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는 것들

전쟁과 평화 2 <선택 이후의 삶>

by 하루



<전쟁과 평화 2>

어떤 선택들은 그 순간에는 사소해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선택이 우리 삶의 방향을 얼마나 크게 바꾸었는지 알게 된다. 우리는 늘 선택 앞에 서 있고, 그 선택이 인생 전체를 좌우할 것처럼 느끼며 흔들린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2권에서 나타샤와 피에르 역시 그러한 선택의 갈림길에 선 인물들이다. 다만 이 작품이 말하는 선택은 단순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의지와 사회적 조건, 우연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열여섯 살의 나타샤는 귀족 살롱에 데뷔하자마자 주목과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 명문 귀족 안드레이의 청혼은 그녀에게 축복처럼 주어지지만, 1년이라는 유예 기간은 오히려 잔인한 시험이 된다. 여행을 떠난 안드레이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타샤는 사랑을 지킬 경험도, 흔들리지 않을 판단력도 아직 갖추지 못했다. 그 틈을 파고든 아나톨의 유혹은 나타샤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라기보다, 순수한 감정이 화려한 외양과 즉각적인 욕망에 쉽게 압도되는 사회적 구조를 드러낸다. 그녀의 선택은 어리석음이라기보다, 선택할 준비가 되지 않은 존재에게 주어진 가혹한 상황의 결과에 가깝다.


피에르 역시 자유로운 선택의 주체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생아로 태어나 소외되어 자라온 그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하루아침에 막대한 부와 귀족 신분을 상속받는다. 갑작스러운 지위 상승 속에서 쏟아지는 청혼과 시선은 축복이 아니라 혼란이다. 피에르는 엘렌과의 결혼을 사랑이라 믿지만, 그것은 사랑에 대한 무지와 귀족 사회의 관습이 만들어낸 착각에 가깝다. 그의 불행은 개인적 판단 착오에서 시작되었지만, 동시에 사회가 강요한 역할에 순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2권의 중심 서사는 나타샤의 약혼과 피에르의 결혼이라는 두 ‘선택’이 어떻게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의 공통점은 선택의 결과가 곧바로 성장이나 구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톨스토이는 잘못된 선택이 반드시 의미 있는 교훈을 남긴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선택은 깊은 상처만 남기고, 그 상처를 견디는 시간이 인물을 조금씩 변화시킬 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과거 나의 경솔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한때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결정은, 당시에는 하나의 선택처럼 보였지만 돌이켜보면 정보의 부족과 환경의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 판단이었다. 뒤늦게 배움의 길로 돌아왔을 때, 그 시간은 여전히 후회로 남아 있었지만 동시에 배움의 가치와 즐거움을 알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선택이 ‘필연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망설여진다. 어떤 선택은 성장보다 상실의 흔적을 더 오래 남긴다.


『전쟁과 평화』는 그래서 위로의 소설이라기보다 성찰의 소설에 가깝다. 나타샤와 피에르가 겪는 전쟁 같은 시간은 자신들의 선택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있었는지를 깨닫는 과정이다. 그 깨달음은 곧바로 구원을 주지 않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환상에서 떼어내는 계기는 된다.


우리는 삶에서 언제나 선택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모든 선택이 옳거나 의미 있게 수렴되지는 않는다. 톨스토이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다만 잘못된 선택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는 태도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남겨둔다. 어쩌면 성장통이란, 선택의 결과를 미화하지 않고 끝까지 감당하려는 자세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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