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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드릴게요

우울증과 뜨개질을 엮어서

by 모서리

집에 산세베리아를 들였다. 식물이 신체적, 정신적 안정에 영향을 미친다(김수연, 「정서적 안정에 대한 섬유 표현 연구 – 니들워크(Needlework)를 중심으로」, 2021)는 글을 본 이후였다. 어떤 식물을 키울까 고민하다가 한 달에 한 번 물을 주면 된다는 산세베리아로 골랐다. 창문 근처에 산세베리아를 놓았다. 집 안 가구들이 전부 흰색 아니면 갈색이어서 생기 있는 색감이 필요했는데, 산세베리아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식물을 실제로 가까이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자연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색이나 질감 또한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행복감을 높인다길래 짙은 녹색과 연두색의 수면사를 주문했다.


수면사는 이름에서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수면(睡眠). 잠을 자는 일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실. 꿈처럼 몽글몽글한 실. 큰 줄기 털실에 두텁고 긴 가닥 실들이 촘촘하게 붙어 있어서 얼굴에 가만 대보면 보송한 감촉이 느껴진다. 매끄러운 산세베리아 이파리와 보드라운 수면사 털실. 번갈아 바라보다 보면 집에 초록이 퍼지는 것을 감각할 수 있다.


수면사가 도착한 날, 비누에게 연락했다. 비누는 소설을 잘 쓰는 후배인데, 같은 시 소설 동아리를 하면서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도란도란하고 따스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을 때 비누가 떠오른다. 비누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온기 있고 은은하게 빛나는 사람. 만나자는 연락에 비누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비누는 그런 사람이다. 흔쾌하고 좋은 사람.


나와 비누는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커피 트리’라는 이름답게 카페 곳곳에는 가짜 식물과 진짜 식물이 섞인 채 장식되어 있었다. 앉으면 머리에 가짜 나뭇잎이 닿을락 말락 하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비누는 녹차 라테를, 나는 캐모마일 티를 주문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같은 메뉴를 주문했던 것 같아서 녹차 라테 좋아하느냐고 물으니까 좋아한다고 비누가 해사하게 웃으며 답했다. 대학가 카페에 있는 모든 녹차 라테를 먹어보았다고.


그 말을 들은 이후 초록, 하면 비누가 떠오른다. 한겨울에도 꿋꿋이 펼친 상록수 이파리, 풍성한 트리, 푹신한 녹색 가죽 의자, 자주 쓰는 연두색 형광펜, 작은 곰돌이 하나가 새겨진 초록색 양말, 그리고 초록 털실. 우리는 뜨거운 음료를 조금씩 들이켰다.


요즘 비누는 무기력증과 기분부전장애를 겪을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머지 게임을 한다고 했다.


“우울증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싶거든.”


가만히 비누의 말을 되뇌었다.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왜 우리는 그것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을까. 우리는 왜 우울증에 걸린 것일까. 비누에게 우울증의 원인을 물어보니 비누는 대답하지 못했다. 곤란함과 멍함이 섞인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우울증 환자에게 우울증의 원인을 묻는다면 보통 비누처럼 대답하지 못하거나 모르겠다고 말한다. 정말 알 수 없는 경우가 있고, 원인을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있다. 우울증의 원인은 고통스러운 상처이기 때문에 되돌아보는 과정 자체가 아프다. 그러나 원인을 되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원인을 알면 나름대로 그것에서 멀어지려는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눈빛을 한 채로 앉아있는 비누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갰다. 이야기하는 게 버거울 때는 그렇게 서로의 손을 잡아주기로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엄마로부터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말을 수차례 들어왔다. 내가 학교에 가기 힘들어하거나 우울감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마다 엄마는 “다들 잘하는데 왜 너만 못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정말 나만 못하는 줄 알았다. 뭐든 잘 해내는 타인과 뭐든 해내지 못하는 나를 비교하며 절망했다. 언젠가부터는 내가 나에게 외쳤다. 다들 잘하는데 왜 너만 못해, 너만. 엄마가 더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비누는 폭력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부모님 사이에 불화가 잦았는데, 비누의 엄마는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비누와 비누의 동생에게 풀었다. 자기 뜻에 따르지 않으면 물리적인 폭력과 언어폭력을 가했다.


“경제적인 부분처럼 부모님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관여하고 있어서 관계를 완전히 끊어낼 수 없다는 게 힘들어.”


내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자 비누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어. 췌장에 물혹이 생겼는데 언제 암으로 변할지 모른다고 하더라고. 췌장암에 걸리면 그냥 죽는다고 봐야 하는데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검사만 하고 있어. 엄마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피해 사실을 아예 없애버리는 느낌이야. 아픈 엄마에게 딸 노릇을 하는 것에서 모순과 괴리를 느껴. 어쨌든 가족으로 태어났다는 책임감을 없앨 수 없는 것 같아. 내가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만들어.”


나의 엄마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완치라는 개념이 없어서 평생 앓아야 한다. 증세가 악화되면 극심한 통증과 관절 변형을 겪는다. 엄마는 두 가지 증상을 다 겪고 있다. 관절염은 턱까지 침투해서 밥 먹을 때마다 엄마를 괴롭게 하고 손가락 마디가 조금씩 굽어지게 한다.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이 나의 상처를 지워버리곤 한다. 엄마를 평생 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어떨 때는 엄마가 사라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 홀로 살고 싶다가도 엄마를 데리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누는 이야기를 끝내고 손을 마주 잡았다. 서로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불행에 집중할 게 아니라 그 불행이 어떤 나를 이루었고, 그로 인해 현재의 내가 어떠하며, 행운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누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학대받고 상처받았던 자신을 구해주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말이다.


그런 비누에게, 초록을 좋아하는 비누에게 작은 행운을 선물하기로 한다. 산세베리아를 닮은 푸릇한 털실로 푸릇한 네잎클로버 키링을 떠본다. 매직링을 만들어서 사슬뜨기 세 개와 두길긴뜨기 두 개, 다시 사슬뜨기 세 개를 해준 다음 빼뜨기로 마무리해주면 잎 하나가 완성된다. 이를 반복하면 네잎클로버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고리만 걸어주면 어디든 달고 다닐 수 있는 키링이 된다.


작고 얇은 실제 네잎클로버와 달리 수면사 네잎클로버는 큼지막하고 튼튼하다. 수면사의 두꺼운 두께 탓에 바람에 이는 숲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꽃봉오리처럼 부풀어 있다. 비누에게 네잎클로버 키링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며 다음에 만나면 전해주기로 약속했다. 비누는 해사하게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마침 뜨개질을 하고 싶었던 참이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어른이 된 나는 뜰 수 있다. 찢어진 어린 나날을 보드라운 털실로 한 코씩, 한 단씩 떠나갈 수 있다. 비누가 생각날 때마다, 행운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네잎클로버를 하나씩 뜬다. 어느새 네잎클로버가 가득 쌓인다. 내 안에 행운이 하나둘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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