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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하여

완벽하게 좋아할 필요도, 뛰어나게 잘할 필요도 없다

by 이열

집안일을 나열해 보면 제법 긴 목록이 나온다.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분리수거, 이불 털기, 빨래의 전 과정, 바닥 진공청소 및 물걸레질까지. 새삼 놀랍다.


물 위를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백조는 물 아래에서 쉼 없이 발을 움직인다. 일상의 평온함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기에 고요하려면, 그 안에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손길들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집안일은 싫지 않다.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쓸고 닦으며 마음도 함께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반복적인 동작 속에서 묘한 평온함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부담으로 다가오는 녀석이 있다. 바로 설거지.


퇴근 후 피곤할 텐데도 정성스럽게 저녁을 차려주는 아내에게는 늘 고맙다. 그 감사한 마음은 진심이다. 하지만 감사함과 별개로, 맛있게 먹은 후엔 그냥 여운을 즐기며 늘어지게 쉬고 싶다. 특히 반주라도 곁들인 날이면 설거지는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이쯤에서 '싫어하는 설거지도 잘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솔직히 그런 건 없다. 왜 안 좋아하는 일까지 완벽하게 해야 할까? 해야 하니까 그냥 하는 것이다. 적당히 깨끗하게.


설거지도 파고들면 세제와 수세미, 그릇 간의 절묘한 조화를 추구하는 깊은 세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 경지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



워밍업의 중요성


식사 후엔 바로 설거지대로 향하지 않는다. 잠시 딴짓을 한다. 괜히 냉장고도 열어보고, 창밖도 내다본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먹고 바로 정리하는 행위는 너무 기계적이고 건조하게 느껴진다.


유체이탈의 기술


때로는 책 한 페이지 정도 읽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머릿속에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손은 그릇을 닦고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다. 이런저런 궁리가 시간을 빨리 가게 만들어준다.


감정이입과 정화의 시간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그 감정을 설거지통에 함께 담는다. 음식 찌꺼기와 함께 그날의 스트레스도 수세미로 빡빡 문질러 씻어내린다고 상상한다. 의외로 마음 정리에 도움이 된다.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완벽하게 좋아할 필요도, 뛰어나게 잘할 필요도 없다. 워밍업, 유체이탈, 감정이입. 이런 작은 방법들이면 충분하다.


각자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일상은 조금 더 견딜 만해진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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