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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전환

우리의 삶은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깊어진다

by 이열

분석적 사고: 짜장면의 철학


짜장면 잘 안 먹는데, 며칠 전부터 짜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까만 소스와 흰 면발의 완벽한 조화가 자꾸만 나를 유혹했다.


드디어 오늘, 그 검은 유혹을 영접했다!


접시 위에 놓인 짜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맛은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미식 평론가가 된 양 모든 감각을 집중해 보았다.



구수한데 쿰쿰한, 끝에 약간 시큼함도 있는... 아하!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래, 콩이다! 숙성된 콩의 향기가 바로 짜장면의 정수였던 것!



고깃기름의 고소한 맛이 지배적인 가운데, 다진 야채들의 각기 다른 풍미와 식감이 입 안에서 춤을 춘다. 그리고 마지막엔 양파의 달큼한 맛으로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교향곡.


목 넘김
묵직한 전분이 모든 맛을 감싸 안으며 목구멍으로 슬라이딩~ 마치 겨울 스키장에서의 완벽한 활강처럼!


... 그런데 이렇게 분석해 보니 왠지 감흥이 떨어졌다. 철학자가 사랑을 분석하면 사랑이 사라지듯, 음식도 그냥 즐기는 게 정답인지도.


그냥 먹자. 때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사고다.



호혜적 사고: 어린이의 협상력


감기에 걸린 아이와 병원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데, TV에 오토바이를 타고 계신 신계숙 교수님이 나오셨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여기서 나는 기회를 포착했다.


"뚠뚠아, 너도 오토바이 타보고 싶댔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이가 대답한다. "응."


"그럼 뒤에 태워줄게. 나중에 나 저거 사줘."


아이의 얼굴에 의심의 그림자가 스친다. "얼만데?"


"2,200만 원?"


냉정한 판단력을 발휘하는 아이. "싸네."


승리를 예감하며 마지막 협상카드를 꺼낸다. "그럼 사줘. 태워줄게."


아이의 단호한 대답. "싫어."


당황스러운 나. "아, 왜?"


더욱 단호해지는 아이. "싫어."


협상 실패. 부모의 권위는 그렇게 무너졌다.


결국 우리는 오토바이 대신 아이스크림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오토바이보다 아이스크림으로 더욱 끈끈해지는 우리 관계.



해체적 사고: 과자와 젓가락과 존재의 의미


모두가 잠든 밤,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낮에 사 온 과자가 떠올랐다.

'먹고 싶다.'


그러나 손으로 과자를 집어먹고 책도 보는 것은 아무래도 성가신 일이다. 책에 기름 묻히기는 싫고, 페이지 넘기기도 번거롭다. 인간의 영원한 딜레마.


문득 손에 냄새 밸까 젓가락으로 담배를 피우던 여고생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순간 번뜩이는 영감!


'그래, 젓가락이다! 젓가락으로 먹자~! 으하하하'


부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젓가락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든 개념일 뿐. 때로 관습을 깨면 편안함이 찾아온다.



미래지향적 사고: 좀비게임과 세대 간의 약속


윗집 아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우리 아이와 함께 나도 좀비 게임을 하자는 제안.


"아 왜?" 하고 투정 부리는 나에게 아이들의 반응은 단호했다.


"애들은 애들끼리 놀앗~!"


잠깐의 실랑이 끝에, 난 다정한 아빠니까 승낙. 결국 세대 간 화합을 위해 무릎을 꿇었다.


불은 다 꺼야 한단다. 갑자기 집이 암흑으로 변했다.


오, 의외로 재미있다! 어둠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아빠 진짜 눈 뜨면 안 돼~, 나도 안 뜰 거야"


속으로 미소 짓는다. '... 눈 뜨고 돌아다니는 거 다 티 나.'


하지만 이 게임에서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일단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다.


눈을 감고 집 안을 더듬거리다, 구석에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같이 놀면 나중에 너도 나랑 놀아주겠지? 으캬캬컄'


이런 작은 놀이가 쌓여 미래의 관계를 만든다. 오늘의 좀비 게임은 20년 후 성인이 된 아이가 나와 나눌 대화의 씨앗일지도 모른다. 의미가 크다.



때로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 위대한 사고실험이 이루어진다. 짜장면, 오토바이, 젓가락, 그리고 좀비 게임. 우리의 삶은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깊어진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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