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뜨개질을 엮어서
짧은뜨기와 긴뜨기로 각각 네모난 편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아이패드 파우치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패드 케이스가 낡을 대로 낡은 이유에서였다. 새로운 케이스를 사기는 싫고, 지저분한 케이스를 계속 끼워놓기도 싫어서 내가 뜨기로 했다. 털실 사이트에서 아이보리와 멜란지 진분홍 색의 코나 실을 샀다. 코나 실은 천으로 된 패브릭얀이다. 가방이나 카드 지갑, 파우치, 티코스터 등 소품을 뜨기에 좋아서 계절을 타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코나 실이 겨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실 안에 든 솜 때문이다. 실을 잘라보면 안에 소량의 솜이 들어있다. 코나 실로 만든 편물은 솜 덕분에 푹신한 동시에 단단하다.
짧은뜨기와 긴뜨기의 차이는 사슬뜨기 후 바늘대에 거는 고리의 개수가 다르다는 것이다. 짧은뜨기는 두 개, 긴뜨기는 세 개다. 정해진 개수만큼 고리를 건 다음에 코바늘에 실을 걸어 빼내면 짧은뜨기와 긴뜨기 한 코가 완성된다. 나는 짧은뜨기보다 긴뜨기를 더 좋아한다. 세 개의 고리에서 실을 빼낼 때의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실을 걸어 빼내는 오독오독한 감촉은 뜰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서 아이보리 색 실과 긴뜨기로 파우치의 앞면과 뒷면, 덮어서 똑딱이를 달 부분까지 만들고, 진분홍 색의 실과 짧은뜨기로 앞면과 뒷면을 잇기로 했다.
반복해서 긴뜨기만 뜨면 되는 단순한 뜨개질이었다. 처음에는 순탄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맞닥뜨렸다. 우선 내가 긴뜨기에 능숙하지 않아서 편물에 구멍이 생긴다는 점, 그리고 다른 실로 뜨개질을 할 때는 조금 실수하더라도 솜털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는데, 코나 실은 패브릭얀이라 솜털이 붙어 있지 않아 실수하면 바로 티가 난다는 점이었다. 나는 내 뜨개질 실력에 낙담했다. 이리 쉬운 기초 기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니. 편물에 난 구멍은 내게도 숭덩숭덩한 구멍을 만들었다.
나의 우울증 증상 중 하나는 ‘만성적 자존감 저하’이다. 만성적 자존감 저하는 말 그대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현상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것인데, 이는 주로 ‘나’로 인해 이루어진다. 내가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사회적 잣대를 들이밀며 내가 그에 미치지 못하면 자조한다. 물건을 떨어트리거나 지갑을 두고 나오는 것과 같은 작은 실수에도 나를 크게 비난한다. 나는 왜 이럴까. 어째서 이런 식으로 사는 걸까. 누가 이런 나를 좋아하겠어. 난 죽어야 해. 만성적 자존감 저하는 우울증과 악순환을 이룬다. 우울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일상생활조차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면 스스로를 비난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우울감이 깊어진다. 그래서 하나에서 벗어나는 게 잘 안 된다. 결국 둘 다 깊어지고 심해진다.
그럼에도 되뇌는 건, 내가 구멍이라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코바늘을 잡을 수 있고 털실을 손가락에 걸 수 있고 뜨개질을 할 수 있는 지금이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무엇 하나 하는 게 소중하다. 턱을 움직여서 밥을 씹을 수 있고, 팔을 들어서 머리를 감을 수 있고, 다리를 움직여 바지를 갈아입을 수 있는 상태가 소중하다. 누군가에는 그저 일상일 그것들이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다행이고 가능성이다.
남는 자투리 털실로 긴뜨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매일 가로, 세로 십 센티의 긴뜨기 편물을 떠냈다. 처음에는 별 변화가 없나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구멍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연습한 지 일주일쯤 되자 구멍은 완전히 사라졌다. 촘촘하고 정갈한 편물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기세를 몰아 코나 실로 파우치의 앞면을 떴다. 덮어서 똑딱이를 달 부분까지 치수를 계산하여 뒷면을 뜨고 두 면을 겹쳐서 짧은뜨기로 이었다. 다이소에서 산 똑딱이를 다는 것으로 아이패드 파우치를 완성했다. 긴뜨기를 마스터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뜨고 나니 여전히 엉성했다. 치수를 쟀음에도 사이즈가 작았고, 뜰 때마다 실 잡는 길이가 달라서 반복되는 모양이 들쑥날쑥했다. 똑딱이를 단 폼도 어설펐다.
구멍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나는 앞으로도 우울증 환자일 테니까. 삶에서 우울증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구멍을 줄어들게 할 수 있다. 우울증을 조금은 나아지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