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뜨개질을 엮어서
새벽 세 시, 잠에서 깼다. 수면제를 먹고 있음에도 한두 시간에 한 번은 꼭 깬다. 보통은 몽롱한 상태로 시간을 확인한 후 다시 잠들지만, 완전히 깨어버릴 때가 있다. 대개 휴대전화로 숏츠나 웹툰을 봤었는데, 뜨개질을 시작한 후에는 휴대전화 대신 코바늘을 잡는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다시 졸음이 쏟아지고 깨어있는 동안 생산적인 활동을 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들 수 있다.
오늘은 10호 코바늘을 잡았다. 털실은 오래된 작은 털실 가게에서 직접 구매한 터라 이름을 모르지만, 가게에 걸려있는 보드라운 회색 목도리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목도리를 뜬 털실과 똑같은 것을 달라고 했다. 나도 목도리를 뜰까 하다가 겨울용 버킷햇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버킷햇을 뜨기로 했다. 털실을 잡고 코바늘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뜨개질을 하는데 좀처럼 잘되지 않았다. 내가 산 회색 털실은 가느다란 실 여러 가닥이 꼬여 있는 종류의 굵은 털실이라 자꾸만 실이 가닥가닥 갈라졌고, 가닥 실끼리 엉키기까지 했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포기했다. 이 털실로는 도무지 뜨개질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한 코도 뜨지 못한 채 찝찝한 마음으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나에게는 골칫덩어리인 실이 하나 더 있었는데, 얇은 하늘색 털실이 그랬다. 흰색과 하늘색, 짙은 파란색, 갈색이 섞여 오묘한 느낌을 주는 털실이었는데, 너무 얇아서 촘촘하게 뜨면 편물이 너무 작게 나올 것 같았고, 느슨하게 뜨면 구멍이 숭숭 뚫린 편물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이것 역시 가게에서 구매한 터라 이름을 알 수 없어서 예시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히 색이 예뻐서 샀는데 이런 난관에 봉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꾸 갈라지는 굵은 털실을, 얇아도 너무 얇은 하늘색 털실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에라이, 하는 심정으로 두 털실을 합사하기로 했다. 합사란 두 가닥 이상의 실을 합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두 개 다 골칫덩어리일 거라면 하나로 합쳐서 그 수를 줄이고자 했다. 함께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 좀 나아질까 싶어서.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를 돌봐주었던 전 연인.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여전히 선명한 장면이 있다면 이런 것. 깊어가는 밤, 어두운 집에는 붉은 조명 하나가 켜져 있고, 나는 울고 있다. 매트리스 위에 앉아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황망하게 운다. 외출한 전 연인이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복층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이어지면 눈물 때문에 흐릿한 시야 너머로 전 연인의 얼굴이 보인다.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다. 전 연인은 다급하게 계단을 마저 올라와서 나를 안아준다. 겨울바람에 차가워진 그의 뺨이 내 뺨에 닿고. 내 이름을 가만가만 부르는 나직한 목소리. 이응이 많이 들어간 내 이름을 굴리는 부드러운 발음. 나의 우울증까지 꼼꼼하게 안아주었던 세심함. 그런 것들이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을 뚫고 아직 내게 남아 있다.
굵은 털실과 얇은 털실을 함께 잡고 버킷햇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가닥으로 갈라지는 털실에 가닥 실을 더했다. 그러자 얇은 실이 빙글빙글 돌면서 굵은 털실이 갈라지는 것을 막아주어 거짓말처럼 뜨개가 가능해졌다. 다채로운 얇은 하늘색 털실과 굵은 회색 털실이 합쳐져 신비로운 색의 버킷햇이 완성되었다. 결국 한 코를 떠냈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색이 아름다운 바람에 몇 단 더 떴더니 내게는 조금 큰 버킷햇이 되었지만 마음에 들었다. 이 버킷햇과 함께라면 이번 겨울을 따스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는 발음할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 함께가 있다. 그럼에도 고마운 건 함께라서 나아졌다는 것. 함께였기에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리하여 지금도 따뜻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