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막내 덕분에 보낸 둘만의 데이트
금주 73일째, 이제는 어둠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날들보다, 밝은 빛이 비추는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는 시간이 쌓일수록, 이전의 나와는 다른 곳에 서 있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도 달리진 아침의 기분이다.
매일 아침 명상을 하며 나는 두 개의 세계를 경험한다. 명상 전의 어둠속의 나와 명상 후의 밝은 세상의 나. 마치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한 선명함이 신기하고도 경이로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차이가 계절의 변화로 인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아쉽지만, 어쩌면 이것이 자연스러운 계절의 변화 과정일지도 모른다. 변화는 그렇게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니까.
어젯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막내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나서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몸을 뉘이고 잠을 청하려는 그 깊은 밤의 고요 속에 문득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늦은 밤, 누구일까 싶어 휴대폰을 확인하니 막내였다.
"아빠, 할 말이 있어요."
시간을 보니 이미 11시가 넘어 있었다. 이 시간에 나를 부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안과 걱정이 뒤섞인 마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는 막내가 앉아 있었다. 평소와 달리 표정이 단단했고,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 그 눈빛은 더욱 진지하게 빛났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무슨 큰일을 친 걸까?" 혹은 "혼자 감당하기 힘든 무언가를 안고 있는 걸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괜히 다급한 기색을 보이면 아이가 더 위축될 테니까.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무슨 할 말이 있어?"
심장이 조용히 두근거렸다. 다음에 들려올 말이 무엇일지,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를 하며 막내를 바라보았다.
막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일 저녁에 별 약속 없으세요?"
질문이 어딘가 이상했다. 단순히 "약속이 있으세요?"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 없으세요?"라고 묻는다. 말의 방향이 미묘하게 다르다. 순간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약속이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고민이 스쳤지만, 사실 고민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나와 아내는 내일 저녁에 특별한 일정이 없다.
그런데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막내는 내가 금주 중이라는 걸 알고 있고, 저녁 시간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당연히 약속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굳이 확인을 한다? 이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나는 깨달았다. 이건 "약속이 없냐"는 질문이 아니라, "약속을 만들어야 한다"는 암시다. 막내는 우리가 내일 저녁에 약속이 있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막내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되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별다른 약속없는데, 약속이 있어야 하니?”
망설이던 막내가 조심이 입을 열었다.
“사실 내일이 화이트데이라서요…”
막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여자친구에게 이벤트를 좀 해주려고 하는데, 마땅한 장소도 없고 해서… 집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요…”
나는 순간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막내가 굳이 말을 길게 하고 있지만, 본질은 아주 간단했다.
"내일 저녁에 엄마랑 집 좀 비워주시죠!"
이 짧은 문장을 돌려 말하는 데 이렇게 공을 들이다니, 애쓴다 싶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물론 그 한숨 속에는 단순한 피곤함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한밤중에 불려 나와 혹시 큰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긴장했던 내가, 막상 이야기를 듣고 나니 별거 아닌 고민이었다는 안도감. 그렇지만, 또 다른 묵직한 감정도 함께였다.
막내가 이제는 화이트데이에 여자친구를 위해 이벤트를 준비할 만큼 성장했다는 사실. 부모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직접 요청할 정도로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는 사실. 무엇보다, 이런 말을 꺼내면서도 전혀 주저함이 없는 걸 보면, 우리 부부가 충분히 개방적이고 이해심 많은 부모라고 막내는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모든 감정이 뒤섞인 긴 한숨이었다. 나는 아주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늦은 밤이고 내일 엄마와 상의 해보고 답을 해주기로 했다. 그러자 막내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이미 속으로는 허락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쯤 되면 답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오늘 아침이 밝았다. 아내가 출근 준비를 마친 후, 어제 막내의 요청에 대해 상의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제 막내가 말이야..." 하며 어젯밤의 대화를 전했다. 아내는 별 고민 없이 흔쾌히 말했다.
"그래, 그러라고 하지 뭐."
세 명의 아이들을 키워내면서, 나는 줄곧 아내의 육아 방식에 의문을 품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살아왔다. 때로는 내 생각과 다른 결정을 내릴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내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깨닫곤 했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쌓인 촉은 나보다 아내가 훨씬 뛰어나다.’
엄마와 함께 현관을 나서는 막내에게 말했다.
"엄마와 상의했으니,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면서 엄마에게 최종 허락 받아요."
막내는 귀에 걸린 듯한 커다란 미소를 지으며 "네!" 하고 경쾌하게 대답하더니, 현관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나는 잠시 현관 앞에 멈춰 섰다. 문 너머에서 막내가 기뻐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웃음이 담긴 흐릿한 기억이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잔상처럼 맴돌았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미소 가득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어제는 경제학을 공부했고, 오늘은 세계 문학 고전을 선택했다. 원래 목표는 한 달에 한 권이었지만, 고전의 묘한 중독성에 빠져들면서 두 권으로 늘었고, 이 속도라면 곧 월 네 권으로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미 새로운 고전을 주문한 상태다.
오늘 선택한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는 내가 고전 읽기의 첫걸음을 내디딜 때 가장 먼저 선택했던 작가다. 그의 <데미안>을 읽으며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그의 책을 펼쳤다.
첫 장을 넘기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또 한 번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자세한 내용과 느낌은, 내일 다시 남겨야겠다. 오늘은 그저 책을 펼친 설렘을 기록해 둔다.
운동을 시작했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발 라비칸트의 <부와 행복의 원칙> 영상을 보며 몸을 움직였다. 어제 영상을 보고 난 후, 나는 이 작가의 책을 단숨에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만큼 내용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오늘 영상은 그 흥미를 넘어서, 이 책을 하루라도 빨리 읽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자세한 후기는 조만간 ‘마부자의 책방’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영상 속에서 여러 인상적인 문장을 들었지만, 유독 한 문장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기회가 오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되어 있지 않음을 두려워하라."
나발 라비칸트의 <부와 행복의 원칙> 중에서
순간, 온몸이 찌릿했다. 운동 후 땀에 젖어 있던 몸이 식어 가던 순간, 이 문장이 눈과 귀를 강타했다. 그 여운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었다. 땀으로 젖은 옷이 한순간 차가운 소름과 뒤섞이며, 마치 한기가 느껴지는 듯한 전율이 일었다.
나는 즉시 포스트잇을 꺼내 이 문장을 정성스럽게 필사했다. 그리고 벽 한쪽에 붙였다.
글을 정리하고 책을 읽다 문득 시간을 보니, 아내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막내에게 메신저가 도착했다. "아빠, 오늘 6시까지는 집 좀 비워주시면 안 될까요?"
이미 한 번 허락한 일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다시 부탁을 들으니 조금 우스웠다. 마치 집주인에게 집을 빌리는 세입자 같은 태도랄까. 결국, 아내와 나는 예정에 없던 즉흥 데이트를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아무 계획도 없었지만, 어쩌면 그게 더 좋을지도 몰랐다. 급하게 떠나는 외출이었지만, 함께 걷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저녁 메뉴는 인근 쭈꾸미 집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매콤한 양념이 입안에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역시 쭈꾸미는 실패가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커피 한 잔. 예전 같았으면, 이쯤에서 당연히 술 한 잔이 따라왔을 텐데, 이제는 커피가 대신했다.
단둘이 커피숍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려니, 조금은 어색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어쩔 수 없이 커피숍에 들른 적은 많았고, 지인들과 함께 간 적도 있었지만, "데이트"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낸 건 결혼 후 거의 처음이었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자리에서, 결국 아내도 나도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서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막상 마주 보고 앉으니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어색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제안했다.
"우리 이마트나 갈까?"
아내는 잠시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 마트 가자."
그렇게 우리는 커피숍을 나와 마트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마트에 들어서는 순간, 커피숍에서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카트를 밀며 나란히 서서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편안한 우리가 되었다. 카트 옆에 나란히 서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이 모습이, 어쩌면 우리만의 ‘데이트’ 방식인지도 모른다.
아내와 나는 늘 함께했다. 매일 저녁을 같이 먹고, 매주 볼링장에 가고, 얼마 전엔 인천에도 다녀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꾸준히 둘만의 데이트를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처럼 '데이트'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오히려 어색함과 낯설음이 찾아왔다. 같은 시간이었고, 같은 사람이었는데도, 이름 하나가 분위기를 이렇게 바꿔놓을 줄이야.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특별한 순간을 특별하지 않게 여겼을까?'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으면 삶에 재미와 활력이 생기지만, 때로는 '의미'라는 이름에 갇혀 오히려 삶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괜히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던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방식은 변함없었다.
마트에서 나란히 카트를 밀며 대화를 나누고, 익숙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게 바로 우리만의 데이트 방식이었다.
오후 8시, 집에 들어와도 된다는 막내의 허락을 받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일상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데이트'라는 이름이 아닌, 그냥 우리다운 하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