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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작은 마법

중요한 건 장소보다 마음가짐인지도 모른다

by 이열

'여행'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동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이 있다.


야자수가 드리운 그늘 아래, 편안한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산들거리는 바닷바람과 함께 책장을 넘기는 나의 모습.


옆 테이블에는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시원한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한 잔이 놓여있고, 가끔 빨대를 입에 물고 홀짝이며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본다.


발밑에 놓인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감미로운 시티 팝이 나지막하게 흘러나오고, 따사로운 햇살과 규칙적인 파도 소리에 취해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든다.


아, 생각만 해도 너무 좋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의자와 소설, 그리고 스피커만 있다면 어디든 나만의 여행지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회사 근처에 제법 큰 공원이 하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점심시간에 산책로를 따라 걷곤 한다. 적당히 걸었다 싶으면 벤치에 털썩 앉아 이 계절만의 풍경을 마음껏 들이마신다.


초록빛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며 맞는 가벼운 바람의 상쾌함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직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다음번엔 책 한 권을 챙겨가면 정말 금상첨화일 것 같다. BGM은 핸드폰이 담당하면 되고.


이렇게 잠깐이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만의 시간에 집중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에 대한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저서 《지혜의 심리학》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공간적, 시간적으로 거리를 두어 보라는 것이다.


떨어져 있는 동안, 우리는 고수하고 있던 단편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관점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볼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생각의 재료들을 꺼내 유추하고, 은유로 연결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여행이란 결국 예술적인 활동이다. 단순히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관점을 얻는 창조적 과정인 셈이다.


물론 자주 여행을 떠날 수는 없다. 현실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조금만 발상을 바꿔보면, 일상을 잠시나마 여행으로 만들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의자 하나, 재미있는 소설 한 권,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이 세 가지만 있다면 어디든 나만의 작은 휴양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건 장소보다 마음가짐인지도 모른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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