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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100일의 목표 쓰기를 해냈다.

100일간 매일 목표 쓰기를 달성한 오늘 나를 다시 돌아본다.

by 마부자


금주 77일 째,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보니, 마지막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하듯 세상을 다시 얼려 놓으려 했다. 겨우내 얼었던 것들이 하나둘 녹아가던 찰나, 다시금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창문을 열어볼까 망설였지만, 그 찬 기운이 방 안으로 밀려올까 두려워 그대로 바라보기만 했다.


동녘에서 서서히 번지는 어스름한 새벽노을. 붉은빛과 푸른빛이 섞이며 천천히 아침을 열었다. 잠을 깨우고, 명상을 마쳤다. 몸과 마음이 깨어나면서 어제의 나를 뒤로하고, 새로운 하루를 마주할 준비를 했다.

책상에 앉아 성공노트를 펼쳤다. 펜을 들고 목표를 적어 내려가려는 순간, 오늘이 유독 특별한 날이라는 걸 실감했다. 2024년 12월 9일 부터 시작한 매일 목표를 적으며 하루를 시작한 지 정확히 100일째. 이 숫자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묘하게 울컥했다.


사실 100번씩 목표를 쓰지는 못했다. 하지만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0번 이상 씩 목표를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온 작은 성공들이 결국 100일이라는 하나의 선을 넘어섰다.


처음 이 목표를 세울 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그때 나는 무엇을 갈망했고, 어떤 마음으로 이 습관을 시작했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100일이라는 시간 속에서 내가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 돌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늘은 목표를 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처음의 다짐과 과정을 되새기고, 이 작은 성취가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음미하는 하루가 될 것 같다.


27년간 다닌 회사를 떠났다. 개인적인 이유라고 말했지만, 그 이유를 명확히 정리해본 적은 없다. 안정적인 생활, 적지 않은 연봉, 그리고 그 나름의 보람까지. 정년이 보장된 자리는 아니었지만, 탄탄한 중소기업에서 오랜 시간 영업부서의 리더로서 성과를 내며 자리 잡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출근길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늘 가던 길, 익숙한 루틴 속에서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출근이 즐거운 순간은 많지 않았어도, 적어도 불편하지는 않았던 27년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걸까?


그 질문을 곱씹어볼 시간도 없이 바쁜 일상은 계속됐다. 아침이면 자동적으로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도착하면 눈앞의 업무에 파묻혀 하루를 보냈다. 그리곤 다시 집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렇게 27년을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야 문득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2024년 2월 2일,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 순간, 삶이 단숨에 다른 결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아내는 강한 의지로 버텨냈고,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퇴원한 아내를 바라보며 감사함과 안도감이 밀려왔지만, 그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도 뒤섞여 있었다.


아내의 병간호로 한동안 비웠던 직장에 다시 출근하던 날,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아내가 회복되었으니 다시 회사에 집중하자고.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 다시 업무에 몰두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단순히 업무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엔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 ‘삶과 죽음’이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난 지금 무엇을 위해 출근을 할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만약 내일 죽음이 온다면, 나는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선명해졌고, 내 마음 한편을 점점 더 무겁게 눌러왔다. 아내가 병원에서 생과 사를 오가던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마치 한 편의 영상처럼. 눈을 감아도 떠올랐고,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하려 해도 어느새 그 장면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20대 초반에 결혼했고, 아이 셋을 키우며 30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오며 ‘잘 사는 법’에 대해 고민했지만, ‘잘 죽는 법’에 대해서는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조금 여유를 가지며 살아볼까 했는데, 아내가 그렇게 쓰러졌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죽음은 언제든 예고 없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문득 떠오른 말이 있었다.

“삶이라는 것은 죽음에게 빌려 살고 있는 것이다.”


삶의 주인이 언제든 찾아와 돌려달라고 하면, 우리는 미련 없이 반납해야 한다. 그게 내일이 될지, 1년 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아무 의미 없이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생각들은 매일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리고 점점 더 선명해졌다.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일이 무엇일까?’


매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하나의 답이 떠올랐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지식을 알리고, 나의 경험을 나누는 일을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직장에서도 강연이나 교육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직원 교육을 맡게 되면 며칠 밤을 새워가며 PPT 자료를 만들었던 기억. 교육장에 서서 동료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오히려 설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초빙된 강사의 모습. 나는 그들을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질투하고 있었다.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내가 저 자리에 서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집에서 강의 자료를 다시 만들어 연습해 보곤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 혼자 강사의 역할을 상상하며 자료를 정리하고 말하는 법을 연습했다. 그 모든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마도, 이게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비록 그 분야는 아니지만, 27년을 일해온 베테랑인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의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 나는 강의 경력도 없었고, 중소기업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경력만으로는 강연자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을 뿐, 나를 불러줄 곳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냉정하게,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과연 나는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정말 가능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시작해보자.”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해보자.”


완벽한 준비는 없었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책을 읽자.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자.

작은 것부터 쌓아가자.

그렇게 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한 계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나는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예 멀리한 것도 아니었지만, 책이 내 삶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강연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상, 먼저 머릿속을 채워야 했다. 그래서 일단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 달았다. 나는 책을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것을.


출근 전, 점심시간, 퇴근 후. 틈이 날 때마다 책을 펼쳤다. 그렇게 직장을 다니면서도 독서를 이어갔고, 관련된 영상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작가가 있었다.


“하와이 대저택.” 그가 소개한 책들을 하나둘 읽어나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사고방식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생각의 흐름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생각의 변화가 인생을 바꾼다.’ 그 말을 실감하며 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의 내 위치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잦은 회식, 끝없는 주간회의와 월간회의, 본사 출장과 업체 출장. 당연한 듯 따라야 하는 술자리, 늦은 퇴근, 그리고 새벽같이 이어지는 현지 출근. 이런 일상들이 나를 점점 짓눌렀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꿈꾸는 미래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아니, 억누르는 정도가 아니라, 나를 꿈에서 멀리 도망치게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결심해야 했다. 미래를 보장할 수 없지만, 지금 당장 안정된 보수를 받으며 조금은 재미없는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내의 사투를 보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고민들을 부정하려 하고 있었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 않은 이 길이지만, 나는 죽음이라는 집주인이 돌아오기 전에,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경제적인 문제는 당장 굶지 않을 정도는 있었다. 27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으니까. 그렇다면, 왜 고민하고 있을까? 고민할 가치조차 없는 고민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아내와 내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내의 동의가 없다면 사실 불가능한 도전이다. 아니 불가능하기 보다 내 결심을 미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을 출발점은 아내의 동의에서 부터 시작된다. 다행히 아내는 나를 이해해주었다. 지난 30년간 함께 하며 나를 누구보다 잘 아내는 긴말 하지 않았다.


"내가 직장 열심히 다닐테니 하고 싶은 거 해봐, 단! 패배자처럼 있지 말고 꼭 하고 싶은 그거 해서 성공해야 해!" 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결국 퇴사했다. 주변의 만류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셌다.


"곧 임원이 될 수 있는데, 얼마나 더 좋은 직장으로 가려고 그러냐?"

"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는 거야?"

"책 읽고 글 쓰는 게 얼마나 힘든데, 돈도 안 되는 일을 하겠다고? 미쳤냐?"


사실, 평생 들어야 할 잔소리를 단 한 동안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오랜 시간 고민해 왔고,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망설였고, 고민했고, 수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결국 나는 퇴사했고, 본격적으로 내가 원하던 길을 시작했다. 독서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서 있다는 걸 실감했다. 하지만, 지난 51년 동안 몸에 배어 있던 습관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


“내일 하자.”

“오늘은 쉬자.”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다음 주부터 다시 시작해도 되겠지.”


정확한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이제 목표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에 점점 느슨해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며 주어진 일을 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시간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정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시병’, ‘정각병’ 같은 오래된 습관이 나를 방해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삶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습관에 발목이 잡혀 있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병을 고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습관을 바꾸는 법을 알려준 그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100일 목표 쓰기.


책 더 마인드의 작가, 하와이 대저택의 강력한 권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매일 100번씩, 100일 동안 목표를 써보세요.”


하지만 하루 한 번조차 목표를 적어본 적 없던 내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0번? 하루에 10번도 벅찰 것 같은데, 100번이라니.


나의 망설임을 아는 듯, 저자는 다시 제안했다.

“100번이 어렵다면 단 1번이라도 좋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100일 동안 써보세요.”

“어떤 것이든 상관없어요.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 하나만 적으세요.”


처음에는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목표를 적는다고 내 삶이 달라질까? 매일 같은 문장을 쓰는 게 정말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어렵게 결심한 일이었다. 내 몸속 깊이 박혀 있는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내 생각의 틀을 깨기 위해서라도 일단 해보자.


2024년 12월 9일 처음 10번을 쓰기 시작했다. 내 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목표를 쓰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 일기에 시작에 함께 포스팅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100일 쓰기의 목표가 오늘 2025년 3월 18일 드디어 100일째 되는 날을 맞은 것이다.


아직 내가 적은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 한해 꼭 하고 싶은 목표를 정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100일 쓰기를 하면서 내 삶에 확실히 영향을 주었다. 100일 동안 내 몸의 습관과 루틴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100일 동안 매일 목표를 쓰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일부러 블로그에 목표를 직접 적은 사진을 올렸다. 기록이 남는다면, 쉽게 포기하지 않겠지. 그렇게 나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첫 시작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며칠 후 깨닫게 되었다.


술 약속이 있는 날이면 미리 일기를 써놓고 예약 발행을 해두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문제는 사진이었다. 목표를 직접 쓰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내가 스스로 정한 원칙이었는데,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도저히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었다.


"미리 목표를 써놓고 사진을 찍어둘까?"


그 생각이 스쳤지만, 그 정도의 가짜 열정에 넘어갈 만큼 내 의지가 약하진 않았다. 나는 몇 날 며칠을 술을 마신 다음 날에도 억지로 눈을 뜨고, 꾸역꾸역 목표를 적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올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다.


더 큰 문제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음주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

어제보다 더 많이 마시고, 더 늦게까지 마시고, 그러다 보니 다음 날 아침은 더 힘들어졌다. 결국, 나는 선택해야 했다. 목표 쓰기를 포기할 것인가, 술을 줄일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일단 절주부터. 평일 금주를 원칙으로 정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약속이 생기고, “한 잔만” 하다가 “두 잔만” 하게 되고, 결국 원칙을 어기게 되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그래서 나는 다시 결단을 내렸다. 절주의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금주를 하기로.


100일 목표 쓰기는 단순한 글쓰기 습관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77일째 금주를 이어가고 있다. 솔직히, 처음부터 금주를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이건 100일 목표 쓰기가 아니었다면 절대 시작할 수 없던 변화였다. 나는 믿게 되었다.


“100일 동안 목표를 적다 보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 속에서 반드시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그 변화가 결국 목표를 이루게 해준다. 저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나는 몸소 경험하고 있었다. 금주를 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저녁 시간의 의미였다. 술 약속이 줄어드니, 의미 없는 만남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일찍 자니, 아침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아침 독서의 집중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머리가 맑아지니 책장이 더 빨리 넘어갔고, 이해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그리고 또 하나. 독서가 깊어질수록,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대한 몰입도도 높아졌다.


처음 목표를 세울 때는 100일 동안 목표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과정 속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결국, 하나의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온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가 만든 변화를 경험하는 중이다. 지난 100일 동안, 나는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큰 성공을 거둔 나 자신을, 오늘만큼은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술이라도 한잔할까? 농담처럼 그런 생각이 스쳐갔지만, 이내 웃음이 났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만으로도 난 충분히 보상받고 있다. 기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더욱 단단해진 순간.


"나는 할 수 있다."


이 단순한 문장이, 이제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이 각인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다시 100일 쓰기에 도전하려고 한다. 노트도 새로 준비했고, 목표도 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진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 블로그 이웃이 1,000명을 넘었고,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이제는 고려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다시 100일 후, 2025년 6월 26일 목요일. 그날, 새로운 목표 100일 쓰기를 완성한 기념으로 장문의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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