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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이면

우울증과 뜨개질을 엮어서

by 모서리 Feb 24. 2025

  언젠가 나의 친구가 “우울증? 에이, 별거 아니네. 감기 같은 걸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했을 때 내가 무어라 반응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웃어넘겼는지, 삐져나오는 눈물을 참았는지, 온몸에 땀이 나도록 고민한 끝에 털어놓은 우울증이 감기로 치환되는 순간에, 그럼에도 걱정하지 말라는 따스한 말에 아마 웃어넘겼던 것 같다. 삐져나오는 눈물을 참으면서.


  우울증을 겪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보통 우울증이 감기처럼 얼마간 약을 먹으면 낫거나 ‘우울감’ 정도로 생각하는데, 우울감과 우울증은 확연히 다르다. 우울감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우울증은 정신병이다. 우울감은 짧고 우울증은 길다. 우울감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지만 우울증은 지장이 있다. 우울감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지만 우울증은 의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우울증은 나아졌다 싶으면 심해지는,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지속되는 병이다. 방심하는 순간 다시 찾아오기 때문에 꾸준한 약물 치료와 상담이 필요하다.


  친구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 모른다. 우울감과 우울증의 차이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에 우울감 정도로만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 역시 친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상처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친구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상처받지 않으려면 타인이 나를 이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이 우울증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나는 설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내 증상을 나열하고 주로 어떨 때 증상이 나타나는지 알려준다. 그리하여 상처받지 않도록, 함께하는 타인이 놀라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다면 설명한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 꼭 그렇지도 않다. 모든 병이 그렇겠지만 우울증은 특히 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병이다. 말로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타인이 우울증을 이해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설명함으로써 나를 한 꺼풀 벗겨내어 드러내 보이는 기분을 느꼈음에도 이해받지 못할 때가 있다. 설명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일 역시 상처가 되곤 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설명해도 상처받는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나는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믿음’이다. 타인이 나에게 상처 주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 나의 우울증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나와 관계를 지속해나갈 거라고 믿는 것.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다소 미련해 보일 수 있는 이 방법은 어쩌면 반드시 행해야 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아무리 우울증에 대해 설명하고 보여주고 들려줘도 내가 타인을 믿지 못한다면 다 소용없는 행동이다.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이상하게 보이면 어쩌지, 하는 끝없는 걱정을 하게 된다. 설명과 동시에 상대를 믿어야 한다. 이건 나를 위한 일인 동시에 나와 상대의 관계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상대에게 내 우울증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그간 가졌던 관계의 믿음에 또 하나가 추가되는 기분을 느낀다. 앞으로 잘 부탁해, 라는 심정으로 상대를 대하게 된다.


  설명하는 입장이라고 해서 내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안 된다. 나 역시 상대의 아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픔을 들려주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이기에 최선을 다해 귀 기울인다. 또한 우울증의 어떤 점을 궁금해하고 어떤 점이 이해되지 않는지 경청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모르는 게 생기면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함께 읽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여러 실패와 좌절을 겪은 끝에 찾아낸 깊고 긴 관계 맺음의 방법이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일 터다. 나 자신에게도 주의를 기울이기 힘든데 타인에게까지 귀 기울이며 나를 드러내 보여야 하는 일은 번거롭고 힘들다. 그럼에도 내가 관계를 맺는 이유는 혹여나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봐, 우울증은 아니어도 같은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울증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있고, 우울증에 대해 더 널리 알려 다른 우울증 환자들이 굳이 설명의 과정을 겪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는 나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언제든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내 진심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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