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남아나지가 않네.

네 손에만 들어가면 말이야.

아야, 물건 좀 아껴 써라.

어째 신발 사 준 지가 두 달도 안 된 거 같은데 거지꼴이 났냐.


다른 애들처럼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내 신발은 왜 그리 빨리 닳았을까.


응, 준비물로 커터칼이 필요하다고? 그거 500원이잖아.

50원짜리 접었다 폈다 하는 칼 써.

꼭 커터칼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옜다.


7센티 남짓한 접었다 폈다 하는 그 칼은 반은 녹슬어 있었다.

만지고 싶지도 않던 그 칼.

날을 넣을 때 칼집 옆을 툭툭 건드려 이빨도 나가있던 검은색 칼.


드륵, 드륵, 드르륵 드르륵...

칼날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커터칼의 그 소리는 단순한 도구 소음이 아니었다.


'너네는 이런 거 없지~?'

접었다 펴는 칼을 가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보이지 않는 완장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그들도 모르게, 뿜어내는 과시.


중학교에 가니 화이트가 유행이었다.

볼펜 글씨를 지우기는커녕, 아이들은 필통에 이름을 쓰거나 책상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싼 국산 제품은 촉이 왜 그리 고장이 잘 났을까.

일본어 휘황찬란하게 써져 있던 일제 화이트 촉은 어찌나 쏙쏙 잘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딱딱딱, 딱딱, 딱.

화이트 쓰기 전 흔들던 그 소리

교실 안에 낭랑히 울려 퍼지곤 했다.

.

.


아이쿠, 저 자매 밍크코트 입었네.

150만 원이라지 아마.

야야, 소리 죽여, 들리겄어.

신랑이 돈 잘 번다더니 노났네 노났어.

저거저거 자연 훼손에 환경 오염시키는 건 아나 모르겄다.


그 밍크코트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건만,

주변인들의 입을 열어 소리를 내는 재주가 있어 보였다.


야, 나는 이거 10년도 더 입었다.

성당 바자회에서 5천 원에 팔길래 사 왔지.

형님, 내가 5천 원 줄 테니 한번 사다 줘 봐요. 에이,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이거 메이컨데 뭘.


엄마라고 왜 밍크코트가 입고 싶지 않았겠는가.

.

.


5천 원짜리 누비 잠바위로 접이식 칼날이 스친다.


녹슬어서 종이도 덜거덕 거리며 박박 찢어내던 그 칼


검정 칼을 건네어 주던 엄마의 손

녹슨 날 움켜쥐고 준비물을 자르던 내 손


'엄마, 성당 바자회 언제야? 나도 같이 가자.'

5천 원짜리 잠바 주머니 속에 엄마손 맞잡고 따스히 걷고 싶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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