우연과 인연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감정이 관계를 지탱해 주었다면, 어쩌면 그들은 지금도 내 곁에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에머슨이 자기 신뢰와 함께 강조했던 "관계의 우정", 그 의미가 어쩌면 오늘 내가 느낀 감정의 연속선 위에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관계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지나쳐온 모든 우연과 인연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
운동을 마치고 나니, 별다른 약속도 없고 막내도 늦는 오늘. 그래서 다른 이야기로 일기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흩뜨리지 않고, 온전히 간직한 채 하루를 끝맺고 싶었다.
책이 건넨 우연과 인연,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롭게 발견한 나 자신. 마치 오래된 문장을 새롭게 읽어 내려가듯, 익숙한 것들 속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찾아낸 하루였다.
때로는 이런 날도 필요한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더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곱씹으며 그대로 품고 가는 날. 오늘은 그렇게, 이 감정 그대로 하루를 마무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