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뜨개질을 엮어서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우거나 엄마와 다투면 어두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중얼거렸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질 거야. 나를 괜찮지 않게 하는 것들이 얼른 사라지길 바랐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 주문이 조금 바뀌었다. 괜찮아야 해. 괜찮아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중간고사를, 소설을, 연애를, 삶을 해낼 수 없어. 어렸을 때는 덧붙이지 않았던, 괜찮지 않으면 해낼 수 없을 거라는 가정이 나 자신을 아프게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했고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여겼으니까.
뜨개질은 반복적인 작업이지만 그래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잠시라도 딴생각을 했다가는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이어야 하는 코가 흐트러지거나 내가 몇 단을 뜨고 있는지 잊어버린다. 뜨개질에서는 단 수가 중요한데, 단마다 다른 기법으로 떠야 하는 편물도 있고 정해진 단 수로 길이를 내는 편물도 있기 때문이다. 뜨개질할 때는 최대한 내 손의 움직임과 털실의 꼬임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때만큼은 나를 괜찮지 않게 하는 것들을 잊을 수 있다.
한때 엄마와의 사이가 괜찮지 않았던 적이 있다. 엄마는 현실적인 데 비해 나는 몽상적이었다. 대학을 가지 않고 홀로 따끈따끈한 빵을 굽길 원했으며 매일 글을 썼으면 했다. 엄마는 내가 대학을 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길 바랐으며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길 원했다. 그때 나는 엄마의 바람을 충족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우울증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매일 방에 틀어박혀서 울었다. 누군가와 연락할 힘이 없어서 친구들과의 관계마저 부서졌다.
우울증이 점차 심해지고 내가 더욱 곪아갈 때도 엄마는 여전히 같은 것을 요구했다. 정상적이지 않은 내가 정상적인 삶을 살길 바랐다. 엄마를 사랑했지만 미웠고, 미웠지만 사랑해서 소리쳤다.
“그냥 괜찮다고 해주면 안 돼? 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줄 순 없는 거야?”
엄마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괜찮지 않은데 어떻게 괜찮다고 하니. 네가 대학을 안 간다는데 어떻게 괜찮다고 해.”
대학에 와서는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엄마 말대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내 세상이 넓어졌으니까. 그럼에도 생각한다. 괜찮지 않았던 나에게 괜찮을 거라고 한 번이라도 말해줄 순 없었는지. 우는 나를 따뜻하게 끌어 안아줄 순 없었는지. 그 시절은 여전히 한편으로 엄마를 미워하게 만든다.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하려다가도 휴대전화를 내려놓게 하고, 본가 행 기차표를 취소하게 한다. 이런 내가 미워서 뜨개질을 오래 한다.
짧은뜨기만으로 미니 스퀘어 가방을 뜰 수 있다. 매직링을 만들어 기본 짧은뜨기와 한 코에 짧은뜨기 두 코를 뜨는 두 코 넣어 뜨기를 해주면 가방의 바닥 면을 만들 수 있고, 기본 짧은뜨기와 두 코에 짧은뜨기 한 코를 뜨는 두 코 모아 뜨기로 옆면을 뜬 후, 사슬뜨기로 손잡이까지 만들어주면 손쉽게 가방 하나가 완성된다. 짧은뜨기의 변형이 사용되긴 하지만 대체로 기본 짧은뜨기가 사용되는 편물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같은 작업이 반복된다.
짧은뜨기를 하면서 괜찮지 않은 것들과 조금씩 멀어져 본다. 괜찮은 나로 나아간다는 기분으로 한 코, 한 코 떠나가 본다. 그때의 나를 완전히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것을 뜨개질에게 바라면 괜찮지 않음과 멀어지는 일도, 뜨개질을 즐기는 일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다. 그저 한 코를 떠낼 수 있다는 것, 그럼으로써 내가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에 집중한다.
가방에 엄마의 이니셜을 새긴 라벨을 단다. 따뜻한 색감의 갈색 종이 포장지에 포장하여 엄마에게 보낸다. 엄마에게 가는 것이 어려울 때 직접 만든 편물을 보낸다. 내가 이만큼 괜찮아졌다는 사실과 우리가 괜찮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내가 하릴없이 웃으며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내가 만든 가방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