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뜨개질을 엮어서
한집에 사는 애인과 규칙을 만들었다. 근래 불필요한 소비가 많았다는 걸─이를테면 배달 음식이나 매일 아침 사 마시는 테이크아웃 커피 같은 것─알아차리고는 소비를 줄여보기로 했다. 식사는 최대한 직접 만든 음식으로 채울 것. 커피 역시 인스턴트 커피 가루와 연유, 우유, 얼음을 사서 만들어 마실 것. 즉석밥 대신 쌀과 밥솥으로 밥을 지어 먹을 것. 삼월이 되고서 낮에는 많이 따뜻해진 터라 집 안에 있을 때 보일러를 트는 대신 겉옷을 입을 것. 소비뿐만 아니라 건강과 삶의 질에도 도움이 되는 규칙들이었다.
규칙을 지키려면 초기 비용이 드는 게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텀블러였다. 직접 만든 커피를 담을 텀블러가 필요했다. 함께 온라인 쇼핑몰에서 텀블러를 고르다가 애인이 말했다.
“텀블러 담을 수 있는 보틀백 하나 떠줄 수 있어?”
이러한 애인의 부탁이 나로서는 굉장히 반가웠다. 여러 종류의 파우치, 가방, 소품…… 코바늘로 뜰 수 있는 건 거의 다 떠본 터라 편물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다음에는 어떤 것을 뜰지 골몰하기 때문이었다.
애인 역시 어떻게 하면 텀블러를 편리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음료를 다 마신 후 플라스틱 컵은 버리면 그만이지만, 텀블러는 계속해서 들고 다녀야 한다. 손에 들고 다니기에는 번거롭고, 가방에 넣자니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불편할 것 같다는 게 애인의 의견이었다. 그러던 와중 찾은 답이 텀블러를 넣어 다닐 수 있는 보특백이라고 했다.
애인이 던져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망설임 없이 떠보기로 했다. 유튜브에서 보틀백 영상과 도안을 찾고 털실을 주문했다. 배송 온 털실은 털실이라고 불러도 되나, 하는 의문을 들게 했는데, 털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 이름은 ‘아임 낫 레더’. 이름에서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실은 가죽 느낌이 나지만 가죽이 아니었다. 가죽처럼 탄탄하고 처짐이 적은 게 특징이었다. 겉보기에는 정말 가죽처럼 매끈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얇은 끈이 촘촘하게 엮여 로프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가죽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태도가 재미있었다.
무언가를 당당하게 외쳤을 때라고 한다면, 더 정확히는 무언가를 완강하게 부정했을 때가 있다면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일 것이다. “넌 아프니까 쉬어야 해, 우울증이니까 안정을 취해야 해”라는 말에 울면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난 아프지 않다고. 환자가 아니라고. 믿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우울증이라는 병이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도 걸릴 수 있는지 알지 못했을뿐더러 주변 사람들에게 우울증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밝혔을 때 돌아올 반응이 무서웠다. 나를 나약한 사람으로 여기고 이상하게 볼까 봐 두려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 수 있었다. 우울증은 숨기려 할수록 아픈 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괜찮은 척 웃어넘기는 건 내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었다. 그간 설명할 수 없는 증상들에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건 나를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했다. 우울증을 밝히고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과 각자의 사연을 나누며 차츰 나아지는 걸 느꼈다.
보틀백의 바닥면은 사각형이기 때문에 ‘모퉁이 규칙’이라는 것이 적용된다. 말 그대로 모퉁이를 뜰 때 규칙이 있다는 것인데, 내가 선택한 보틀백은 한길긴뜨기 두 개, 사슬 세 개, 한길긴뜨기 두 개라는 규칙을 가지고 있다. 어렵지 않다. 바닥 면과 몸통을 뜨다가 모퉁이를 만나면 한길긴뜨기 두 개, 사슬 세 개, 한길긴뜨기 두 개를 해주면 된다. 규칙을 지키며 떠나가다 보면 어느새 탄탄한 보틀백이 완성된다.
내 안에는 모퉁이 규칙 같은, 나와 애인이 만든 규칙 같은 문장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문장은 변하지 않는 동시에 나를 굴러가게 한다. 내가 나를 믿고 인정하게 한다.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고 더 많은 순간 나에 대해 이야기하게 한다. 아프지만 소중하다. 외롭지만 함께다.
“나는 우울증이라는 정신병을 앓는 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