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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주문하지 않은 책이 도착했다.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한 그 첫 번째 보상이 꿈처럼 이루어졌다.

by 마부자


금주 78일째.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 날들이 점점 쌓여간다. 그 숫자를 새어보며 스쳐가는 감정은 다행스러움과 묘한 뿌듯함이다.


동장군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이틀 동안 거세게 창을 두드렸다. 마치 떠나기 전, 한 번 더 세상을 움켜쥐고 흔들어 놓으려는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결국은 계절 앞에 무릎을 꿇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틀간 지각했던 해가 오늘은 늦지 않고 동녘 저편에서 반듯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제자리를 찾아가듯.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이 시점에서 나도 나만의 자리에서 명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책상에 앉아 새로운 책을 펼치려던 순간, 어제 오후 도착한 작은 택배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우연처럼, 아니 어쩌면 운명처럼 100일 목표 쓰기를 달성한 날 도착했다. 마치 스스로에게 보내는 작은 보상 같기도 하고, 그 긴 여정을 묵묵히 지켜봐 온 누군가가 선물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독서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일부가 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전에도 나름 꾸준히, 1년에 2~3권 정도는 읽어왔다. 많지 않은 숫자지만, 한 해에 몇 번씩 책을 펼치는 습관이 나름대로 유지되어 왔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책에 대한 한 가지 신념이 있었다. "책은 반드시 직접 사서 읽어야 한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라기보다는, 단순한 믿음 같은 것이었다. 혹여 책을 사놓고 읽지 못하더라도, 돈이 아까워서라도 언젠가는 펼쳐보게 되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감. 책장을 넘기지 못한 채 쌓여 있는 책들도 언젠가는 손이 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한 권 한 권 내 공간을 채워갔다.


그러던 중,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서평 이벤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형 독서 커뮤니티나 카페에서는 회원들에게 책을 제공하기도 하고, 가끔은 독자들을 위해 기부를 하거나 작가가 직접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아 책을 보내주기도 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출판사에서 직접 책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은 사서 읽어야 한다고 믿어왔던 내게, 이 새로운 방식은 조금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내게 다가오는 책들. 책을 만나는 방식이 달라지면, 독서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직접 신청해서 책을 제공받고 후기를 남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출판사에서 먼저 책을 보내준다는 것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꾸준히 포스팅을 하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날이 찾아왔다. 지난주, 100번째 책을 블로그에 포스팅한 날.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 출판사. 순간, 스팸 메일인가 싶어 무심코 삭제하려다 문득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나는 순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직 많이 부족한데, 서평을 전문적으로 써온 것도 아닌데, 출판사에서 먼저 나에게 연락을 하다니. 메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혹시 잘못 보낸 것은 아닐까? 착각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분명히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날, 나는 세상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쌓아온 시간들이, 누군가의 눈에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스스로를 위해 시작한 기록이었는데,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단순히 책을 보내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있을 리가 없지. 당연히 신청서를 받은 후에 검토하고, 선정된 사람에게만 책을 보내주겠지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정성껏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그리고 왠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면 선정에 조금이라도 유리할까 싶어, 공손한 답장도 함께 보냈다. 메일을 보내면서도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경쟁이 치열할 테고,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딘가 조용히 설레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하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역시 선정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며 잊기로 했다. 처음에는 메일을 받을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대를 접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어제 100일 목표 쓰기가 완성된 날. 정확한 목표를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것이 책과 관련된 것이었기에 더 특별한 날이었다. 그날 오후, 택배사의 문자를 받았을 때도 별생각이 없었다. ‘무슨 택배지?’ 하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거기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100권째 책을 포스팅한 바로 그날 출판사의 메일을 받았고, 100일 동안 목표를 기록하던 100일째 되는 날, 마침내 출판사에서 보낸 선물이 도착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거대한 선순환의 고리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순간 20대 후반에 읽었던 론다 번의 <시크릿>을 떠올렸다. 그 책을 읽고 한동안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강렬하게 원하는 것들은 결국 내게로 온다는 믿음. 하지만 살면서 현실적인 생각들이 쌓이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이 책 한 권이 그 법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나타났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사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책 한 권 서평을 써주는 대신 받은 거잖아.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은 단순한 한 권의 책이 아니었다. 내가 걸어온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것이 맺은 작은 결실이었다.


나는 용기와 의지만 가지고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로지 믿음 하나였다. ‘꾸준히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그러나 현실적으로 따지고 보면, 사실 나는 완전히 제로에서 시작한 도전자였다. 경험도, 실력도 없이 그냥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이 길을 가고 있다.


그래서 다짐했다. 조급해하지 말자. 천천히, 차근차근 나아가자. 하지만 그 다짐이 늘 쉽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 목표를 쓰고,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여두고, 틈틈이 들여다보며 되새겼다.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흔들리지 말자. 계속 가자.”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의심이 들 때마다 생각했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조금씩 성장하는 게 보일 거야.”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지금, 아주 작은 시작이지만 그 믿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동안 작은 성공을 이룰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었다. 따뜻한 위로의 말,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쁨, 스스로를 다독이는 감정적 보상이 전부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나 자신을 위해 쓰고, 읽고, 나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성공 노트 속 내가 적어둔 목표들의 대부분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보상 역시, 나의 필요에 의해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필요로 인해 내게 주어지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어제,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한 그 첫 번째 보상이 꿈처럼 이루어졌다.


간절히 바라며 100일 동안 기록해온 바로 그 날.

도착한 이 한 권의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걸어온 100일의 길에 대한 증거였고,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등을 떠미는 강렬한 동기부여였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면, 그 필요는 단순한 기회가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응답과 보상이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는 선물을, 나는 조심스럽게 책꽂이에 두었다. 단순히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나의 100일간의 여정이 담긴 증표 같아서. 그리고 그 감동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예정대로 오늘부터 읽기로 한 책을 펼쳤다.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

고전을 제외하면 외국 작가의 장편소설을 선택한 것이 꽤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으니, 나름의 결심이 필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스토너>를 좋은 책이라 추천했고, 특히 “여르미 도서관”님이 추천한 책이기도 해서 시야를 확장하는 마음으로 첫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서평을 포스팅할 예정이지만, 지금은 첫인상만 간단히 남기고 싶었다.


이 책, 참 묘한 매력이 있다.

내용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이야기.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책을 덮을 수가 없다. ‘뻔한 이야기 같은데?’ 하면서도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힘.


아마도, 이 책이 가진 진짜 매력은 화려한 서사나 극적인 전개가 아니라, 잔잔한 흐름 속에서도 깊이 스며드는 감정과 삶의 진실성에 있는 것 아닐까.


이제 막 첫 장을 펼쳤을 뿐이지만, 나는 이미 이 책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만 같았다.

중반까지 읽었지만, 특별한 반전은 없었다. 그냥 스토너의 일상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일상이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번 페이지만 읽어야지.’ 그러다가 ‘한 페이지만 더?’ 그렇게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마치 가위눌림처럼.


가위에 눌려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자주 가위에 눌린다. 잠을 자다가 의식은 또렷한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 눈을 뜨고 싶어도 떠지지 않고,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다. 누군가 옆에서 깨워주거나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그 답답한 순간들.


이 책이 딱 그랬다. 확 재미가 있어서 빠져드는 책이 아니라, 빠져나올 수 없어서 읽게 되는 책. 처음에는 그저 별것 없는 이야기니까 오전 중에 다 읽겠지 싶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달라졌다. 책을 손에서 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쉽게 넘어갈 수도 없는 묘한 매력.


결국 오전에 211페이지에서 시선을 멈췄다. 그것도 내 의지가 아니라, 후츄 덕분이었다.

운동 전에 늘 간식을 주는데, 내가 너무 집중해 있으니 시간이 지나도 미동이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후츄가 찾아와 나를 부르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책의 서평과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마무리해야겠다.

어쩌면, 『스토너』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책이 될지도 모른다.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화요일과 수요일이 가장 힘든 날이 되었다.


매주 월요일, 나는 운동의 강도를 조금씩 높인다. 하지만 주말 동안 충분히 쉰 덕분에 월요일에는 몸이 가벼워서 그런지 그 강도를 크게 체감하지 못한다. 문제는 화요일과 수요일이다. 높아진 강도를 몸이 뒤늦게 실감하는지, 땀이 두 배는 더 흐른다. 마치 온몸이 ‘이건 또 무슨 고생이야?’라고 항의하는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목요일과 금요일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몸이 적응을 했는지, 같은 강도인데도 덜 힘들게 마칠 수 있다. 늘 그렇다. 처음의 낯설음과 불편함을 지나면, 결국 적응하게 되어 있다. 운동도, 삶도, 아마 글쓰기조차도.


오늘 운동하면서 시청한 영상은 4일 전에 올라온, 빌 게이츠의 <소스 코드>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의 최초 자서전이라 최근 서평에도 자주 올라오고 있어 관심이 갔고, 이미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이기도 했다.


빌 게이츠라는 이름은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영상을 보며 떠오른 문장과 생각들을 조용히 혼자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책을 읽으며 정리하는 것과, 머릿속에서 생각을 곱씹는 것은 조금 다르다. 전자는 흔적이 남지만, 후자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된다. 오늘은 그냥, 그렇게 내 안에서 정리해 두기로 했다.


운동 후 집안일에 대한 루틴을 완료하고 나니 시간이 4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아내가 퇴근까지 약 두시간 정도 남았는데 책을 다시 읽을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만약 읽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100일 쓰기 노트를 펼쳤다. 적을 내용은 결정을 한 상태였다. 몇 일전 읽었던 레이달리오의 원칙을 읽으며 구상을 했고, 성공노트에서 최종 선정을 했다. 남은 것은 “언제, 몇 번을 쓸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었다. 일단 목표를 한 번 써보며 시간을 측정해 보기로 했다.


기존에 10번을 썼는데 두번째 도전은 첫번째보다는 많아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그런 압박을 주며 50번을 써 보기로 했다.


손목이 아팠다. 하지만 쓰고 나서 시간을 보니 15분 33초.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목표는 50번으로 확정.


그리고 언제 쓸 것인가.


최근 며칠간 막내의 하교 시간을 체크해보니, 야자를 끝내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대략 11시 10분~20분 사이였다. 그렇다면 11시부터 쓰기 시작하면 20분 이내에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동안 늦은 밤 노트북이나 휴대폰으로 글을 보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어쩌면 이것도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용한 걸까? 우연처럼 정확한 타이밍이 만들어 졌다. 감사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아내가 퇴근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늘 그렇듯, 이른 저녁을 먹고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책과 글 속으로 들어가고,

아내는 소파에서 리모컨을 손에 쥔 채 채널과 씨름한다.

"TV는 맨날 똑같아. 볼 게 없어."


트로트, 뉴스, 신변잡담, 재방송, 연예인들의 수다.

아내는 채널을 돌리다 말고 지루하다는 듯 투정을 부린다.


잠시 소파로 나와 옆에 앉았다.

"날이 좀 풀리면 저녁 먹고 공원에서 산책이라도 할까?"


아내는 망설임 없이 "좋아."라고 대답했다.


봄이 오면, 다시 함께 걷기로.

그렇게 또 하나의 작은 루틴을 만들기로 약속하며,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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