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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코와 한 줄

우울증과 뜨개질을 엮어서

by 모서리

“색을 봐봐 얘는 겉부터 완전 희잖니. 눈송이 다루듯 조심스레 다루어야 해. 흰 재료는 대부분 그렇다? 자세히 봐봐. 찹쌀, 전분, 설탕, 흰자, 메추리, 쌀국수. 흰 것들은 허물어지기 쉬운 법이야. 흰 것들은 마음을 써서 다루어야 해.”

─고명재,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중에서




눈이 내린다. 창문에 눈꽃이 핀다. 창문을 열자 와자작, 하고 눈꽃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온 세상이 하얗다. 도로와 건물 옥상, 빼곡하게 주차된 차들 위로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다. 전봇대를 잇는 전깃줄에도 예외란 없고, 검은 줄이 사라진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위에도 눈발이 내려앉는다. 전기포트에서 희뿌연 김이 뿜어져 나온다. 뜨거운 물에 흰 티백을 담근다.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겨울에는 온통 흰 것들 천지라 흰 것에 흰 것을 더하고 싶다. 화이트 색상의 울토탈 털실을 구비한다. 울토탈 털실은 울과 아크릴이 혼방된 터라 거친 듯하면서 부드럽다. 괜히 흰 손톱 끝을 털실에 비벼본다. 까슬까슬한 촉감이 손톱 아래 살을 기분 좋게 파고든다.


작년 여름이었다. 갑작스레 난독증이 찾아왔다. 아무리 읽어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이제껏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었던 ‘글’인데 한 줄도 읽어낼 수 없었다. 글자가 그저 구불구불한 문양처럼 느껴졌다. 소리 내어 읽어보아도 글 안에 내포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난독증이나 외계어처럼 보이는 글이 아니라 그러한 상태가 된 나 자신이었다. 글을 쓰려면 글을 읽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심지어 내가 쓴 글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당시의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어떻게든 읽어내려고 애썼다. 셀 수 없이 돌아갔다. 직전 문장으로, 이전 페이지로, 첫 장으로. 이리도 짧은 문장들이 이해되지 않을 리 없다고 부정하면서 읽었던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돌아가는 일이 끔찍했지만 괜찮은 척, 이해되는 척하며 나 자신을 속였다. 그 역시 끔찍했다. 스스로를 글과 단어처럼 대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흰 것은 마음을 써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내 눈 또한 흰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나를 아꼈을까. 두세 시간 동안 눈이 빠지도록 읽히지 않는 책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청량한 여름 하늘의 구름과 흰 컵에 맺히는 물방울, 시원한 흰 여름 이불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그때의 나를 조금이나마 감싸기 위해 흰색 울토탈 털실로 목도리를 뜬다. 나의 흰 목덜미가 추위에 허물어지지 않도록, 목도리에 부딪혀 올라오는 입김에 나의 흰자가 따스하고 촉촉해지도록. 원하는 목도리 길이만큼 사슬뜨기를 한다. 사슬을 옆으로 돌리면 구멍을 가진 코 산이 보이는데, 그곳에다가 긴뜨기 이랑뜨기를 한다. 사슬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다 떴다면 또다시 반대쪽까지 뜨고를 원하는 두께가 될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반대쪽으로, 또 반대쪽으로 돌아간다.


유달리 털실이 자주 꼬인다. 흰 것들은 허물어지기 쉽다. 자꾸 털실을 꼬아대는 나를 자책하려다가 멈칫한다. 더는 내 흰자위가 허물어지지 않았으면, 희고 물렁물렁한 마음이 짓눌리지 않았으면 한다. 나 자신을 아프게 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자책 대신 꼬인 털실을 천천히 풀어본다. 묶이고 꼬인 부분을 풀어서 떨어트려 놓는다. 단단히 묶여버렸을 때는 쪽가위로 조심스레 잘라낸다. 꼬인 지점을 푼 후 두 갈래가 된 털실을 다시금 작게 매듭짓는다. 그렇게 하나가 된 털실로 다시 뜨개질을 한다.


돌아가는 일은 내 잘못으로 인한 일이 아니라는 걸, 목도리를 뜨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완성한 흰색 목도리를 한 코 한 코 훑고 쓰다듬어 보면서 돌아간 나의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목도리를 둘러본다. 흰 것으로 흰 것을 두른다. 쉽게 허물어지는 것들끼리 서로를 감싼다. 목덜미에 살짝 억센 촉감이 와닿지만 오히려 단단하게 느껴져서 좋다.


돌아간다는 건 참 다양한 감정과 결과를 끌어내는 행위다. 다만 나는 돌아간다면 이전보다 더 튼튼한 편물을 만들어낼 것이고, 눈이 아플 만큼 이전 문장을 반복해서 읽지 않을 것이며, 그때의 나를 안아줄 것이다. 이제 나는 돌아가는 일이 좋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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