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뜨개질을 엮어서
털실과 코바늘을 넣어 다닐 주머니가 필요해서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여 복조리 파우치를 뜨기로 했다. 가운데에 귀여운 체리 세 개가 달려 있는데, 그 말인즉슨 편물을 뜨면서 체리 장식까지 함께 떠야 한다는 뜻이라서 잠시 주춤했지만 도전을 결심했다. 체리가 몹시 예쁘게 부풀어 있어서 이미 부풀어 오른 이 기대감과 설렘을 어찌할 수 없었다.
복조리 파우치나 가방처럼 동그랗게 바닥이 있는 것을 뜰 때 편물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손을 움직일수록 숨을 불어넣는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편물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뿌듯하다가도 내 안에 부풀어 올라 있는 다른 존재가 감각된다.
불안. 끝도 없이 부푸는 존재다.
불안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거대한 것까지 다양한 범위 내에서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피어난다. 여러 감정과 묶여 있어서 구분하기 힘들고 어떨 때는 독립적으로, 독보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 불안은 걱정과 함께 나타나고, 하염없이 우는 나를 제어할 수 없을 때는 분노, 답답함과 함께 나타난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겪는 불안은 ‘오롯한 불안’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불안은 불안 자체로 나타날 때 그 특성을 고스란히 내비친다. 그런 오롯한 불안이 찾아오면 순간적으로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며 속이 울렁거린다. 나조차 이유를 알 수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 불안에 더욱 불안해진다.
안정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불안을 담아두기 위해 체리 복조리 파우치를 떠본다. 빨간색과 연두색, 크림색의 젤리얀 킹 실을 사용한다. 젤리얀 킹 실은 코나 실과 유사한, 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안에 솜이 들어간 패브릭 얀인데 두께가 코나 실보다 더 두꺼워서 파우치나 가방 같은 큰 소품을 뜨기 좋다. 빨간색 실로 바닥 부분을, 크림색 실로 몸통 부분을 만들기로 한다. 빨간색 실로 사슬 열여덟 개를 만든 후 각각의 사슬에 짧은뜨기를 해 준다. 이때 짧은뜨기 코 개수를 늘려가면서 둥근 형태의 바닥을 만든다. 5단까지 짧은뜨기를 한 다음 마지막 코에서 크림색 실로 배색한다. 이후 7단까지 한길긴뜨기로 몸통 부분을 떠준다.
불안 증세가 찾아오면 몸을 가만히 둘 수 없다. 가쁜 호흡을 가라앉히기 위해, 빨리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속 울렁거림을 멈추기 위해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입술을 깨물고 가슴을 내리치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때린다. 책상을 세게 내리친다. 손과 머리에 가해지는 고통에 집중하려고 애쓰다 보면 조금 나아지지만 그것도 잠시다. 불안한 기분은 삽시간에 다시 내 몸 곳곳으로 스며든다. 벗어나는 방법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얼마나 기다려야 불안이 물러갈까. 또 불안이 부푼다.
8단에서 빨간색 실로 팝콘뜨기를 하여 체리 열매를 만든다. 팝콘뜨기는 팝콘 같은 동그란 패턴이나 장식을 만드는 기술을 뜻하는데, 어떤 기초 기술로 어떻게 동그란 모양을 만드느냐에 따라 그 방법이 다양하다. 나는 긴뜨기 모아뜨기를 통해 팝콘 뜨기를 해나갔다. 한 코에 긴뜨기 다섯 코를 한꺼번에 떠주면 체리 열매가 완성된다. 동그랗게 부푼 모양새가 참 예뻐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쓰다듬는다. 보드라운 촉감이 손끝에 느껴지고 이 보드라움이 내 불안마저 흐물흐물하게 만들 것 같다. 체리 열매 윗부분에 연두색 실로 긴뜨기로 줄기를 만들고 크림색 실로 나머지 몸통 부분을 만든다. 사슬뜨기로 긴 끈을 만들어서 돗바늘로 그것을 두 세코 걸러 끼워주면 체리 복조리 파우치 완성이다. 끈을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입구가 오므려지는 형태가 된다. 지퍼를 여닫는 것보다 손이 많이 가지만 그래서 좋다.
불안해서 뜨개질을 했는데 여전히 불안할 때가 있다. 머리를 세게 때려서 두피가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 날이 있고 책상을 너무 많이 내리쳐서 손이 시뻘겋게 되는 날이 있다. 끈을 잡아당겨 복조리 파우치를 연다. 이곳에 불안을 담아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이 조금 가라앉는다. 체리처럼 부푼 불안을 하나둘 담아본다. 벌겋게 부푸는 날이 줄어들길 바라며. 적당히 납작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