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어휘를 품고 계신 분들과의 소중한 연대를 꿈꿔봅니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향해 다가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다양한 체험을 해본다든지, 자신과 깊은 대화를 해본다든지, 신에게 답을 구해본다든지. 하지만 때로는 단 하나의 단어가 우리 존재의 핵심을 드러내는 열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리처드 로티라는 철학자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가 있다고 합니다. 가장 '나'를 잘 나타내주고, 다른 사람들과 차별점을 만들어주며,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게 되는 단어라고 해요.
예를 들어 신, 민주주의, 국가, 혁명, 평화, 자유, 행복 같은 것들이 마지막 어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출근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지막 어휘는 무엇일까?'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죠. 그동안 나를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이를테면 '자유'가 마지막 어휘인 사람들은 결코 속박된 상태로 머무를 수 없을 테니 끊임없이 자유를 향해 움직이고 이를 삶에 표현할 거예요. '진실'이 마지막 어휘인 사람은 거짓말을 참지 못하고, '아름다움'이 마지막 어휘인 사람은 추한 것들 앞에서 견디기 어려울 테지요.
좋아하는, 이거다 싶은 단어를 여러 개 늘어놓고 이상형 월드컵처럼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단어와 다른 단어를 놓고 "둘 중 나를 더 잘 표현하는 건 어떤 거지?"라고 물으며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거예요. 빼고 빼다 남는 단 하나의 어휘가 자기 확신이며, 자신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로티는 자신의 마지막 어휘마저 의심하는 사람을 '아이러니스트'라 지칭했습니다. 이들은 보편적 상식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Final Vocabulary에 의구심을 갖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의식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고쳐나가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어휘마저 의심하는 것, 그것 역시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사유의 여정이 아닐까요?
저의 현재 마지막 어휘는 '귀여움'이에요.
처음 들으면 의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철학적 가치야?'라고요. 하지만 저에게 '귀여움'은 단순한 외형적 특성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이자 삶의 태도입니다. 투박한 현실 속에서도 작은 기쁨을 발견하게 하는 시선이죠.
'귀여움'은 너무나 사적인 영역처럼 보이지만, 잔인한 세상이 변모해야 할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냉혹한 현실 뉴스들을 상상해 보세요.
귀여운 금리 인상, 귀여운 경기 침체, 귀여운 주가 하락...
"한국은행이 오늘 귀여운 금리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미국 제조업 지표들은 귀여운 경기 침체를 잇따라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입니까?!
그저 장난스러운 표현이 아니라, 세상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조금씩 깎아내고, 서로를 좀 더 부드럽게 대하는 태도로서의 '귀여움'을 생각해 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작은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는 마음가짐, 실패 앞에서도 '귀여운 실수'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움 말이에요.
비슷한 어휘를 품고 계신 분들과의 소중한 연대를 꿈꿔봅니다.
여러분의 마지막 어휘는 무엇인가요? 오늘 하루, 그 단어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귀염뽀짝한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