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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우린 모두 자신만의
‘지랄맞음’을 품고 살아간다

삶은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만의 축제를 만들어가는 것.

by 마부자

금주 76일 째,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몰고 온 바람들이 창밖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살짝 열린 창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산이 부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빰을 때리며 몸속에 남은 잠을 깨우는 아침이었다. 이제는 어둠 속 명상은 없다. 새벽명상이 아침에 마무리된다.


지난주, 나는 인근 다이소에서 옷장용 방향제와 습기제거제를 사 왔다. 겨울 내내 함께했던 두꺼운 롱 패딩과 겨울 옷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다. 이제 정말 봄이 오겠지, 그렇게 믿으며.


그런데 오늘, 창밖으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한기가 스며드는 기분에 결국 다시 옷장을 열어 패딩을 꺼내야 했다. 마치 그것을 넣어두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겨울의 흔적은 여전히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


꽃샘추위야 해마다 있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길었기에 이제는 정말 끝났을 거라 방심했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인간을 길들이는지도 모른다. 이제 괜찮겠지, 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마지막 경고를 보내는 것처럼. 마치 ‘언제든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가볍게 넘기지 말라고 조용한 속삭임을 전하는 듯했다.


결국 출근하는 아내와 막내에게 다시 패딩을 꺼내 주었다. 두터운 패딩을 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두 사람을 보고 생각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늘 순응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속에서도 매번 배워야 한다는 것을.


책상에 앉아 일기와 서평을 정리했다. 차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쯤, 휴대폰이 진동했다. ‘주문한 책이 도착했습니다.’ 익숙한 알림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놓인 박스를 집어 들었다.


느닷없는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손에 든 책 박스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물론 실제 온도가 그럴 리는 없지만, 책이 주는 기묘한 온기 때문일까. 이 정도면 책에 대한 환각 증상이 아닐까 싶어 스스로 피식 웃음이 났다. 책 중독의 길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책의 첫 장을 넘기는 행복만큼이나, 배송된 책 박스를 뜯는 순간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조심스럽게 테이프 상단을 잘라내면, 뽁뽁이 패딩을 입은 책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포장을 벗겨내면서도 나는 이미 기대에 차 있었다. 오늘 도착한 책들은 인간관계론, 스토너, 앵무새 죽이기, 이방인, 리어왕, 그리고 이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총 여섯 권이었다.


이 책들이 앞으로 나의 일상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한 권 한 권, 손끝에 닿는 감촉을 느끼며 펼쳐 본다. 문득, 이 모든 순간이 책과 함께하는 작은 축제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도 책을 고를 때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고전 두 권, 소설 두 권, 자기계발서 한 권, 그리고 에세이 한 권. 모두 소중한 책들이지만, 박스를 여는 순간 유독 눈에 띄는 한 권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며칠 전, 셰익스피어에게 호되게 꾸짖음을 당한 기분이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다시 그의 책을 담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임경선 작가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 독자가 내 책을 집어 들어주는 것은 운이고, 두 번째 집어 들면 내 실력이다. 두 권 다 마음에 들면 그는 ‘내 독자’가 되어 줄 것이다.”

셰익스피어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로 했다.(내가 뭐라고...) 이번에 <리어왕>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독자가 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막내가 추천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빠른 시일 내에 읽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나는 <리어왕>의 표지를 쓸어보며 생각했다. 과연 이번에는 셰익스피어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의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갈 준비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주춤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책이란 원래 그런 존재 아니던가. 두려움을 안고도, 결국 우리는 다시 한 장을 넘기게 된다.


며칠간 어떤 장르를 읽었는지 되돌아보았다. 문득, 이번에는 에세이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의 책은 조승리 작가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이 책을 선택한 계기는 단순했다. 블로거 ‘여르미 도서관’ 님의 추천 포스팅을 보고 나서다.

"이 책 안 읽은 사람 없게 해주세요! 여러분이 모두 읽으실 때까지 계속 추천하고 다닐 생각인 ㅎㅎ"


이런 열정적인 추천을 보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나는 여르미 도서관 님 덕분에 좋은 책을 참 많이 만났다. 이번에도 실망할 리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떤 책이길래 이렇게까지 강력 추천을 하는 걸까? 단순한 호기심으로 선택한 책이었지만, 의심은 없었다. 지금껏 그분이 추천한 책들은 항상 옳았으니까.


그렇게 펼쳐든 조승리작가의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풀어보려고 한다. 물론, 책 속의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마부자의 책방’에서 확인해보길 바랍니다. (3/18일 오후 포스팅 예정입니다.)


86아시안게임을 시청하다 자신을 낳았다고 해서 이름이 ‘승리’가 된 작가. 책을 펼치고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이었다. 조승리 작가는 시각장애인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전맹이었던 것이 아니라, 15살 이후 점차 시력을 잃어 지금은 완전히 보이지 않는 상태.


그리고 책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잠시 덮었다. 문장 하나하나를 더듬어 가던 내 안에서 불현듯 어떤 불편함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장애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모두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불쌍, 불편, 측은, 안쓰러움, 고통, 미안…


나는 순간 부끄러웠다. 민망하기도 했다. 내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일방적이었음을, 너무 협소했음을 깨 달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채 이 책을 읽는다면, 결국 나는 또 하나의 편견을 더한 채 문장을 소비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려면 먼저 내 머릿속의 시각적 사고를 바꿔야 했다.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첫 번째 과제였다.


만약 내가 지금까지 가진 부정적인 사고를 그대로 둔 채 이 책을 읽는다면, 결국 온통 동정 어린 시선으로만 바라보게 될 것이 뻔했다. 그런 시선으로 읽는다면, 이 책을 정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인은 ‘항상’ 우울하고 불쌍하며 불편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이다.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때만이, 이 책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이 보여주려는 것은 단순히 시각장애를 가진 작가의 삶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배경’일 뿐,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 나는 그 사실을 온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이 책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치기 전에, 먼저 내 안의 생각을 바로잡기로 했다. 나도 모르게 새겨져 있던 편견의 렌즈를 벗어던지고, 조승리라는 ‘한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해보자. 그게 이 책을 제대로 읽는 첫걸음일 것 같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책을 펼쳤다. 조승리 작가가 걸어온 길을 따라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책 속에는 분명 가슴 아픈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아픔은 단순히 그녀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가족, 특히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심적, 내적 고통이 더 깊숙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자신의 엄마에게 ‘곧 앞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해야 했던 딸.

개구쟁이였던 딸이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엄마.


"과연 누구의 아픔이 더 컸을까"? 이 질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쩐지 죄의식마저 느껴졌다. 상상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었으니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는 그 사람의 아픔까지도 함께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아픔이 너무 클 때, 우리는 상대를 걱정하면서도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러한 관계의 깊이를 다시금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담대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마치 감정을 쏟아내기보다는 담담하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사실 책의 초반을 지나고 나면 예상과 달리 슬픔보다는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이 훨씬 많다. 그녀가 풀어내는 엄마와 딸의 대화는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기막힐 정도로 솔직하다.


작가는 특유의 위트 넘치는 필체로 일상의 순간들을 담아내는데, 이 덕분에 독자는 울다가도 어느새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야말로 “엉덩이에 털 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깊이 몰입해 감정에 젖어 있다가도,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그녀의 재치에 순간적으로 정색할 수밖에 없는. 이런 반전이 이 책을 더욱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조승리 작가는 슬픔을 과장하거나 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사람. 그 점이야말로, 이 책이 단순한 ‘장애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조승리 작가의 직업은 마사지사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부끄러워할 이유 자체가 없기에, 그것을 의미화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나는 순간 "마사지"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 짧은 순간이 무척 불편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편견이 불쑥 튀어나온 것 같아서.


그래서 더욱더, 이 책을 읽기 전에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 책은 ‘장애인의 이야기’도, ‘마사지사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 그 자체의 이야기이니까.


책장을 넘기며, 나는 문득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그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너무 바빠 잊고 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그녀도 결국 우리와 같은 성장통을 겪었다는 것.


물론 이유는 조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 반항하고, 가출을 감행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는 일.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한 번쯤 마주했던 감정들이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없이 맞닥뜨린 아픔과 상처 속에서도, 담대하게, 꿋꿋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다.

책은 그런 그녀가 우리에게 보내는 강한 메시지다.

“나는 이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너는?”


우리는 너무 쉽게 좌절하고, 너무 쉽게 체념하며, 너무 쉽게 포기한다. 어쩌면 도전할 의지조차 없는 우리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하나의 거울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 보면,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만큼 그녀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탱고를 배우며, 고민을 상담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그리고 글을 쓴다.


책 속의 승리는 욕심쟁이 둘째이기도 하고, 옆집 사는 평범한 아이이기도 하며, 호기심 많은 소녀, 까칠한 딸, 사춘기 방황하는 아이, 그리고 때로는 직장에서 신경질을 내는 직장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 각각의 시절 속에서 경험했던 슬픔과 아픔, 기쁨과 희망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조승리 작가는 ‘시각장애인으로서의 불편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라고 난 생각한다. 이 책은 ‘인간 조승리’의 에세이이지, 시각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을 덮고 난 후, 그녀가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불편함을 떠올리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기록한 에세이로서 내 감상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아직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과 시선의 불편함을 완전히 지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마주하는 불편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불편함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는 것 아닐까.


이 책이 내게 던진 질문도,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불편함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나요?"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이 책의 제목은 어쩌면 우리가 매일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 아닐까?


"이게 다 지나가면 좀 나아지겠지."

"언젠간 끝나겠지."

"좋은 날이 오려나?"

"좋은 날이 오겠지."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그런 맥 빠진 질문들이 아니다.


그저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맞서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선언. 조승리 작가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우리에게 말한다.


“여러분, 힘내세요!

이 지랄맞음을 쌓아 놓고, 그 위에 불을 지르며,

그 추억의 볏집으로 멋진 불꽃놀이를 하면서 축제를 즐깁시다.”


결국, 삶은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만의 축제를 만들어가는 것. 그녀의 메시지는 강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따뜻하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지랄맞음’을 품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언젠가, 그것을 불태우며 찬란한 불꽃놀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뭐 난다고 하던데, 오래도록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가렵다. (안 씻어서 그런가????)


책을 읽다가 감정이 흔들렸고, 다시 평정을 찾으니 몸이 불편함을 먼저 알아챘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자정을 넘긴 지 오래. 자리를 털고 일어나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오늘은 지난주에 봤던 영상을 다시 시청하기로 했다.

작가 쉬펑위안의 <운명을 바꾸는 부자의 사고방식>

사실, 그 내용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에, 당분간은 계속 반복해서 볼 생각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작가 쉬펑위안의 <운명을 바꾸는 부자의 사고방식>


문장을 곱씹으며 페달을 밟았다.

책을 읽어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겠지만, 이 한 문장만으로도 저자의 생각이 충분히 전달되는 듯했다.

안전함을 벗어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메시지.


그런 생각을 하며 운동을 마치고, 주말 동안 미뤄둔 집안일을 정리했다. 운동하며 떠올랐던 생각들을 적어보려던 순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날씨 너무 춥다. 회사 앞으로 데리러 와줄 수 있어?" 흔쾌히 "당연하지."라고 답하고 준비를 한 후, 차에 올라 직장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매섭게 옷깃을 파고들었다. 잠시만 서 있어도 온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마치 겨울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차가운 밤.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총총걸음으로 뛰어오는 아내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왜 웃음이 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그녀가 총총 뛰어오는 모습이 귀엽다고 해야 할까.


차에 타면서 아내가 묻는다.

"왜 웃어?"


"웃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해?"라고 대답하며 다시 웃어넘겼다.

그러자 아내가 "추운데 싱겁게 뭔 소리야."라며 투정을 부린다.


그 말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함께 먹고, 늘 그렇듯 하루를 정리한다.

그렇게 오늘도, 소소한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만의 하루가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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