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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오늘 나는 인생의
나침반을 손에 쥐었다.

by 마부자

금주 75일째, 동녘에서 오는 해가 늦잠을 잤는지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 창밖에 아직 어둠의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확인해 보니 늦은 겨울비인지 이른 봄비인지 모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잠시 열었더니 마지막 겨울비가 많는 듯 찬바람과 함께 베란다로 들이치는 비에 화들짝 놀라 창을 닫았다.


명상을 하고 책을 펼쳤다. 새롭게 선택한 책은 레이 달리오의 <나만의 원칙>이다. 이 책은 운동 파트너 하와이 대저택의 추천으로 선택한 책이다. 그동안 많은 책들을 저자의 추천으로 읽어왔다.


당시 영상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으로 망설임 없이 선택한 한 권이 책이다. (자세한 책의 내용은 “마부자의 책방”을 이용바랍니다.)


사실 일요일은 볼링 매니저로 활동해야 하는 날이다. 아침에 준비를 하던 아내가 말했다. “뒤에서 보고 있으면 부담되니 오늘은 혼자 다녀올께요!” 그러나 난 안다. 아내는 비도 오고 운전하기 번거로울 것 같은 나를 위해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몇 번을 데려다 주겠다고 했으나 사양하며 아내는 혼자 볼링장으로 출발했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하며 현관을 나서며 활짝 웃으며 오른 주먹을 불끈 쥐는 아내의 모습에 나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아내의 배려 덕분에 이번 주말도 뜻하지 않은 여유가 생겼다. 원래 오늘은 볼링장에 가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자유 시간 앞에서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사실 오늘 읽으려던 책은 내일 완독하고, 18일 화요일에 서평을 작성할 계획으로 주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여유가 찾아오면서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나 자신과 약속한 200권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책의 수량도, 서평을 쓰는 날짜도 아니다. 오직 책을 읽는 그 행위 자체.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생각을 확장하고, 문장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그 과정이야말로 독서의 본질이니까.


며칠 전 주문한 다른 책은 내일 도착 예정이라 원래의 독서 계획이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오히려 더 나은 흐름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앞당겨진 독서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기대하며, 차분히 첫 장을 펼쳤다.

원칙이라는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비닐로 단단히 감싸여 배송되었다. 손에 들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비닐을 뜯었다.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마법서의 봉인을 푸는 기분. (너무 오버했나?)


책이 비닐에 싸여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갖는 듯하다. 쉽게 펼쳐볼 수 없기에 더 신중하게 손에 쥐게 되고, 첫 장을 넘길 때의 기대감도 커진다. 봉인을 해제하는 순간,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마주하는 순간, 독서라는 작은 의식이 더 특별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궁금함을 가득 안고 비닐을 뜯었다. 손끝으로 매끄러운 표지를 쓰다듬고, 츄르륵책장을 넘겨본다. 샤라락,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가볍게 흩날리는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시작은 책의 냄새를 맡는 지금 순간부터다.


종이와 잉크가 뒤섞인,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는 그 특유의 냄새. 한 번 들이마시면 지금과는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넘어가는 기분이 든다.


넘어가는 페이지들 사이로 하얀 공백이 너무 많이 보였다. 평소처럼 빼곡한 활자를 기대했던 내 눈에는 낯선 풍경이었다. 책을 다시 잡고 찬찬히 살펴보니, 이 책의 구성은 내가 알던 일반적인 책들과 전혀 달랐다.


페이지의 왼쪽과 오른쪽 여백이 예상보다 넓었고, 책 후반으로 갈수록 상단에 간략한 문장만 적혀 있는 부분도 많았다. 생각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으니, 일단 읽어보며 이 구성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양옆에 넓은 여백이 있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독자가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적을 수 있도록 배려한 구성.


나는 순간, 얼마 전 책에 메모를 하다가 좁은 여백 속에서 답답하게 궁시렁거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끼어들 공간이 부족해 글씨는 점점 작아지고, 급기야는 책 바깥으로까지 벗어나려 했던 내 생각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이 책의 여백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 책이 비닐로 싸여 있던 이유는 단순히 보호 때문이 아니었다.읽는 데서 끝나는 책이 아니라, 직접 쓰기가 동반되어야 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 여백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생각해 본다. 어쩌면 이 책은 단순히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원칙을 직접 써 내려가길 바라는 책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이론을 나열하며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론을 직접 실천하도록 돕는 코치이자,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는 선생님 같은 책.


책은 단순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쓰고, 실천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 같다.

어둡고 캄캄한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한 줄기 빛을 밝혀주는 등대.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게 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명확하다.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쓰면서 느껴야 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내용을 길게 풀어 적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곧 책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책 속에는 우리가 인생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만한 원칙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원칙들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원칙을 그대로 따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을 고민하고, 자신에게 맞는 원칙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이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진짜 내 삶을 변화시키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만의 원칙에 대한 생각에 잠겨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기준으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 원칙들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정립된 것이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지금, 나는 새로운 원칙이 필요하다.


목표를 설정하고,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우긴 했지만, 아직 그것을 ‘원칙’이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느껴진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삶을 지탱할 만한 단단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새로운 원칙을 다시 수립하려 한다.


52년 동안 나를 지탱해 온 원칙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또 한 번의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목적지는 성공의 섬.

그곳을 향해 떠나는 망망대해의 여정 속에서,

오늘 나는 든든한 나침반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 책.

이 책은 분명 내가 거친 파도와 태풍 속에서 길을 잃을 때, 바다를 밝혀줄 한 줄기 빛인 등대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이제 나만의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이 내 삶의 새로운 항로가 될 수 있도록

한 걸음씩 나아가기로 한다.


의미 깊은 독서를 마치고, 일요일 오후 막내와 함께 점심을 해결한 후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볼링장에 간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3등으로 마무리했어!"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 좋은 들뜸이 전해졌다. 게임을 마친 후 회원들과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온 아내는 의기양양,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활짝 웃는 얼굴에는 승리의 기운이 가득했다.


막내와 나는 장난스럽게 허리를 굽히며 외쳤다.

"프로님, 오셨습니까!" 농담을 던지며 환영하자, 아내는 더 크게 웃었다. 그리고 오늘 받은 상금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막내는 장난스러운 큰 절 한 번으로 특별 용돈을 획득했다. 예상치 못한 성적에 즐거운 얼굴로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긴장 속에서 일찍부터 경기를 치렀던 아내는 피곤했는지, 저녁 식사 후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막내도, 나도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했다.


조용한 밤.

책 한 권을 통해 새로운 원칙을 고민했던 하루, 그리고 예상치 못한 작은 축제로 더 따뜻해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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