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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원 Dec 25. 2024

누가 누를 죽였나


1. 2023년 11월 27일에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 – 커넥션>*에서는 아프리카 누(gnu)의 떼죽음에 관해 다루고 있다. 수천 마리 누의 떼죽음, 누가 누를 죽였나. 


2. 해마다 120만 마리의 누들은 무성한 목초지를 찾아 두 달에 걸쳐 대이동을 한다. 이동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마라강을 건너는 때이다. 마라강에서 약 7천 마리의 누가 떼죽음을 당한다. 근처에 매복하고 있던 사자 때문도, 물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악어 때문도 아니다. 한꺼번에 몰려든 누들 때문이다. 서로에게 찔리고 찢기고 밟힌다. 대이동 기간 누를 가장 많이 죽인 범인은 바로 그들 자신이다. ‘누가 누를 죽였나’는 중의적 표현이기도 하다. 


3.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은 타살이 아니라 자살로 죽는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도 외부의 위협만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그가 겪는 실패의 이유는 내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를 죽이고 있는 것은 내 자신이다. 주변에 이빨을 드러낸 사자나 악어를 경계하느라 정작 스스로 내고 있는 상처는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위 다큐의 촬영 분량이 180TB나 된다고 한다. 제작자들의 정성과 노력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영상이다. 꼭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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