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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by 이열 Feb 05. 2025

나는 계획형 인간이었다. MBTI로 따지면 J.

찐 J를 판별하는 방법은 계획을 세우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계획이 틀어졌을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보면 된단다. 물론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수록 순수 J에 가깝다.

나는 J 레벨도 높았었나 보다. 예정된 경로를 벗어나면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거실 책상에서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나는 글을 쓸 때가 있다.

“아빠, 이거 봐봐. 재밌지?”

“내가 마술 보여줄까?”

“아빠, 이거 어떻게 풀어? 못 풀겠어, 어려워.”

문제를 풀면서도 정말 한시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딸내미. 당연히 쓰고 있는 글에 집중할 수 없다.

처음 몇 번은 상냥하게 대응하다가, 점점 건성으로 답하게 되고, 도저히 못 참겠어서 숙제할 땐 제발 조용히 좀 하라고 다그치는 일이 빈번했었다.

최근엔 끝까지 만면에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하아, 힘들)

그랬더니 아이가 가끔 군것질 거리를 챙겨준다.



명절 연휴 처가 가는 길,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들뜬 아내가 눈을 반짝거리며 불복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여보, 스타벅스에 신상 음료 나왔대. 들렀다 가자.”

“앗, 앞에 주문 32개 있대. 왜 이렇게 많아?”

“어, 저기 건너편에 호두과자 집 있다. 기다리는 동안 저기서 뭣 좀 사가자. 저 앞에서 유턴하면 되겠다.”

“으응, 그래그래.”

살다 보니 스타벅스 정도는 미리 계산에 포함하는 센스가 생겼지만 호두과자 집이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군말 없이 차를 돌리고, 기다렸더니 맛있는 앙버터 호두과자를 맛보고 신상 음료도 마실 수 있었다.




내 삶 속 경중을 고민해 보지 않으면 우선순위가 엉켜 나쁜 판단을 내리기 십상이다.

내가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잘 돌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늘 끄적대는 글보다 지금 아이와 나누는 대화가 더 소중하고, 아내 님 입은 항상 즐겁게 해 드려야 가정이 평화롭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은 나만 바뀌면 해결된다.

나는 이제 P로 변절...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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