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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떠오를 수 있다면

우울증과 뜨개질을 엮어서

by 모서리

아침에 눈을 뜨자 몸이 축 처졌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침대 쪽으로 있는 힘껏 누르는 것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복층이라 밥을 먹거나 씻으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했는데,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 내게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몇 시간 동안 그저 멍하니 누워있었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가 나를 누르는 느낌은 계속되었다. 나는 그 누군가의 정체를 알았다. 무기력증. 만만치 않은 존재가 찾아왔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은 한 세트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무기력해지고, 무기력증이 찾아오면 우울해진다. 무기력할 때는 신체 변화부터 나타난다. 일단 몸이 엄청나게 무거워진다. 물에 적신 수건을 온몸에 달아놓은 것처럼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만 있게 되는데, 어떨 때는 누워있는 것조차 버겁다. 무거움은 서서히 몸 안으로 들어가 마음과 뇌에까지 침투한다.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어렵고 그 무언가에는 나 자신도 해당한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생각하는 일이 버겁다. 그래서 모두 내버려 두게 된다. 바닥에 먼지가 쌓이는 만큼 내 안에도 무거운 돌덩이가 쌓이는 것 같다.


나는 복층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푸른 겨울 하늘에 구름이 떠 있었다. 흩어져 떠다니던 구름은 천천히 흘러가서 하나로 합쳐졌다가 다시금 흩어졌다. 그 움직임이 가볍게 느려서, 유연하게 아름다워서, 생각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면 좋을 텐데. 구름처럼 말이다.


그럴 때는 구름 수세미를 뜬다. 집에 수세미 전용 털실이 없는 터라 사야 했다. 다만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문하자니 배송이 오기까지 며칠 기다려야 했고, 집 앞 다이소에서 사 자니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안간힘을 쓰며 계단을 내려가 대충 롱패딩을 껴입었다. 슬리퍼를 끌고 현관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상쾌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피스텔을 벗어나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저마다의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아주 느리게 걸었다. 평소였으면 이미 건너고도 남았을 횡단보도를 신호가 거의 끝날 즈음에야 건넜다. 생각보다 내가 훨씬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우울해졌다. 그러나 횡단보도를 건넌 이상 돌아갈 수 없었다. 눈앞에 다이소가 있었다.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는 걸 다이소에 들어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털실을 파는 코너는 이 층에 있었고, 이곳 다이소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평소보다 훨씬 더 높고 가파른 계단이 눈앞에 있었다. 무거운 다리를 들어 올려 계단을 밟았다. 겨우 두 계단 올랐을 뿐인데 숨이 찼다. 무기력증은 조금만 움직여도 백 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이 찬다. 팔다리가 저리고 아프다. 나는 찡, 하고 울리는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털실 코너로 가서 푸른색 수세미 전용 털실을 집었다.


다시금 일 층으로 내려가서 계산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기억나는 건, 집에 도착해서 롱패딩을 벗어 던지고 차가운 바닥에 엎어지자 등에서 땀줄기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집 앞 다이소, 편의점, 코인 세탁소에 다녀오는 것은 무기력할 때의 나에게는 엄청난 시도이다. 이미 녹초이고, 다녀오면 더 녹초가 될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나가려고 노력한다. 발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면 무기력이 조금은 가신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수세미 전용 털실은 까슬까슬한 촉감을 가지고 있지만, 모아놓으면 구름 같은 몽실몽실한 느낌을 낸다. 실 굵기가 가늘어서 코가 작은 6호 코바늘을 사용한다. 수세미의 크기를 늘리고 싶다면 더 큰 코바늘을 사용해도 좋다. 한길긴뜨기와 두길긴뜨기를 활용하고 이 두 가지 기법에 늘려뜨기를 더하여 구름 모양을 만들어간다. 편물 두 개를 만들어 앞뒤로 겹쳐서 하나로 연결하면 풍성한 구름 수세미가 완성된다. 손에서 수세미를 쥐었다 펴자 까슬하면서도 푹신한 감각이 느껴졌다.


무기력한 와중에도 괜히 설거지가 하고 싶어진다. 무기력을 무릅써보기로 한다. 수세미에 레몬 향 세제를 짜서 비볐다. 구름 같은 거품이 올라왔다. 구름에 구름이 더해져 더욱 가벼워진다. 설거지는 끝내지 못했다. 그릇 세 개를 씻은 게 전부이지만 손에 닿았던 수세미의 감촉을 되뇐다. 손이 붕 뜨는 것 같다. 몸이 아주 조금 떠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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