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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내 "의지"가 "습관"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by 마부자


금주 83일 째, 반복적인 하루의 결을 따라 몸을 일으켜 창가에 섰다. 어둠을 지나 동녘에서 찾아오는 새벽 붉은 노을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아쉬움이 가득한 시간. 늘 같은 고요함에 시작하던 아침의 분위기마저 사뭇 다른 감정으로 나를 깨운다.


명상을 마치고 나면 창 밖에서 희미한듯 자신의 존재감을 비치는 달의 모습이 보인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눈을 뜨는데 달은 매일 다른 모습, 다른 장소에서 나를 맞이한다. 반복적인 일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주변의 모든 것은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따스한 바람의 온기마저도...


어제의 책문과 대책으로 나라의 근심과 걱정이 내 감정을 조용히 건드렸다면, 오늘의 나는 나의 관계에 대한 감정을 건드려 보기로 했다.


어제 빌딩 숲사이에서 차 창으로 들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읽기 시작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통해 마음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자세한 책의 내용은 "매거진"에서 확인바랍니다.)


이 책은 인류가 사회를 만들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고 되풀이되어 온 인간관계라는 미스터리를 해독하는 일종의 고백서처럼 느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오해, 설득, 신뢰의 문제는 기술이 발전해도,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우리의 삶 깊숙이 자리한다. 그것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기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데일 카네기는 수백 편의 심리학 서적과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단지 글상자 안에서 논리를 전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 강연과 훈련을 통해 원리를 검증해나갔다는 사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책은 이론이 아니라 삶에 원칙들이 나열된 일종의 매뉴얼이 같은 느낌이었다. 읽는 내내, 이건 ‘적용하라’는 외침 같았다.


책은 6개의 파트, 37가지의 원칙을 통해 ‘더 좋은 관계를 위한 태도’를 조심스럽게 권유한다. 상대를 비판하기보단 칭찬하라. 아는 척하기보단 귀를 기울여라. 논쟁하기보다는 공감하라. 이 문장들 속에서 나는 문득, 내가 얼마나 자주 말 앞에 서 있었는지, 얼마나 자주 이기려 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 말투, 내 표정, 그리고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우월감이 누군가에게 어떤 무게였을지를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완벽하게 실천할 수는 없더라도, 하루에 한 가지 원칙이라도 실천해보자는 다짐이 마음속에 생겨났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 머릿속 한편에서 또 다른 책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바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문득 떠올랐다. 인간은 생존을 우선하는 존재이고, 그 본능은 때때로 관계를 해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경쟁심, 질투, 인정 욕구. 모두 너무도 자연스럽지만, 너무도 관계를 망가뜨리기 쉬운 요소들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론은 이 본능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전략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같은 유전자들을 가진 인간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관계라는 이름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전략서였고, 때로는 생존을 위한 무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 책이 사람을 ‘다루는’ 기술서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철학서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인간관계에 지친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다가온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직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중이라고, 조용히 다독이는 듯한 어조였다.

마지막 책을 덮는 순간, 문득 이런 문장이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인간관계에서, 친구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적으로는 만들지 말자.”


짧은 문장이지만, 여기에 이 책이 전하고자 했던 핵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간다. 가까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일시적인 동료로 머무르기도 하며, 어떤 관계는 그저 짧은 인연으로 끝나기도 한다.


모든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고, 누군가와 끈끈한 정을 나누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관계를 적대의 감정으로 흘러가게 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기술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관계의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먼저 나 자신의 말투와 표정, 그리고 마음의 방향을 돌아보게 한다.


누군가를 굳이 적으로 만들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이 있다. 괜한 논쟁, 불필요한 비판, 무심한 말 한마디가 관계를 틀어지게 만드는 일.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작은 선택들이 있다. 내 안의 이기심이나 인정욕구를 내려놓고, 한 발짝 물러나 보는 일. 그 작은 태도 변화가 결국 관계의 향방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친구가 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최소한 마음을 다치게 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내게 남는 건, 결국 누굴 변화시키려 한 흔적이 아니라, 누굴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멈춰 섰던 순간들일지도 모르니까.

그 한 문장 속에, 이 책이 내게 준 통찰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오늘도 어제처럼 특별하지 않은 하루였지만, 나의 말투 하나, 태도 하나를 돌아보게 해준 이 책 덕분에 하루가 조금은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은, 대단한 무엇보다 ‘작은 태도’에서 출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주 금요일 부터 주말까지 삼일을 쉬었던, 운동을 시작했다. 오늘 영상 속에서도 또 하나의 인상적인 문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 오늘의 영상은 스콧 갤러웨이의 <부의 공식>을 정리한 내용이었다.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그 말을 들었다.


"당신이 자동적인 반응으로 그냥 선택한 것과,
충분한 숙고 끝에 선택한 것이 같을 때,
당신은 습관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하와이대저택

숨이 조금씩 거칠어지던 그 순간, 이 말은 내 머릿속을 단단히 붙잡았다. 마치 내 일상의 패턴을, 내가 반복해온 모든 선택들을 되묻는 듯한 문장이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순간을 무심코 흘려보낸다. 자동적인 반응으로 결정하고, 반복되는 루틴에 자신을 맡긴다. 그런데 그것은 무심코 흘려버린 시간이 아닐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 아침 창가에 서서 생각했던 반복적인 일상들은 조금씩 나의 의지가 습관이란 모습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저자의 말, 그러니까 결국 충분히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이 ‘같은 것’이 되었을 때, 그것은 "의지"가 ‘습관’의 유전자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 된다.


나는 아직 내 습관을 완벽히 장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문장들을 마주할 때마다,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어떤 하루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묻는 작은 계기가 된다.


집안일을 마무리한 뒤에는 반려묘 후츄와 잠시 시간을 보내 주었다. 현저한 운동부족으로 인해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후츄를 위해 요즘 운동을 시키려고 노력중인데 쉽지가 않다.


운동을 위해 준비한 캣타워는 해가 가장 잘들어오는 휴식공간이 된지 어언 1년이 다되어가고 있다. 마치 운동을 위해 장만한 런닝머신이 빨래걸이가 되는 것 처럼.


세상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아는 이 녀석을 위해 조금씩 운동을 시키려고 노력중이지만 아직은 눌러 앉으려는 녀석의 의지를 바꿔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펑퍼짐한 녀석의 엉덩이만큼이나 녀석의 움직이고 싶지 않은 마음은 무겁다.


따뜻한 햇살을 느끼면 앉아있는 그런 후츄의 눈을 마주 보면, 세상의 복잡한 관계나 문제 같은 건 한없이 멀게 느껴진다. 그냥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것이 전부라는 듯이.


아내가 퇴근해 들어오고,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따뜻한 밥을 나누며 나눈 소소한 대화, 그 사이에 막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특별한 일 없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저녁이었다.


오늘의 하루는 인간관계에 대해, 나 자신의 태도에 대해, 그리고 내가 매일같이 반복하는 선택과 습관에 대해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무 일 없는 하루 같지만, 이렇게 조용히 나를 흔드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하루를 기록하는 이 시간이, 내 안의 결을 조금씩 다듬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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